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순심 Mar 27. 2023

[일사일언] “올해도 나는 열한살”

일러스트:허예진

 내가 근무하는 지적장애인 생활관에선 매해 지원받는 서비스에 대한 일대일 만족도 조사를 한다. 설문 응답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대부분 문항은 그림이나 사진으로 돼 있다. 그중 ‘설날 행사를 계속 지원받길 원하냐’ 묻는 항목을 은아(가명·67)씨에게 보여줬다. 그녀는 “싫다”고 했다. “설날 행사를 하면 한 살을 더 먹기 때문”이라고 했다. “몇 살이세요?”란 질문에 “내 나이는 11살”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지난해에도 그녀는 자신을 “11살”이라 했다. 장난기가 올라온 담당자가 “작년 11살이었고 올해는 12살 아니냐”고 했다. 그러자, “11살 맞다”는 꿋꿋한 외침이 돌아왔다.


 은아씨는 해가 바뀌어도 늘 11살에 멈춰 있다. 일흔을 바라보는 치아 상태를 감안해 다짐식(다져서 만든 음식)을 주면 “왜 날 노인 취급하냐”고 화를 낸다. 꽃무늬 옷을 좋아하고, 그녀가 “이상형”이라는 시설의 한 남자 선생님 이름을 우리가 입에만 올려도 볼이 붉어진다. 그야말로 ‘소녀 감성’ 소유자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소녀 감성 은아씨와 이별을 준비한다. 이곳 장애인들은 61세에 노인시설로의 전원(轉院)을 준비한다. 경우에 따라 10년 정도 더 머무는 경우도 있지만, 은아씨는 전원 대상자가 됐다. 우리 마음은 그녀와 마지막까지 함께 지내고 싶지만, 조금이라도 더 건강할 때 이동하는 게 은아씨를 위해 좋다. 대부분 비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일반 노인시설로 가기 때문에 적응 기간이 필요하고, 우리 시설에선 장애인 대상 서비스를 중점 지원하니 노인성 질환은 빠른 대처가 어려울 수 있다. 얼마 전 우리 시설을 방문한 은아씨의 보호자가 “새 시설에 잘 적응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그 한숨 속에 장애인 가족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 무게에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생애주기에 따라 아동, 성인 그리고 노인 시설로 철마다 옮겨야 하는 삶이 때론 서글퍼 보인다. 한평생 자신과 같은 장애 특성이 있는 이들과 지내다 갑자기 비장애인들 속에서 살아가긴 쉽지 않다. 새로 옮겨가는 시설에서 좋은 동료와 사회복지사를 만나길 기도할 뿐이다. 이들이 노년기를 익숙한 곳에서 지낼 수 있도록 원래 지내던 시설에서도 원활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 대안도 나왔으면 좋겠다. 은아씨와의 작별 전 여러 가지 바람을 가져 본다.


                           이 글은 조선일보 <일사일언>에 연재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