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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Jun 16. 2023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누를걸 그랬어

시간에 떠밀리지 않기


시간에 쫓겨 열심히 골목을 빠져나오는데 앞에 자동차 운전 연습 차량 대여섯 대가 나란히 우회전 대기를 하고 있다. (참고로 우리 아파트 정문 앞에 운전면허학원이 있다) 차 뒷모습들이 한결같이 그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다. 골목을 벗어나려면 우회전을 해 큰 대로 쪽으로 나가야 한다. 운전연습차량들 맨 끝에 내가 있다.




아르바이트생에게 20분 정도 연장 근무를 부탁했다.

오전 모임을 끝내고 아이들 간식 챙겨 먹이러 집에 잠깐 들렀다. 나는 다시 책방으로 아이들은 학원으로 나오는 길이다. 5분 10분을 다툰다는 것이 이런 기분. 그런데 시간보다 내 마음이 더 촉박하다.

아이들을 학원에 데려다주고 가면 딱 좋은데... 꾸물 거리는 큰 녀석이 현관문까지도 나오지 못한 채 엘리베이터가 우리 층에 서버렸다. 엘리베이터를 잡고 아들을 기다리는 것이 민폐일 수도 있고 그것보다 앞서 내 시간 1, 2분이 어마하게 급한 마음에 "엄마 먼저 간다" 하고선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눌러버렸다. 나 혼자 내려왔다.


기다려주지도 못하는 너른 품 없는 엄마 모양으로 헐레벌떡 내려왔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서버렸다. 꼼짝없이 운전연습차량 일곱 대 뒤에 내가 줄을 섰다. 그냥 막혀있다고 보면 되겠다. 앞차를 재촉할 수도 없고 뒤돌아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딱 갇혀서 오갈 수가 없다.


몇 분 안 되는 그 시간에 많은 것이 생각난다.

못 기다려주고 엘리베이터를 닫아버린 엄마는 가지도 못하는 길에 서버렸고 닫힌 엘리베이터를 물끄러미 보고 서 있을 내 아이들의 얼굴이 풍선처럼 동동 떠다닌다. 엘리베이터가 13층을 족히 몇 번은 오르락내리락 했겠다.


 느릿한 앞차들에게 괜한 짜증이 났다. 글쎄 더 깊게 들어가 보면 엘리베이터를 잡아서 여유 있게 웃으며 같이 내려오지 못한 내 촉박한 마음에 짜증이 났다고 할까.  매일 5분 10분을 다투고 그 좁은 시간 안에서 모든 것이 내 시나리오대로 돌아가리라 생각하는 걸까? 이런 상황이 되었으니 하는 말이지만 요즘 내 마음의 각박과 촉박을 자주 본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될 일도 많은데 시간과 체력은 쉬이 고갈되기 일쑤다. 그렇다라면 포기할 건 포기하고 원씽할 건 원씽해야 될 일인데 포인트가 잘 안 집힌 채로 마음만 바쁘니 항상 스텝이 꼬인다.

그리고 마음도 꼬인다...



© tak_tag, 출처 Unsplash



책방 10분 비웠다 치자. 손님들이 주인 없는 책방을 10분 정도 맞닥뜨린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그러고 보면 빠르게 걷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나는 몹시 빠른 걸음을 한다.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사람들과 나란히 걸어도 되는 상황에 어느새 대여섯 발자국 앞서 걷고 있는 내가 쉬이 발견된다.


그렇다고 미리 모든 일을 사전에 하는 성격이냐. 그것도 아니다. 미루는 일들도 산적하다. 실상 결과로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조바심을 곱절로 사는 성격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고요한 시간 속에 하나의 일을 고이 얹어 해결을 본 다음 시간을 싣기보다 지금의 시간 위에 항상 앞으로의 시간을 겹쳐 얹어버리기 일쑤니 그 가중의 무게가 내 어깨를 내리누르는 적이 얼마나 많겠는가.


아무리 의식적인 연습을 내고, 조금 더 천천히를 외쳐보지만 시간의 촉박함 앞에 나는 또 사람들이 저만치 뒤에 걸어오는 그림을 만들어 버린다.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데 왜 큰일이 난 것처럼 시간을 뭉쳐 앞세울까!



© chaos_sun, 출처 Pixabay



앞 차들이 다 빠지고 대로에 들어섰다.


나일론 신앙이던 내 입에서 백만 년 만에 기도가 나온다.


"하나님 나의 하루를 그르치지 않게 하소서. 시끄럽고 바쁜 마음이 여유 있어도 되는 소중한 시간을 덮치지 않게 하소서. 느리지만 단단하게 걷게 하시고 옆과 뒤를 보는 걸음을 걷게 하소서. 시간의 떠밀림 속에 누군가가 뒷전으로 밀리거나 사라지지 않도록 하소서. 일의 그르침은 항상 몇 초 상간 내 마음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일을 잠시도 잊지 않게 하소서 "




책방에 도착했다.


손님들은 모두 음료를 받은 상태였고 아르바이트생과 나는 교대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되었으며 내가 도착한 이후로 1시간 안에 새로운 손님은 오지도 않았다.


한숨 돌리자마자 커피를 한 잔 만들었다. 커피 한 잔을 커피에 집중한 채 마신 적이 언제였던가. 1/3을 먹을라치면 그다음 생각과 일로 바삐 시간을 걷어내느라 커피는 이내 식어 맛이 없게 되었다.


오늘은 라테를 그득 부어 앉았다.

이 라테를 조용히 천천히 다 마실 때까지 다른 시간을 얹지 않기로 하고 말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말을 멈추고 달려온 길을 되돌아봅니다.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립니다."

오늘따라 신영복 선생님의 이 문구가 머리에서 휙휙 날아다닌다.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누르고 토끼 같은 내 아이들을 태워 내려왔다.

넉넉한 웃음으로 손인사를 건네고 아이들이 학원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 오늘에 영혼이 뒤가 아닌 옆에 선 장면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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