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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OH Sep 02. 2023

슬픈 오만원

책방 아무나 하나?


당신(의 정성과 수고는) 얼마예요?






                                  


아름다운 한 여인이 파리의 카페에 앉아 있는 파블로 피카소에게 다가와 자신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적절한 대가를 치르겠다고 말했다. 피카소는 몇 분 만에 여인의 모습을 스케치해 주었다. 그리고 50만 프랑(약 8천만 원)을 요구했다. 여자가 놀라서 항의했다.
" 아니, 선생님은 그림을 그리는 데 불과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잖아요?
피카소가 대답했다.
천만에요. 나는 당신을 그리는 데 40년이 걸렸습니다.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中



십몇 년 만에 다시 읽은 책, 그때(전업주부로 지낼 때)는 그냥 지나쳤던 구절에서 손이 멈췄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책방에는 일곱 개의 모임이 있다. 책방에서 책모임은 요즘 당연한 모습이 되었지만 그 외에도 이색 모임이나 기획 프로그램도 짬짬이 넣어가며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여행 프로그램이 기억에 남는데 여기 오시는 샘들이(모든 모임 참여자 분들을 "샘"이라는 통칭 어를 사용하여 부른다. *샘 : 물이 땅에서 솟아 나오는 곳, 힘이나 기운이 솟아나게 하는 원천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흔히 선생님의 줄임말 선생님과도 함께 쓸 수 있어 이렇게 부르기를 부탁드리고 있다.) 손수 기획하고 모든 장소 섭외, 답사를 마친 후 공개 홍보, 모델, 진행요원까지 겸했던 <통영 블루스>가 그것이다. 개중에는 뮤지컬 모임이나 연극모임, 언니도 가수다 처럼 기획에서 멈춘 것도 있고 홍보는 했으나 별반응이 없어 노트북에서 잠자는 프로그램도 꽤 된다.


즐겁게 하고 싶었다. 나아가 단조롭고 기능적인 것에만 허우적거리는 우리 삶이 좀 다채롭고 즐거워지면 어떨까? 어떨 땐 괜한 일을 벌였다 싶을 만큼 힘 빠지는 일도 많지만 함께 즐거울 수 있고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이 하고 싶었다. 밖에서 볼 때는 기획에서 무산된 혹은 한 번 펼쳐졌다가도 엎어진 프로그램보다는 지금 현재에 주목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으로 평가하기 쉬울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운영자의 입장에서 굳이 나의 변을 얹자면 뭔가 새로움에 늘 고심하는 일련의 노력들이 들어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그 노력들은 주로 물밑작업들일 때가 많으니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애쓰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말이 되겠다.



 이런 식의 책방 운영을 하다 보니 책이라는 물건을 사고파는 1차적 기능의 책방이라기보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는 커뮤니티나 소통 공간으로의 기능이 월등히 많은 게 사실이다. 한창 열의를 낼 때는 열한 개 모임을 운영했다. 한두 모임 제외하고 대다수 모임을 리드했다. 지금은 숨 고르기를 하면서 에너지와 열정을 재분배하고 있다. 배터리 충전하듯 나도 이제 만 7년을 채우고 8년 차 넘어서다 보니 시간과 에너지를 잘 안배해야 지치지 않고 롱런하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터득되었다고나 할까.



책 모임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허약했던 자신의 마음이 가치 있고 단단한 곳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의 에너지들은 마치 전염되기라도 하듯 타자로 건너간다. 물론 살다 보면 내 하나의 정신과 육신을 돌보는 일조차도 버거워 자주 허덕일 때가 있다. 그러나 미약하나마 우리의 바른 지향의 가치가 덧대어지고 쌓여간다면 그것이 곧 건강한 공동체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상당한 뿌듯함도 느낀다. 그 힘은 '내일 당장이라도 책방문을 닫았으면' 싶을 만큼 낙심될 때 또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곤 했다.






서설이 길다.

오늘 하고픈 말은 위에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책에 인용된 문구와 일맥상통이다.

책방을 이용하시는 손님들이 책방의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가까운 모임 샘들에게는 한 번씩 여쭤보지만 역시나 객관적이진 않다. 물건과 화폐를 교환하는 가치를 넘어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서비스나 가치에 대해 어느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7년 넘게 책방을 꾸려가면서 이곳이 주는 이미지가 상당히 왜곡되었구나 느낀 적이 있다. 책방을 도서관과 혼돈하거나 자원봉사적 성격? 공공재인 성격? 비영리, 사회사업? 등으로 착각을 하시는 건 아닐까 의문을 제기해 보고플 때가 종종 있다.


빙빙 돌리지 말고 바로 이야기해보자.

얼마 전에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우리 모임 등록 하신 샘이었는데 한 두 번 나오시고 내게 준 전화 한 통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오시지 않으셨다.


우리 책방에서 열리는 모임에는 한 달 회비 격인 참여비 5만 원이 책정되어 있다. 한 달엔 4주 기준이고 2시간 모임을 가진다. 전화상 건너오는 물음은 이런 것이다. 5만 원에 포함되는 서비스를 조목 따지신다.

참고로 모임 때마다 찻잔을 세팅하고 커피 (아메리카노)와 커피를 드시지 않는 분을 위해 유기농 꽃차나 허브차, 건강차 등을 번갈아 내어 놓는다.


"5만 원에 차 한 잔 값이 포함된 건가요? 커피는 없던데요?"

"아 샘~ 커피는 차 옆에 보온병에 준비되어 있었는데요..."

"아! 그랬어요? 제가 경황이 없어 못 봤네요. 그럼 차 두 잔 외 5만 원 회비는 어디에 쓰이는 건가요?


나는 솔직히 더 이상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모르시니 물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서비스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솔직히 말은 차분하게 했지만 마음 한켠에서 씁쓸하고 약간은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모르면 물을 수 있지만 이것은 순수 질의 대 답변이라기보다 평소 책방과 책모임에 대한 편견이 연속적으로 넘어 들어오는 느낌이다.


 독서모임 할 사람들을 모으고 그 독서모임을 유지시키기 위한 회원 관리 및 진행 등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가 들어가는 것이 외부의 시선으로는 보이지 않을지 모르나 이러한 여타의 노력을 들이지 않고는 책방 모임과 책방을 유지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조금 더 쾌적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조명하나 잔 하나에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고까지는 차마 말씀드리지 않았다. 코로나가 지나도 찻잔을 뜨거운 물에 소독하거나 화장실을 매번 소독약으로 닦는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한 분 한 분 만족스러운 상황을 만들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 노력하고 있다는 말도, 같은 값이면 더 의미 있고 좋은 책을 권하기 위해 매번 출판사와 대형 서점과 리뷰어들의 정보를 수시로 들여다보고 큐레이션 하는 노력은 왜 비용처리가 되지 않는지도 말씀드리지 못했다.


모임 때 샘들의 나눔이 순조로울 때도 있으나 주제를 벗어나거나 자칫 토론이 산으로 갈 때 감정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중심을 잡는 중재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과 사뭇 진지할 때 유쾌한 포인트 한 두 대목을 준비하고 있노라 하는 이야기도 모두 말씀드리지는 못했다.


책방지기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기에 모임 회비 5만 원이 책정한 것일까.


모임을 열기 위해 모임에 대한 기획, 홍보, 상담을 통해 사람들을 모으고 그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좋은 유기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유도, 동기부여, 응원해야 한다.


 좋은 마음으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참 편안하기만 하고 붉어질 문제 따윈 없을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서로 사소한 것으로 마음이 상하고 오해하여 독서 모임 분위기의 공기가 싸하게 바뀔 때도 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으나 서로의 입장과 상황이 다르다 보니 별일 아닌 것 같아도 개인적으로는 상처를 받는 일도 생기기 마련이다. 이것은 독서모임 아닌 더한 의미의 모임이라도 사람과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비일비재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왠지 선한 사람들만 모일 것 같은 거룩한(?) 종교 모임에서조차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속상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가 말이다.


그러한 불편한 일에 교통정리 없이 모임 유지가 될까? 교통정리는 오롯 책방지기 몫이다. 불만의 목소리는 나라는 징거다리로 모이게 되어 있고 나는 누구나 밟고 지나갈 징검다리의 면적과 품을 키워 그 자리에 우두커니 있어야 하는 직업이기도 하다는 것을 7년의 경험으로 배웠다.


교통정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내가 예수나 석가와 같은 품 넓은 사람이면 좋겠지만 나도 내 마음을 다스려가며 일을 한다. 이유여하 어떻든 이런 업을 하려면 조금 더 단단하게 구심점 역할을 하며 서 있어야 한다는 걸 느낀다. 사람들의 말에 오르내리지 않으려면 내 속내를 모두 내어 놓을 수도 없고 어떤 이로부터 들은 말을 전달하거나 아는 척을 해서도 안된다. 객관적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야 한다.

'좋은  좋은 거다'마음에 이끌려서도 안된다. 규칙은 규칙이고 공과 사는 엄격 분리되어야 한다는 걸 하루하루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너무 폭이 큰 감정을 드러내어서도 안되고 칼같이 거절할 때는 뒤통수가 아찔하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야 뒷 탈이 없다!  


 A와 B의 이해관계가 충돌하여 교통정리를 원한다는 소식이 입수된다. 자기만의 해석이 오류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객관화하여 보여주어야 한다. 지적이나 훈계조는 절대 피해야 한다. 모임을 리드하기 위해 앉으면 모인 회원들의 얼굴색 파악이 굉장히 빠르다.

'풀렸구나, 아직이구나. 악화되었구나. 이 일은 아니지만 심기가 편하지는 않다. '

나는 나도 모르게 관심법을 터득한 것 마냥 그날의 사람과 분위기를 읽어낸다. 나는 책도 읽지만 사람들의 마음도 읽어내야 하는 이중 독서를 하고 있는 셈이다.


책방에 모임을 하러 오시는 샘들은 내 경험 상 한 네 가지 부류로 나뉜다.

순수하게 독서가 즐거운 사람, 마음의 허약을 이겨내어 보고자 심리적 치유의 일환으로 오시는 분,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냥 독서의 세계로 입문이 시급하다 요청하시는 분, 알뜰살뜰 자신의 성장을 목표로 치열하게 공부하는 마음으로 오시는 분.


나는 기획과 운영자로서 각각의 목적으로 여기에 오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파악하고 이들이 덜커덩거리지 않도록 중화해야 하고 서로 간의 턱을 낮추거나 잇거나 하며 분위기를 조절해야 한다. 아주 기민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책방 모임 일곱 ~열 개를 매일 루틴으로 이끈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굉장한 에너지가 들어가는 작업(?)이다.


또 독서라는 것은 어떠한가? 매번 즐거운가? 그렇지 않다. 심각한 삶의 물음 앞에 놓일 때가 있다. 허무 직전을 마주하기도 하고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메아리 같은 삶의 반복적 지루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봅시다. 그래도 살 만하지 않는가 하는 긍정과 동기부여를 끌어내는 것은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커피 손님 받아 주문한 음료를 만들어 드리는 것은 물리적 요구에 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만 여기는 사람의 마음이 모이는 곳이다. 내가 모두를 구원하거나 어떤 한 인생을 좌지우지한다는 말이 아니다. 내 몸과 마음을 건사하기도 어려운 시점에서 우리 모두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작지만 따뜻한 희망을 가져가도록 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책방지기의 주 업무이자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해당 요일이 되었으니 해당 도서로 2시간 좋은 나눔을 하고 기분 좋게 바이 바이 하는 일상의 반복만이 아니고 어떤 날엔 굉장히 심각한 인간 고뇌를 다루고, 또 어떤 날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자쾌를 맛보기도 하는, 독서와 삶이 만나 이루어져야 할 모든 감정과 경험이 기꺼이 가능하게 만드는 일.나는 그런 일을 하고 있다.


우리 책방에서 이루어지는  모임 전 1인 1 발제와 모임의 건강한 유지를 위해 필수적으로 서로가 지켜주었으면 하는 규칙을 종용하는 일, 셀 수도 없이 쏟아지는 신간 중에 의미 있는 한 권 책을 발견해 내는 일 등은 보이는 물건이 아니다.


또한 이 모든 소프트웨어적 기능이 작동하려면 공간력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다.

공간력이나 분위기, 편의시설의 갖춤, 관리, 변화등으로도 연결될 수 있겠다. 특히 공간력이라는 것은 사람의 심리나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조명과 인테리어 아늑한 배경음악 편안한 식물배치 등 상당히 노력을 기울인다. 종이컵에 티백을 기본차로 내어놔도 무방할 일이겠으나 이 공간에서 만큼은 한 존재로 대접받는 기분을 선물하면 좋겠다 하는 것이 변하지 않는 내 철칙이다. 이 공간에서만틈은 역할과 의무를 내려놓고 온전히 자신을 만나도록 나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이를테면 예쁜 찻잔에 찻잔받침을 세트로 준비하고 티팟에 초를 켠다. 기본차로 제공되는 차는 박하차, 장미꽃차, 비트차, 둥굴레 차 등 건강에 좋은 것들을 검증이 된 유기농 코너에서 심사숙고해 고른다. 커피도 좋은 원두를 쓰고 설탕시럽도 이왕이면 사탕수수시럽으로 낸다.

그날 날씨나 사회 분위기 등등을 고려해 음악을 적절한 음향으로 틀고 온도도 수시로 체크한다. 더 이야기할 것들이 많지만 그 정도는 일반카페에서도 하는 일이니 그냥 넘어가자. (넘어가자 하면서 일일이 말하는 꼴이 되어버렸지만)


누가 알아주는 일 아니나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는 생동의 느낌을 주어야 하고, 뭔지는 모르지만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야 하고, 잘은 파악이 안 되겠지만 당신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뉘앙스를 느끼도록 공기와 냄새까지 신경을 쓰며 이 공간을 매만지고 있다는 것, 그것이 책방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에게 불리고 있다.


자신 앞에 계산서의 항목이 들어가지 않았으나 숨은 그림자처럼 적용되는 일이 있다는 것, 그 수고와 노력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는 우리가 된다면 얼마나 서로에게 힘이 되고 감동이 되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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