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사람이 우울함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성선설, 성악설도 아니고 성우울설이라니!
좀 허황된 것 같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우리 모두는 우울함을 가지고 태어나고 다만 그 정도와 깊이가 다를 뿐이라고.
그니까 내가 어딘가 고장나거나 이상해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조금 더 깊은 우울을 타고 났기 때문에 그럴뿐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어릴때부터 그리 밝은 아이는 아니였던 것 같다.
어릴때도 줄곧 혼자 책을읽고, 글을 쓰고, 가사를 만들기도 했다.
깊은 새벽 잔잔한 라디오를 듣기 좋아했고, 딱히 가수나 아이돌에도 취미가 없었다.
감수성이 풍부하다
라고들 설명했고.
나도 그저 그렇게만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부분들은 점점 감추려 하였고, 그럴수록 내 뒷면의 우울은 깊어갔다.
우울한 아이는 아무도 안좋아해
그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나는 ‘사회성이 좋은, 활발한, 사교적인, 외향적’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모든 하루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아니 내방에 들어오면 늘 너무 많이 지쳤다.
내 방의 문을 닫고 들어오는 순간 내 모든 하루가 그저 불이 꺼진 극장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줄지 않는 약속들과 쉴틈없이 울리는 전화들
행복하지 않은 연애까지 더해졌다.
나는 그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위해 살고 있었지만 그때는 그것이 맞는 것 처럼 느껴졌다.
내면과 외면의 위험한 줄다리기 사이에 대학시절 심리학 수업 때 했던 검사 결과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니었다.
외면과 내면의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
반은 재미삼아 했던 이전 시간의 심리검사 결과들을 분석하며 PPT수업을 이어가던 정신의학을 전공하신 교수님은 내 결과에 걱정스런 얼굴로 ‘상담이 필요하면 언제든 내 사무실로 와’라고 하셨다.
‘네’라고 대답하던 그날도 나는 친구들과 장난으로 웃어넘겼다.
그로부터 몇년 후 나는 결국 멈춰버렸다. 마치 고장이 난 기분이었다.
웃으려해도 웃어지지 않았고, 몸이 무거워 팔다리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깊은 물 속에 가라앉은 것처럼 주변의 모든 것이 적막하고 고요했다.
숨을 쉴 수 없었고 물밖으로 나오려 허우적댔지만 무의미했다.
혼자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도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 미친사람처럼 웃고 떠들고, 뛰어다녔다.
가족들과 친구들의 격려로 다시 나아졌지만 부서진 것을 대충 이어붙인다고 해서 새 것이 되지는 않는다.
그로부터 몇년 후 나는 다시 고장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