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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봉 Feb 18. 2019

Triangle

-시시(詩詩)한 이야기

“슬퍼서 전화했다. 가장 슬픈 일은 장소가 없어지는 일이다. 그러면 어디에 가도 그곳을 찾을 수 없다. 너는 어디 가지 말아라. 어디 가지 말고 종로 청진옥으로 와라. 지금 와라”

 

박준<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中 ‘새벽에 걸려온 전화-이문재시인’


  이 카페가 세워진 땅이 삼각형 모양이라는 것을 나는 어제 처음 알았다. 건물이 밀려 없어진 자리, 평평해진 터가 삼각형 모양이었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Triangle’이라는 카페 이름이 건물 터의 모양에서 왔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그 장소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카페 Triangle이 있던 자리엔 주황색 포크레인만 점령지의 군주처럼 우뚝 서있었다. 미세먼지를 뚫고 아침에 달리기를 하겠다고 정릉천으로 가던 길이 유독 허전하게 느껴진 이유였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건물 위에 브리태닉 볼드체로 쓰인 Triangle 상호가 붙어있던 곳은, 이제 없다.

  사실 나는 이 카페와 직접적인 연이 없다. 정확히는 가보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주 연이 없다고만 하기에는 섭섭한 관계라고 생각해서 아쉽다. 가본적도 없으면서 아쉽다고 말하는 것은 위선적인 일일테지만, 어쨌건 정이 들었던 것과 그리고 이제 가고 싶어도 갈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니까.  

  이곳에 대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따지자면, 일단 이 곳 커피의 맛은 모른다. 대신 전에는 밤 12시까지 하다가 언젠가부터 저녁 10시를 전후로 문을 닫았다는 것, 이 시간대가 조금 유동적이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이 카페를 찾는 사람들 중에는 차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 카페 안에는 영화 속 다방을 연상하게 하는 푹신푹신한 소파 자리가 넉넉하게 마련되어 있었다는 것은 안다. 그리고 테이크아웃을 하면 카페 안에서 마시는 것보다 2000원 정도 값이 저렴하다는 것은 경험으로도 아는데,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와 입구에 써진 테이크아웃 가격을 보고 들어갔다가 홀 가격이 비싸서 그냥 나왔던 대학생 시절의 경험 덕이다.

  아무튼 자주 앞을 오가는 터에 이 카페에 마음을 기울인 일도 많았다. 빨간 벽돌과 브리태닉 볼드체의 고전적인 느낌에서 오는 안락함이나, 잠시나마 교외로 벗어난 것 같은 조용한 분위기 같은 것 말이다. 이곳을 내가 마음대로 이름붙인 ‘회로수길’의 끝집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혼자 뿌듯해하기도 했다. 중년 남녀가 차를 받치고 카페로 들어갈 때, 특유의 교외적인 느낌에 친구에게 “어쩐지 불륜의 메카일 수도 있겠어”라고 말하며 쑥덕이기도 했던 은밀한 상상의 공간이기도 했다. 밤낮이건 낮밤이건 이곳을 지나다니면서 언젠가 혼자는 아니고 꼭 한번 데이트를 하러 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제 Triangle은 없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제 그 장소를 오가고 상상하던 나도 있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슬펐다. 오늘 네이버 검색창에 ‘경희대 트라이앵글’을 검색해보니 ‘이 카페 아직도 있네요, 저 초등학교 때도 있었는데’라며 여기서 추억을 찾던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곳이 없어져서 나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의 추억을 증빙할 장소도 함께 없어졌다는 생각을 하면 상실감은 조금 더 커졌다.

  장소가 없어진다는 것은 그래서 슬픈 일이다. 그 시간도 함께 없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뿐만 아니라, 그 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굳이 다 아는 사실을 눈앞에서 확인하게 되는 처참함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로 어디에 가서도 찾을 수가 없다. 그 곳을 지나다니던 나, 함께 기웃거리던 여자친구, 대학시절의 가벼운 주머니, 상상력 같은 것들을


  그러고 보니 무수한 장소가 없어졌다. 경희대학교 앞에서 6년 가까이 사는 동안 처음 먹고 마시고 놀던 밥집이며 술집이며 카페 등등이 어지간히 사라지고 바뀌었다. 이번 겨울에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우연은 아닐 것이다. 정든 장소들이 없어지고 없어질 것처럼 보이고 그런 것들을 바라보는 일이 더 이상은 힘들게 여겨지기도 하는 까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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