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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니 Jan 25. 2024

새로운 길, 새로운 시작

차를 타고 운전만 해서 다니던 길을 두 발로 꼭꼭 밟고 걸으니 잘 아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도 스쳐 지나가는 것과 내 발로 디뎌서 직접 걷는 것과는 아는 것의 느낌이 다르다. 쭉 뻗은 도로 양 옆으로 잘 정비된 보도와 자전거도로까지, 그리고 돌담 옆 밭과 밭 너머로 보이는 바다까지. 직접 걸으면 차를 타고 놓쳤던 것까지 보게 되어 길이 새로워지는 걸까.


겨울인데 밭에는 뭐가 심겨서 자라고 있는지 보니 배추, 무, 콜라비, 양배추, 대파 등 겨울이지만 푸릇푸릇하게 저마다의 모습을 뽐내고 있다. 파밭 옆을 지날 때는 파의 알싸한 향기가 나고, 배추의 잎을 미쳐 묶어두지 않은 밭은 배추가 잎을 쫙 벌리고 있어 큰 꽃처럼 흐드러지게 잎이 너풀거린다. 그리고 곳곳의 전봇대 위에 쳐진 전깃줄 밑의 땅에는 비 오는 날에 굵은 비가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할 때 빗방울이 그리는 굵은 점처럼 새들이 앉았다가 흔적으로 남겨 둔 새똥이 그득그득 지워지지 않는 점처럼 새겨져 있다. 전깃줄 밑으로 지나가며 새들이 있는지 올려다보며 행여나 새 똥에 맞을까 봐 어깨가 움츠려든다.


경사가 심하지 않고 2km 이상 쭉 뻗은 보도라서 그런지 달리기 하는 사람, 걷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 저마다의 속도와 자신에게 맞는 운동으로 지금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사람들 무리 속에 섞여 같이 걷고 있으면 나도 활기찬 무리의 한 부분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허리 디스크가 있어 매일 걷기를 1시간 이상 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당부이자 명령에 걷기를 시작한 지 얼마간 되었다. 허리 통증이 다리로 전해지는 방사통도 있어 걷는 것이 수월하지는 않지만 수술해야 할 수 도있다는 엄포에 빠지지 않고 걷는 동안 앞으로의 계획도, 미래도 생각해 보게 된다. 늘 가는 길이 맞는지 갸우뚱하면서도 가고 있고, 어느 때는 확신하며 어느 때는 주저하며 가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가고 있으니 잘하고 있는 거라고 스스로를 토닥여본다. 지금 걷고 있는 길 위에 직접 걷고 있는 내 발이 두 눈에 보이는 것처럼 인생의 걷기에서도 스스로의 발이 잘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지나온 걸음을 기록해 주는 워치를 보면서 인생길도 지나왔을 때 반드시 남을 거라는 확신으로 위안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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