/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 글을 꾸준히 써 보겠다고 다짐했으나 하얀 화면 앞에서 막막해지는 것은 변함이 없다. 인경과 애인이 글감을 던져 주었지만 도대체 어떤 말을 써 내려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렇게 어제의 글쓰기 모임에서는 글을 완성하지 못했다. 글을 쓰기 위한 생각이 부족한 것일까. 아니면 글 한편을 완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완벽주의를 자극한 것일까. 어느 쪽이든 뾰족한 수가 없기는 하다.
요즘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준 낮추기이다. 어쩌면 기준이라는 것을 없애 버리는 것이 가장 좋겠다. 글에 대한 기준, 잘 쓴 글이라는 것에 대한 기준, 행복의 기준 등. 자기 검열을 없애야 뭐라도 할 수 있다. 기승전결이 완벽한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면 한 단락, 몇 문장이라도 적자. 생각이 글 한 편 정도의 크기를 갖추지 못하더라도 그 파편들이라도 적자
/여기저기서 팔리는 글을 써야 한다고들 한다. 들어보면 그럴듯한 말들이다. 혹한다. 나도 팔리는 글을 써야 하나? 누구한테 팔지? 잠시간은 별 생각이 다 든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린다. 그리도 싫어했던 글쓰기가 왜 하고 싶어 졌나. 따끈따끈한 그 마음을 떠올린다.
글로 먹고살고 싶어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든 게 아니었다. 내 생각과 마음들을 눈에 보이는 글로 남겨서 나를 이해하고 설득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글이 누군가의 인생의 한 순간에 가 닿는다면 그것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과 얼핏 겹치는 누군가의 글에서 내가 위안을 얻었던 순간들처럼. 내가 그런 글들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세상에 온갖 미혹의 말들이 내 불안을 부추긴다. 나에게 와닿지 않는 말들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쏟아지는 말들 속을 헤쳐 내가 붙잡고 가야 하는 말들을 고르고 고른다.
산다는 것은 곁에 둘 사람을 고르고, 자주 읽을 글들을 고르고, 오늘 걸어야 할 길들을 고르고 고르는 시간들이구나
/나는 숱하게 내가 밉고 때때로 내가 좋은 사람이지만, 올 한 해만큼 그랬던 적이 없다. 나는 올해 참 내가 미웠고 참 내가 좋았다. 지난 시간들과 다름없이 지질했다. 동시에 오랜 시간 미뤄두었던 것을 시작하고 머릿속에 있던 일들을 시도했다. 그중 가장 기특한 것은 글쓰기 모임을 만든 것이다. 정확히는 이 멤버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누가 나랑 글을 쓰겠다고, 이 험한 언덕 위까지 올까? 떨리는 마음으로 모집글을 올렸다. 하루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신청서 열개가 들어왔다. 얼굴 모를 사람들을 기다리며, 그날의 글감과 멤버들의 이름을 입안에서 굴리며 무화과를 자르던 첫날밤이 떠오른다.
월요일 밤과 화요일 밤 우리는 모여서 글을 쓴다. 오늘로 2회 차가 되었다.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지만 고개를 숙이고 각자의 노트와 화면 속에 빼곡히 무언가를 적는 멤버들이 사랑스럽다. 가끔은 골몰하는지 타자 소리가 멈춘다. 그러다가 다시 타닥타닥 소리가 들린다. 빈 화면, 반짝이는 커서와 씨름하다 슬쩍 멤버들의 찻잔을 살핀다. 그네들의 찻잔이 비어있으면 물을 끓여 부어준다. 나와 마찬가지로 씨름하고 있을 그들의 잔을 채운다.
서먹함이 서려있지만 기분 좋은 설렘과 반가움이 빛나는 눈빛들로 지난 일주일을 살았다. 오늘 다과로 내어준 홍시가 올해 그녀의 첫 홍시라는 말이 참 기분 좋다. 오늘이 생일이라며 배시시 웃던 그 얼굴이 참 사랑스러워 오래 기분이 좋다. 두 시간 반씩 이틀. 다섯 시간으로 남은 일주일을 또 씩씩하게 살아간다. 다음 주의 글감을 모으고 다과를 고민하고 돌아올 밤을 기다리며
/인경이 던져준 글감에 대해 근 하루를 고민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세 가지.
자유 여행 예술을 꼽고는 애인에게 내가 좋아하는 세 가지가 뭔 것 같아? 물었다. 그가 자유 행복 고양이라고 답한다. 나는 자유 여행 예술을 떠올렸는데 여행이 이 자리에 껴도 되는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 했더니, 자유와 예술이 있어 여행을 좋아했던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납득됐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고양이도 자유로운 예술가라서 좋아하는 것 같다.
자유와 예술이 채우고 남은 한 자리에 무엇을 넣을까 치열하게 고민 중이다. 가만 보니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글을 쓰지 못한 게 맞는 것 같다. 이렇게 글 한편을 쓰지 못한 어제에 면죄부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