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원에 대한 어머니들의 관심이 무척 높습니다. 대학 입시가 유치원 때부터 시작 된다며 영재원에 들어가야 좋은 중•고등학교를 가고, 좋은 대학에도 갈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치는 어머니들이 제법 많이 계십니다. 어떤 영재원이 좋은지, 또 어떤 학원을 가야 영재원에 입학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기까지 합니다. 이런 설명을 듣고 있으면 저도 혹하는 마음에 정말 그래야 하나 헷갈리곤 합니다. 그런데 영재원에 들어가기 위해 4~5살 때부터 학원에 다니며 공 부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요? 그리고 학원에 다녀서 만들어진 영재가 진짜 영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솔직히 너무 어린 나이에 경쟁을 치르며 자존감에 상처를 입을까 걱정이 됩니다. 물론 아이가 특정 분야에 두각을 보이며 자연스럽게 영재로 판단된다면 너무나 축하할 일입니다. 하지만 훈련을 통해 영재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해 보입니다. 실제로 네다섯 살 아이에게 무리한 학습을 시킨 결과 문제 행동을 보이는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6살 혜정이는 영재원에 들어갈 만큼 똑똑한 아이였다고 하는데, 학습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첫 수업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단 5분도 집중하지 못하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질 못했습니다. 공부를 시키면 마치 스프링처럼 튕겨 나가며 경기 반응을 보였습니다. 실제로 학습 스트레스로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은 공통으로 의자 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연습을 해야 할 시기에 학습을 강요받아 생긴 현상입니다.
혜정이는 5살 때 혼자 한글을 떼고, 시키지 않아도 책을 읽는 그런 아이였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어머니가 부러워할 아이지요. 그런데 혜정이의 사연을 들은 주변 어머니들이 영재원에 한 번 보내보라고 권유했고,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영재원 테스트를 받았던 것이 화근 이었습니다. 혜정이는 언어와 직관은 상위 5% 이내의 영재로 판정받았으나. 수리와 사고 등 다른 영역에서는 판정 불가를 받았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우리 아이는 언어지능과 직관력이 뛰어나구나! 라고 느끼고 멈췄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렇게 아이의 강점을 집으로 발달을 유도하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정도로 학습 설계를 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혜정이 어머니는 노력하면 수리와 사고 능력도 영재로 판정 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이 혜정이를 위해서도 옳은 일이라고 믿었고요. 그래서 여기저기 유명한 수학학원을 수소문하게 되었고, 매일 밤 수학 문제집을 풀리며 실랑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6살의 혜정이는 초등학교 2학년 수학 문제집을 풀 수는 있었지만, 공부에 대한 흥미는 급격히 떨어졌고, 결국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혜정이를 보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 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속진교육을 통해 어린 나 이에 대학에 입학하여 관심을 받은 영재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놀라 윤 연구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 미국의 영 재교육은 40대에 자기 일을 행복하게 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최근 10 년간 노벨상 수상자는 평균 17년 1개월 동안 연구를 했으며, 노벨상을 받기까지는 평균 30년 2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지난 20년간 151명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중에 30대는 단 2명이었습니다. 최근 10년간 노벨 과학상 수상자의 평균 연령은 67.7세로 분석되었습니다. 재능을 발휘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자신의 분야에서 성과를 이루길 바란다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편이 훨씬 훌륭하다고 조언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래에 소개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대목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본, 나무등걸에 붙어 있던 나비의 번데기를 떠올렸다. 나비는 번데기에다 구멍을 뚫고 나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지만 오래 걸릴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입김으로 데워줬다. 열심히 데워준 덕분에 기적은 생 명보다 빠른 속도로 내 눈앞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집이 열리면서 나비가 천천히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날개를 뒤로 접으며 구겨지는 나비를 본 순간 의 공포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엾은 나비는 그 날개를 펴려고 파르르몸을 떨었다. 나는 내 입김으로 나 비를 도우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를 펴는 것은 태양 아래서 천천히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때늦은 다음이었다. 내 입김은 때가 되기도 전에 나비를 날개가 쭈그러진 채 집을 나서게 한 것이었다. 나비 는 필사적으로 몸을 떨었으나 몇 초 뒤 내 손바닥 위에서 죽어 갔다. 나는 나비의 가녀린 시체만큼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영재를 꿈꾸고 빨리 실력을 드러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동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빚어지는 오해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소개드리고 싶은 책이 바로 데이비드 F. 비요 크런드의 《아이들은 왜 느리게 자랄까?>입니다. 이 책은 아동기 발달이 더딘 이유와 아동기에 적합한 학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미성숙함이 오히려 아동기 발달에 적합한 특징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빨리 성숙해져야 한다는 생각과 조기교육이 위험하다고 경고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동기와 청소년기는 애벌레와 나비처럼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동기에 맞춘 학습 방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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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경 미
(현) 성북동 좋은선생님 원장
(현) 좋은 연구실 대표
(전) 대치동 KYLA Smart Education 원장
(전) 성북동 성당 주일학교 교사
저서 및 저작 활동
<뮤지컬 앤 더 시티> 저자
<일기는 사소한 숙제가 아니다> 저자
<초등 1, 2학년 처음공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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