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구매했던 손목시계를 중고로 판매했다.
2013년 군대를 막 전역했을 무렵 오토매틱 시계가 정말 갖고 싶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복학 시점까지 열심히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했고 결국 중고나라를 통해 예쁜 오토매틱 시계를 구입했다. 그때는 어찌나 그 시계가 갖고 싶었는지 대학생의 입장에서 40만 원이라는 거금을 지불하는 것이 하나도 아깝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 시계는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시작하던 시점까지 애지중지하며 아주 알차게도 차고 다녔다.
회사에서 받은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내가 더 갖고 싶었던 정말 훌륭한 시계를 스스로의 힘으로 구매하고 나서야 그 시계는 내 손목에서 내려왔다. 처음 중고로 구매할 당시 갖고 있던 케이스에 다시 들어가 버린 그 시계는 그렇게 4년을 나의 방 한구석에 처박혀 나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반지의제왕에서 프로도를 기다리던 절대반지의 기분은 그런 것이었을까. 한참의 세월이 흘러 방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던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시계를 왜 영원히 간직하지 않고 팔았느냐 하면, 그건 잘 버리는 법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오래된 시계를 계속 간직하면서 9년 전의 감성과 추억을 느끼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물건이 꼭 존재해야만 추억이 남는 것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비단 시계뿐만이 아니라 나는 유독 오래된 물건을 버리는 것을 어려워했던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전공책이다. 대학교 시절 나와 함께 했던 전공책들은 지금도 내 방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책은 심지어 컴퓨터 모니터의 받침대로 사용되고 있다. 모니터를 응시할 때는 나의 눈높이보다 조금 위에 화면이 위치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장 두껍고 튼튼한 전공책을 받침대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그런 쓰임새가 있다고는 하지만 학창 시절의 소중한 추억을 담고 있는 물건의 용처가 다소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버지께서는 어렸을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1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버리는 게 맞다고.
나이가 들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참으로 공감이 되는 말이다. 1년 4계절을 겪으며 특정 물건에 한 번도 손이 가지 않았다는 것은 나에게 그 효용을 다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 물건도 나에게 할 만큼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미련이다.
사실 주거공간이 무한하면 내 추억이 담긴 모든 물건들을 먼지가 쌓인 채로 간직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나 살다 보면 살림살이는 지속적으로 늘어만 간다. 사소한 소모성 용품들부터 시작해서 옷, 책, 새로운 장비,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을 차지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 일부 공간은 이제 그만 새로운 물건의 입성을 위해 필히 자리를 내어주어야만 한다.
결국은 그때의 기억 때문이다. 그건 미련이라고, 추억이라고도 표현이 가능하지만 마음 한편에 제법 무겁게 자리하고 있는 흔적이다. 그래서 그 물건을 떠나보내면 그 기억마저 영영 잊어버릴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실제로는 형체가 꼭 존재해야만 소중한 추억들이 남아있는 건 아닌데도 말이다.
나의 시계를 다시 중고로 가져갔던 구매자님께 이런 말을 건넸다.
그 시계는 나의 가장 빛났던 시간들을 함께 했고 나에게 좋은 기회와 행복한 순간들을 많이 가져다주었던 시계라고. 지금의 성숙하고 발전된 나를 만들어주었고 그래서 지금은 더 훌륭한 시계를 찰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런 좋은 마음을 담아 보내주었다. 아쉽다기보다는 후련했고 오히려 기뻤다. 좋은 일만 가져다주었던 시계가 다른 좋은 사람에게 가서 또 다른 추억과 행복을 선사하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