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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okie Run Dec 25. 2019

언제 퇴사해야 할까?

퇴사한 저 사람, 나와 비슷한 상황일 줄 알았더니만...

"그래, 이럴 땐 퇴사해라," "아니, 아직 퇴사하지 마라" 등 말이 많다.

요즘 브런치, 인스타그램 등에 퇴사한 사람들이 본인이 퇴사하게 된 계기와 그 이후 살아가는 이야기를 올리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대책 없이 퇴사한 것은 나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받으려 퇴사한 사람들의 스토리를 팔로우하기 시작했는데, 여행을 하며 즐거워하는 콘텐츠를 올리다가 예고도 없이 더 이상 올리지 않는다거나, 힘들어서 퇴사한 건 맞으나 동시에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나가는 중이거나 (뭐야.. 당신들은 짝이 있었네..ㅠ), 퇴사 후 새로운 분야에 프리랜서로 뛰어들었음에도 일을 수주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 나처럼 아예 대책 없는 퇴사는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는... 외로움을 달래려다 오히려 더 외로워지는 날들이 있었다.


3년의 경력이지만, 매일 같은 야근으로 건강을 무너트리는 회사, 야근은 덜 하지만 팀장과 동료가 힘들어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다녔던 회사, 그리고 앞에 두 회사의 단점들을 다 갖추었던 회사를 두루 경험했다.


점점 매력을 잃어가는, 한때는 빛나던 업계.

내가 지난 3년 간 있었던 업계는 직원들 개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곳이었고, 프로젝트 베이스로 바쁘게 돌아가 상황에 따라서는 밤낮없이 일해야 했기에 체력도 중요했다. 


이러한 업계에 들어간 나는 사회생활 첫 3년간 야근을 많이 했다.


그중 첫 번째 회사가 유독 심했는데, 평소 퇴근 시간은 저녁 10시를 거뜬히 넘겼으며, 악명이 높은 프로젝트에 투입되었을 때는 아침 8시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6-7시까지 밤새서 일하고, 별다른 휴식시간이라 할 것도 없이 아침 8시에 또다시 일을 시작해 저녁까지 야근을 이어 한적도 있다. 내가 입사한 해에 프로젝트가 유독 많이 들어와 아침이든 저녁이든, 평일이든 주말이든 항상 자리에 있어 내겐 '(회사명) 가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이렇게 일하다 보니 아무리 '젊은' 사람이더라도 건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잠을 못 잔 상태에서 커피를 계속 마셔서 손이 떨리는 것부터 시작해, 심장이 제멋대로 이상하게 뛰는 것 같은 증상도 나타났고, 일하는 도중 순간적으로 앞이 안 보이며 갑자기 땅이 꺼지듯 몸이 쿵하고 가라앉는 증상이 연속으로 반복되기도 했다. 이러다 쓰러지는 과정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죽을 것 같다는 생각도 몇 번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렇게 일한 첫 회사에서 인턴으로 6개월, 정규직으로 1년 반을 일한 후 회사가 한국 사업을 접는다는 통보를 받으며 하루 아침에 해고당했다.


두 번째 회사는 첫 번째 회사와 비교해봤을 때 야근량이 현저히 적었다. 평소에 야근을 해봤자 한두 시간을 더 일하는 정도였다. 이 업계에서 야근을 덜 한다는 건 1) 일거리가 많지 않거나, 2) 일을 매우 효율적으로 잘하거나, 3) 일을 대충 할 때 가능하다. 두 번째 회사는 첫 번째와 세 번째 케이스였다. 일 많다며 투정 부리던 놈이 팀장이 외부 미팅으로 4시에 나가 회사에 다시 돌아올 것 같지 않으면 5시 즈음에 조용히 퇴근하고, 팀장이 6시가 넘도록 퇴근을 안 하면 집에 갈 수 있음에도 눈치를 보며 자리를 지키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 계약직으로 간 내게는 "갈 곳 없지? 정규직 되고 싶으면 어디 한 번 열심히 해봐"라는 시선과 함께 불합리하고 부당하게 일이 많이 던져졌는데, 업무 능력으로나 스펙으로나 꿀릴 게 없음에도 저런 취급을 당하자니 정규직 자리는 일찌감치 원치 않게 되었고, 1년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에서 해외 오피스 자리에 관심이 있냐는 제의를 받았을 때 한국과 엮일 게 뻔하고 그게 싫어 거절하고 나왔다.


세 번째 회사는 업무량과 구성원 측면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회사가 반반 섞여 있었는데, 일할 사람은 일하고, 정치할 사람은 정치하는 곳이었다. 한때는 일하는 사람이 더 많은 곳이었지만, 최근 몇 년 간 조직 내외로 많은 변화를 겪으며 업무 능력보다는 정치하며 버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더 적합한 회사로 변해버렸다.


세 곳의 회사 중 어떻게 보면 내가 온전히 자발적으로 나올 수 있었던, 그리고 나왔던 곳은 세 번째 회사였다. 첫 번째 회사의 경우 밤낮없이 일한 것의 끝은 해고 통보냐며 화가 났지만, 다른 한 편으로 보면 나는 건강이 무너지고 있다는 이유로는 회사를 떠날 사람이 아니었기에 건강이 더 무너지는 것을 비자발적으로 막은 셈이 되긴 했다. 두 번째 회사의 경우, 매일매일 사표를 가슴에 품고 다녔으나 일 년이라는 기간이 정해져 있었기에 버틸 수 있던 것 같다. 세 번째 회사는 정치판이었고, 프로젝트의 퀄리티도, 업무 윤리도 지키기 어려운 곳이었으며, 꼭 퇴사를 해야 한다며 위기를 알려주는 순간이 두 번 찾아왔다. 처음은 패닉 상태에 빠져 더 이상 일이 손에 안 잡혔을 때였고, 그다음은 숨을 돌리려 잠시 밖에 산책 나갔는데 온 세상이 노랗게 보였을 때였다. 첫 번째 회사에서 건강이 악화될 때는 증상들이 서서히 나타났고 갑자기 크게 타격이 온 게 없었지만, 세 번째 회사에서는 위기의 순간들이 찾아왔을 때 더 이상 버텨서는 안 됨을 너무나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다들 본인의 상태는 본인이 잘 알 테다. 주변에서 뭐라 하든 당신이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 퇴사하는 게 옳지 않을까? 대책 없는 퇴사 후 반년 동안 내가 겪었던 상황을 잘 모르는 이들로부터 간간히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하고, 마음에 걸리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 때로는 퇴사가 정말 유일한 선택이었나 되뇌어보는 순간들도 왔다. 하지만 퇴사 후 다른 유형의 어려움들을 겪으면서도 내가 옳은 결정을 했다는 결론에 매번 다다랐다. 그저 '저 놈 꼴 보기 싫어'가 아닌 내가 중시하는 그 무엇도 제대로 안 지켜질 때, 그리고 그로 인해 내가 무너지는 것을 느낄 때. 내게는 그때가 대책 없이 퇴사해도 괜찮은 때였다.


지난 3년간 속해있던 업계는 과거에 보유했던 매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업계 자체는 매력 있을 수 있으나, 업계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면 매력이 있다고 말하기 힘들다. 현재 업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볼 때 이러한 상태는 적어도 향후 몇 년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돌아갈 마음은 없다.


새로운 챕터의 시작

지난 11월에 새로운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직무의 연관성은 있으나, 업계가 다르고 구성원들도 매우 다양하다. 일하는 방식과 환경이 여태껏 익숙했던 것과는 달라 일할 때 동공이 흔들리는 순간들이 있다. 입사한 지 한 달 반이 되어가는 현재 시점. 벌써 이야기보따리가 채워졌으나, 그날그날의 경험과 생각을 말로 내뱉는 순간 회사에 대한 이미지가 나와 상대방에게 그렇게 굳어질까봐, 그게 섣부른 판단으로 이어질까봐 주변 사람들에게 회사에 대한 이야기는 자제하는 중이다. 회사는 양파를 까듯이 계속 알아가게 되겠지만, ‘이제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다’는 시점이라 생각될 때 서서히 이야기보따리를 풀려고 한다.




퇴사 후 반년 동안 매우 잘 쉬었다. 아주 마음 편한 여유로움은 아니었을지라도, 소속이 없다는 것으로 인해 어딘에든 얼른 속하려 드는 조급함은 없었다. 내게 가치 있는 것들을 지키는 퇴사였음에, 그리고 나를 지키는 퇴사였음에 퇴사 후 힘든 순간들이 오더라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고, 조금은 성장하고 단단해진 것 같아 만족할 수 있었다. 나처럼 진짜 대책 없이 퇴사하려는 이들에게 한 가지 조언(?)을 준다면 금전적으로는 꼭 준비하라는 것. 한 달 평균 생활비를 파악하고 최소 3-6개월은 생활비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도록 꼭.. 준비하세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 간증(?)을 하자면, 쉬는 동안 교회에서 두 달간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프로그램을 완수하려면 20일간 새벽기도에 나가야 했다. 새벽기도 때문에 중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나는 있는 게 시간이라며 새벽기도에 꼬박꼬박 나갔고, “하나님, 저 백수예요. 일이 없어 손이 하얗다는 거죠. 일 주세요.” 라는 식으로 투정 부리듯 기도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분명 낮고 부족하고 못난 사람을 들어 올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신다던데, 그러면 제가 딱인데 왜 아직 안 쓰시냐고, 저보다 못난 사람들이 세상에 그렇게 많냐고도 투정 부려봤다. 그런데 새벽기도 20일을 다 채워갈 때 즈음... 지금 다니고 있는 이 회사와 면접이 착착 진행되어 들어가게 됐다. 회사에 들어가는 걸 기대하며 새벽기도에 나간 것은 아니지만,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 한 해가 되었다.


Merry Christmas to a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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