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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y Jun 19. 2020

비 내리는 날에 대해 

   여러분의 비 내리는 날은 어떠한가요? 

 나는 어렸을 때부터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일들이 몇 가지 있다. 학창 시절 축구하는 것을 좋아했다. 체육시간이 있는 날 축구를 할 기대에 부풀어 있는데 비가 오면 마음이 좋지 았았다. 운동장에 커다랗게 생기는 물웅덩이들이 마치 내 마음에도 깊게 패이는 것 같았다. 교내 자습으로 대체된 체육시간에 책상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노라면, 수 없이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학창 시절에는 학교가 집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주로 버스를 타고 등교했다.  등굣길 붐비는 버스를 우산을 들고 타는 것은 꽤 불쾌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 들고 있는 우산에 고인 물들이 내 신발이나 옷에 떨어지고, 심지어는 옷 속으로 스며들면 마음 깊은 곳에서 뿌리 깊은 부정성이 솟아났다. 아마 나도 다른 사람에게 비슷한 감정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리고 차에 오르기 전 우산을 접는 그 타이밍에서 어쩔 수 없이 비를 조금 맞게 되는 필연,  그것이 싫었다. 어떤 일을 겪더라도, 나의 통제력 밖의 일을 당하게 되면 달갑지 않은 것이다. 

 지금은 비 오는 날이 예전처럼 싫지는 않다. 가끔씩 아침에 일어나 창 밖에서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차분하고 주변의 분위기가 덩달아 고즈넉해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복잡한 세상 가운데에서 차분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이다. 가끔은 지나치게 긴장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지나고 보면 딱히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하고 생각하게 된다. 요즘은 너무 긴장하지는 않되, 나름대로 성실하고 빈틈없이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과도한 긴장은 오히려 빈틈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비 오는 날을 생각하다 보니 얼마 전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주말에 여자 친구와 함께 동네 하천을 산책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비가 한 두 방울씩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어떻게 하면 빠르고 효과적으로 비를 피할 수 있을지, 옷이 젖으면 어떻게 처리할지 등을 이리저리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비가 오네, 빨리 가야겠다.'라고 여자 친구에게 말했다. 그러자 여자 친구는 "비 좀 맞으면 되지"라고 말했다. 그렇다. 비 좀 맞으면 되는 것이었다. 비 좀 맞는다고 해서 그리 큰 일 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빨래를 하고 샤워를 하면 되는 일이었다. 깨달음이라고 하면 좀 거창하지만, 비 온 후 찬란하게 파란 하늘이 드러나듯 머리가 말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수확이라면 수확이죠? 

 이런 비슷한 느낌을 주는 시를 얼마 전 본 적이 있다.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이라는 시다. 산산조각이 날까 봐 과도하게 걱정되고, 불안할 때면 계속 보게 될 것 같은 시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원문은 궁금하면  한 번 찾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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