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나는 그저 살았다.
조선소에서 케이블 풀링 일을 했다.
파워케이블을 당기며, 랜선을 연결하며, 나는 느꼈다.
파워케이블은 심장에서 나오는 혈관 같았고, 전기선들은 배의 각 파츠로 가는 신경 같았다.
몸이 연결되는 듯한 착각이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나는 몸을 원한다는 것을. 치유를 원한다는 것을.
그래서 물리치료를 배웠고, 태극권을 시작했다.
속죄하듯 움직였다. 카인처럼.
환자의 고통과 긴장을 느꼈다. 나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해주려 했다.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제물에서 도망쳐 나온 내 탓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몸에 힘이 들어간 탓인지, 손끝에선 내 고동소리만 느껴졌다.
하지만 태극권을 배우며, 나는 나의 중심을 찾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중심을 읽는 법도.
어떻게 흔들리면서도 그 중심을 찾아내는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환자의 몸에서도 중심을 잃어 호소하는 긴장과 통증을 읽어내기 시작했다.
기도하지 않았지만, 신은 손끝에 있었다.
환자의 어깨를 만질 때, 태극권으로 중심을 잡을 때, 신은 말로 오지 않았다. 감각으로 왔다.
따뜻함으로. 호흡으로. 손끝의 떨림으로.
나는 여전히 번제물로서 실패한 자였다. 말할 자격 없는 자였다.
그런데 신은 내 자격을 묻지 않았다.
손끝이 뜨거워졌다. 그것은 기도였을지 모른다.
나는 제단에서 내려온 자였지만, 손끝에서, 호흡에서, 중심에서, 여전히 신을 만나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서원의 다른 형태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