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에 비친 나
샤워를 하고 나왔다. 드라이기를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로 머리를 말리며 거울에 비친 나를 봤다. 마치 화장대에 놓여 있는 물건을 보듯이 '그냥' 봤다. 내게는 처음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두피가 너무 많이 보이는데 탈모가 시작된 건가? 아버지도 이맘때쯤 머리가 벗어지기 시작했다고 들은 거 같은데, 역시 왼쪽 얼굴이 잘생겼어, 어깨가 더 넓어야 되는데 체중이 붙질 안네 등등 한 번도 나는 나를 그냥 본 적이 없다. 늘 나의 장점, 콤플렉스, 희망사항 등등이 떠올랐다. 나를 아무 생각 없이 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묘했다. 기분이 정말 묘했다. 피부가 좋은 날, 머리가 정말 마음에 드는 날, 그 어떤 날보다도 "아무 생각 없이 본 내 모습"이 더 마음에 들었다.
이게 그냥 진짜 '나'로 살아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났니 못났니 하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 거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고 눈치가 보이면 보고 너무 많은 생각하지 않고 내 모습을 구태여 바꾸려 하지 않을 수 있는 태도.
사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가장 쉬운 건데 나는 늘 나를 보며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한다. 오늘 처음으로 그냥 '나'를 수용한 느낌이다. 경험해 보니 느낌이 꽤 괜찮다.
앞으로도 종종 내가 나를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