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훈을 얻었다면 현재에 집중하기, 그럼에도 부딪히기
최근 온라인 영어 회화 수업을 하는데 튜터가 이런 조언을 했다.
"네 문법은 괜찮은데 문제는 네가 말하면서 계속 문장을 덧붙여서 고치는 거야.
조금 틀려도 듣는 사람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까 뱉은 문장은 일단 그냥 넘겨봐.”
으. 나도 알고 있다.
어느 시기부터 생겨난 못난 습관이다.
말을 하면서 동시에 앞서 말한 문장을 고치는 것이다.
영어뿐 아니라 한국어를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부연 설명이 길어진다기보다는
앞서 내가 말한 문장에서 스스로 틀렸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나
오해를 살만한 내용을 그냥 두지 않고 계속 고치려 든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요. 아 물론 제 생각이 틀렸을 수 있겠지만요. 또 이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요. 그렇지만 일단 이렇게 생각하는데요..."
모든 비판을 피해 가는 완전무결한 의견 따위를 꿈꾸는 걸까?
하지만 내가 뱉은 말을 그저 희부윰한 말 덩어리일 뿐이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주장하지 못한 채.
고백하자면 단순히 말하기의 문제는 아니다.
끊임없이 과거를 회상하고 그 상황을 바로잡는 상상을 하는 평소 습관이 행동으로 옮겨 갔을 뿐이다.
나는 늘 내가 과거에 하지 않은 선택지를 떠올려 본다.
내가 그때 이렇게 했다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며 개선점을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습관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교훈을 얻고 난 뒤에도 여전히 과거에 갇힌 장면을 끊임없이 되감기 하는 것이다.
특히 타자와 얽힌 사건이라면 되감기는 더욱 오래 계속된다.
내가 그때 그 언니를 변호해 줬더라면?
내가 그때 욕심은 좀 내려놓고 주변 사람들과 좀 더 어울렸다면?
내가 그때 질투심은 버리고 내가 느낀 주변 사람의 장점을 꼭 알려 주었더라면?
내가 아무리 상상 속 평행 우주를 만들어 낸들 실제 세계에서는 어느 것 하나 바뀌지 않는데도 말이다.
(오. 혹시 이 이야기를 읽으며 그냥 당사자를 불러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그건 용기와 배려가 아닌 무모함과 욕심일 확률이 크다.)
‘틀린 걸 고치는 게 틀린 것’이라는 이 이상한 문장이
미래로 나아가지 못 한 채 과거만 계속 되감기 하던 나를 깨웠다.
그리고 튜터는 이어 이렇게 말했다.
뱉은 문장은 일단 흘려보내고, 실수는 기억해뒀다 다음에 더 나은 문장을 말하려 애써보라고.
그러면 어느새 실수는 줄고 더 좋은 문장을 말하고 있을 거라 했다.
맞다. 방금 말한 문장 뒤에 바로 더 나은 문장을 덧붙여 말한다 한들 그 순간 내 영어 실력이 나아지는 게 아니다.
다음번에 내가 더 명확하고 옳은 문장으로, 원하는 대화를 할 수 있는 게 바로 언어 실력일 것이다.
이건 언어로 만드는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관계의 실력은 상상 속 완벽한 내가 아니라, 오직 현재에 내가 말과 행동으로 증명해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집중해야 하는 건 바꿀 수 없는 과거의 장면이 아니라 지금 내게 주어진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이다.
부끄럽게도 당분간은 여전히
'the'를 종종 빼고 말하고,
단수 명사에 s를 붙여 발음하는 실수도 하고,
더 나은 문장을 말하겠다며 엇비슷한 문장 구조의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관계에서도
전체로 뭉뚱그려 한 사람의 귀중한 개별성을 놓치거나,
머리로는 틀렸다 생각하는 전제를 습관처럼 사실인 양 내뱉고,
하루아침에 쌓아 올릴 수 없는 내공을 탐내며 별안간 관계 전체를 뒤트는 짓도 여전할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 부딪혀 나갈 수밖에 없다는 걸,
분명 실수하고 후회도 할 테지만 굴하지 않고 다시 부딪히는 용기를 내는 게 관계의 정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저 되감기 버튼에 손을 뗐을 뿐인데 벌써 조금 담대해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