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엄마 손에 이끌려 교문을 통과했다. 넓은 운동장에 집합한 후 낯선 친구들과 교실로 들어갔다.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지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는 설렘도 있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학기가 시작된 지 고작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나는 담임에게 불려 갔다.
“순심이는 반 배정을 잘못 받았구나.”
담임은 나를 2층 복도 끝 반으로 데려갔다. ‘1-1’ ‘1-2’ ‘1-3’ 같은 숫자가 아닌 ‘특수반’이라는 팻말이 쓰여 있는 반이었다. 교실 문을 여는 순간 그 팻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선생님, 저는 왜 이 반으로 와야 하나요?”
“음…… 순심이는 다른 친구들보다 학습 속도가 느려서 여기서 공부해야 할 거야.”
“저는 제 이름도 쓰고, 숫자도 10까지 알아요. 그런데 왜 여기 와야 하나요?”
선생님은 내 물음에 대답 없이 황급히 사라지셨다. 그렇게 나는 사전 동의나 양해 없이 1학년 6반이 아닌 특수반에 재배정되었다. 특수교사가 보기에 나는 특수학급에 있기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으로 나는 원래 배정받은 반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 늦게 1학년 6반의 구성원에 합류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어느새 29년이 흘렀다. 세월이 많이 흐른 만큼 학교의 제도적, 물리적 환경도 많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내가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교사는 장애학생을 부담스러워하며,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장애인 친구와 사귀는 것을 (머리로는 받아들일지 몰라도) 선뜻 내키지 않아 한다.
내가 근무하는 장애인 시설에도 일반 중학교내에 있는 특수학급에 다니는 장애인이 몇 명 있다. 학교에서 장애인을 받아들이는 것은 특수교사 한 명의 열정으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그들이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다른 학부모들이 교무실로 전화를 걸어 장애인들을 학교를 다니게 하는 것에 대해 항의했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장애인들이 학습을 방해한다는 것이었다. 시설에서 다니는 학생들은 일주일에 34시간 수업 시간 중 20시간을 비장애 학생들과 함께 통합수업을 듣는다. ‘학생들은 장애인 친구를 돕거나 챙기는 아이들도 적지 않은데, 오히려 학부모들이 나서서 반대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이들이 어른들을 보고 배워야 하는데, 거꾸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배운다.
언젠가 우리 시설에 사회복지 현장실습을 나온 분에게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은 이유를 물은 적이 있다. 그러자 그 실습생은 중학생인 아들이 중증장애인인데, 자신이 사회복지 분야를 알아야 아들을 대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다니는 중학교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라고 했다. 실습생 엄마는 왜소한 체격으로 덩치가 산만한 아들을 업고 매일같이 학교 계단을 오르내렸다. 등하교는 물론 수업 시간에도 교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화장실에 데려가거나, 이동 수업을 할 때면 업고 다니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해당 학교 특수학급에 특수 보조교사가 배정되어 장애학생의 이동 및 학교생활을 돕고 있으며, 실습생인 엄마가 학교 측에 지속적으로 요구한 끝에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었다. 학교 측의 거부에 움츠러들지 않고 교육청에 민원을 넣어 일궈낸 성과였다. 설치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덕분에 아이는 최소한의 수준에서나마 학습권과 이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 학생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실습생 엄마는 고등학교에도 똑같이 엘리베이터 설치를 건의했다. 중학교와 같은 재단이었던 고등학교는 수천 만원이 드는 엘리베이터를 또 설치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장애 학생은 마땅히 누려야 하는 학습권을 또다시 침해당했다. 학교는 장애학생에게 암묵적으로 ‘커버링’을 요구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누군가 장애인이라고 할 때 그는 자신이 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대신 최대한 그것을 자제하며 티 내지 말아야 한다.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시설을 제공하지 않고 조용히 분위기에 묻어갈 것을 요구하는 것 역시 커버링의 한 가지 방식일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학습권만이 보장되는 현실은 커버링이 일어나기 가장 적합한 조건이다. 이런 문화가 공고히 뿌리내린 사회에서 장애 학생은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하면서도 참아야 하며, 개인이나 가족의 희생에 의지해서만 학교를 다닐 수 있다. 난치력 상상력의 안희제 작가가 말했듯이 학교는 아픈 학생은 다닐 수가 없는 곳이 되어버린다. 보행이 불편한 장애 학생에게는 엘리베이터가 있어야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학교 측은 마지못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했지만, ‘장애 학생 한 사람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은 재정낭비’라는 주장은 변함없었다. 학교는 엘리베이터가 더 많은 이들이게 유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친 듯하다. 엘리베이터는 비단 그 장애 학생 한 명이 아니라 다리를 다쳐 휠체어를 써야 하는 학생과 교직원, 여타의 방문자가 이용하게 될 수도 있으며, 꼭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무거운 짐을 위층으로 옮길 때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애초부터 편의시설이 꼭 필요한 사람들을 고려해 건물을 설계했더라면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건물 곳곳을 편리하게 드나들 수 있지 않을까.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가 장애인들의 투쟁 덕택에 설치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유모차를 사용하는 부모들과 거동이 불편한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시설에서 장애인식 개선 교육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막상 장애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교는 아이들이 처음 대면하게 되는 작은 사회이다. 장애 학생을 특수학급에 분리하는 대신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함께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모색한다면 어떨까. 그 비장애 학생들이 자라 어른이 된다면 분명 지금과는 다른 사회가 펼쳐질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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