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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Aug 19. 2023

두고 간 인절미 먹다가 울다가

일간 오은아


  

엄마 아버지가 책방엘 다녀갔다.  40 중반 나이의 딸 (나는 왜 이렇게 어느새 나이를 이만큼이나 먹었나.) 에게 포도를 한 상자 내려주고 책방 커피를 먹었다고 커피값 5만 원짜리 2장을 기분 좋게 주신다. 문어와 인절미를 주셨고 사위 티셔츠를 하나 샀다고 예쁘게 포장된 옷을 백화점 쇼핑백 채 내어 준다. (나는 이것 저것 챙겨 내어놓는 여기서부터 눈물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아버지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3년 안에 내가 죽기라도 하면(?)"

이라는 말이 맥락 없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 말을 듣는데 명치끝이 아프다.  연세는 드셨지만 두 분이서 시장이고 백화점이고 잘 다니시는데 노화로 누구나 으레 있는 병치레 말고는 생활도 잘 하시는데...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5만 원짜리 두장을 들고서 

"아싸~ " 열일곱으로 돌아가 너스레를 떤다.

그런데 나는 운다.


내가 막는다고 막아지는 고통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 피하고 싶다고 천년만년 피할 수만은 없는 사건 앞에서 속수무책 무기력한 내가 보였다.


마음이 힘들다.

아침만 해도 희망과 자기 경영과 파이팅 넘치는 말들을 쏟아냈었는데...

늙어진 두 분의 모습과 늙어버린 말들, 늙고 있는 우리의 시간을 보고 있자니 숨통이 턱 막힌다.

감정 과잉이라도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연기를 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백세 시대에 왠 3년? 하하"


근데 있지.... 나 굉장히 겁나.






출애굽 말씀을 상기한다.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광야시대 40년을 견뎌야 한다. 한 명도 예외는 없고 과정 없는 결과가 손쉽게 오기란 더더욱 불가능하다. 거기서는 죽음 아니며 견딤  둘 뿐인 상황이다. 고난이 끊임없이 계속된다.


계속되는 고난 가운데 나는 심지 굳은 가나안을 내 마음속에 품을 수 있을 것인가를 물어본다.

누구라도 하는 탈애굽은 목적이 될 수 없다. 나는 시대 먼 편에서 바라보니 가나안이 보이지마는.... 시간 한가운데 나의 가나안은 의심스럽고 불안한 게 사실이다. 가나안은 스스로의 믿음과 의지와 견딤으로 각자가 도달해야한다.


이것은 비단 신앙의 문제만이 아니다.

삶을 살아가기에 감당해야 하는 괴리감과 이질감과 불편감, 내 심장을 거기에 두는 것 자체가 못마땅한 상황과 사건과 사람. 이 모든 광야의 심정 같은 것에서 나는 어떻게 처신할 건가 하는 문제. 꽁무니 뺀다고 마주칠 일이 영영 안 오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럼 이렇게 생겨먹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 것일까... 어떤 마음으로?




눈물을 닦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떡과 포도를 내 두 아이에게 먹인다.


https://youtu.be/jK1KQN78W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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