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 동안 친정 엄마와 함께 생활했다. 한 집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눈 뜨고 이부자리에 누울 때까지 깨어 있는 시간을 온전히 함께 하며 얼굴과 살을 비볐다. 아이들의 실없는 말과 농담에 같이 웃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같이 감탄하며 서로 더 먹어보라며 맛있지 않냐며 채근하기도 했다.
아이의 때 아닌 어리광을 받아주는 친정 엄마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내 살림을 요리조리 바꿔놓는 모양에 짜증을 내기도 했다. 같이 살지 않고 보낸 10년이 넘는 세월에 바뀐 생활습관과 모습들에 당황해하며 훈수를 두기도 했다.
그래도 신문물을 조금 더 아는 딸내미인 내가 엄마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쳐 드리고, 평소 핸드폰을 사용하시며 힘들었던 부분, 잘 몰랐던 부분을 찬찬히 알려드렸다. 필요한 물품은 재빠르게 쿠팡 로켓배송으로 주문해서 받아 보시게도 했고, 내가 쓰면서 좋았던 물건도 추천해 드리면서 집으로 가셔서 쓰실 수 있도록 주문해 놓기도 했다.
명절이라 문을 닫은 식당이 많아 맛있고 좋은 음식을 대접하려고 했던 계획이 많이 수포로 돌아갔고, 구경시켜 드리려고 했던 곳은 큰 아이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아쿠아 플라넷에 가려고 했는데 본인이 많이 갔다고 가기 싫다고 하는 바람에) 그래도 차선으로 선택한 곳을 좋아하셔서 다행이기도 했다.
제주 n연차에 접어들다 보니 웬만한 관광지도 볼거리도 많이 보신 상태라서 새로운 곳이 없어 고민의 연속이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들과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을 더 좋아하시고 동네 산책을 즐겨하시는 모습에 안도가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엄마는 우리 집에 오시면 육아와 살림에 지친 나를 대신해 주방과 아이들 곁에만 머물다 가신 기억이 전부다. 음식을 해 주시고 애들 목욕을 시켜 주며, 나와 남편이 심야영화를 볼 수 있도록 아이들을 재워주는 것도 엄마 몫이었다. 그리고 가시기 전 처치 곤란인 음식들과 냉장고를 싹 정리해 가시는 것도 엄마였다.
그 엄마가 이번에도 오셔서 아이들이 좀 커서 더 이상 목욕은 시켜주지 않아도 되어서 좀 수월해진 대신 제일 잘해 줄 수 있는 보드게임인 윷놀이를 10번 이상 애들과 해 주셨다. 또한 말끔하게 주방정리도 잊지 않으셨다.
나도 그 사이 조금은 철이 들어 더 이상 설거지와 식사 준비를 엄마가 주도하시지 않게 내가 다 하고, 아침에 엄마에게 아이들을 맡기며 늦잠 자지 않고 나와서 아침 식사를 챙기며 치웠다.
엄마가 머물다가 가신 날은 고작 3박 4일인데, 가시고 나면 머물렀던 기운이 없어진 공간의 휑함으로 마음 한편이 서늘하고 텅 빈 것 같다.
오늘도 가시기 전, 혼자서 등교가 충분히 가능한 아이들 등굣길을 같이 가서 데려다주셨다. 그리고 어김없이 냉장고 정리를 해 두셨고 본인이 주무신 손님용 이부자리를 잘 개서 세탁할 수 있도록 내놓으셨다.
남편과 엄마를 공항에 모셔다 드리고 출발장에서 엄마와 헤어지는데 모녀는 약속하지 않아도 눈물을 쏟았다.
"아프지 않게 무리하지 말고 잘 지내. 너무 깔끔하게 안 살아도 되니까 그렇게 엉덩이 붙일 새 없이 지내지 마. 손목도 무릎도 다 애껴야 해. 아플까 봐 제일 걱정이다. "
당부의 몇 마디를 간신히 떼며 이별의 말을 나눈다. 나도 눈물이 차 올라 도착하면 연락하라는 말만 겨우 건넸다. 다시못 볼 것도 아니고 다시 못 볼 사이도 아닌데, 헤어질 때면 늘 눈물이 난다.
우리가 계속 제주에 살 예정이고, 엄마가 명절이나 일이 있으면 또 오실 것이고 우리도 엄마를 방문하겠지만, 그래도 헤어짐은 늘 슬프다.
엄마가 어젯밤에 조용히 하신 말씀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 내가 이제 몇 번이나 더 제주에 올 수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어."
" 왜 못 와? 더 나이 드신 분들도 잘만 다니시는데, 무슨 소리야."
세월의 흔적인지, 젊은 날의 무리함인지, 마음의 병이 몸으로 나타난 것인지 모를 몇 가지 지병이 엄마에게 있다. 아마 그 모든 이유 때문이겠지만, 그 삶의 8할은 자식들이 차지하고 있으니 어떻게 갚아야 하나 늘 숙제이고 죄스러움이다.
어젯밤에 엄마가 하신 이야기를 남편과 나누며 많이 울었다. 엄마의 세월 속에 우리는 받기만 하고 드릴 게 많이 없어서, 엄마의 헌신과 사랑으로 여기에 우리가 있는데 갚을 길이 없어서 자꾸자꾸 눈물이 많이 났다.
곧 돌아오는 사위의 생일에 맞추어 미리 미역국을 끓여 밀키트처럼 냉동시켜 두셨고, 사위의 생일 용돈도 일찌감치 주셨다. 늘 고생이 많다며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계속 계속 받기만 하는데도 더 줄 수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하시는 사랑 앞에 더 드릴 말이 없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 이렇게나 크다. 덩치는 우리 중에 제일 작으신데 거인인 한 사람을 이번 명절에도 잘 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