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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OH Jul 03. 2024

나는 잊고, 당신이 기억한

책방 연 지 8년이 되었습니다

책방 연 지 8년이 되었다.




책방 차려놓고 1년을 설렘으로 보냈다.

그때는 장사라는 개념도 운영이라는 개념도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내 공간이 생기는 것이 좋았고 그것이 책방 이름을 달아서 매우 뿌듯했고 책방지기니 사장이니 하는 어색하기 짝이 없으나 좋기도 한 내 사회적 타이틀이 생겨 신이 났다. 나를 찾느니, 자아를 찾느니 하는 글을 마구 썼고 좋은 기회에 인터뷰라도 오면 엄마도 자아를 찾아야 한다며 독립운동하듯 외쳤지. 그렇게 날이 지나고 시간이 쌓였다.


1년이 되던 날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서울 박연식 선생님을 초청해 책방이 돌을 맞이했노라 대대적 광고를 하고 북레시피 닥터 행사를 온 천하에 알렸더랬다. 그렇게 2년, 3년이 지나고 4년 책방 생일, 생일에 맞는 글을 한 번 썼던 기억이 있다. 5년인가 6년 차에 희주 선생님 덕분에 반 등 떠밀려 책방 생일을 기념하는 작은 음악회를 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솔직히 작년 그러니까 7주년은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에너지 고갈이 심했던 터라 책방 기념일이 그렇게 마음에 와닿지가 않았다. 조용히는 지날 작정이었으나 그래도 당일 '오늘이 그날이군!' 알아차렸던 것 같기는 하다.

올해 나는 책방 여덟 번째 생일을 새~까맣게 기억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그날 나는 아르바이트 월급을 계산해 챙겼던 것 같고 곧 그만 둘 알바 자리를 이을 예비 아르바이트생들 면접을 본 것 같고 식물들 목을 축이느라 손발이 바빠졌던 것 등 이것저것 to do list를 하나씩 지워가는 것만으로도 촉박한 저녁을 맞았다. 먹고 치우고 정리하기 바쁘게 다음 날 독서모임 책을 읽어내고 불을 껐나 안 껐나 기억이 가물하나 아무튼 나도 모르게 잠이 든 채로 날짜가 바뀌었다.




책 읽는 좋은 의도로 만든 모임에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모이고 모임도 하나 둘 늘게 되면서 이 공간도 작은 사회가 되어갔다.  다양한 사람들의 연속적 관계 안에는 응당 있을 갖가지 문제들도 생기기 마련이다. 여기서 교통정리를 할 사람은 오롯 나뿐이다. 그 교통정리가 꽤 힘에 부쳤던 게다.


친구, 가족 관계와는 판이하게 다른 사람들 간 관계를 여러 형태로 경험했고 아직도 해 나가는 중이다. 좋은 일 환희에 가까운 기쁨도 책장 한 면을 장식하겠으나 어디 책에 기쁨의 단면만 쓰여 있겠는가. 비통, 좌절, 쓰라림, 억울하고 아프고 슬픈 이면의 정서들도 끊임없이 건들리는 것이 현실이다. 양면의 시간들이  톡톡히 제 역할들을 하며 내게로 걸어 들어왔다.


시쳇말로 멘탈이 탈탈 털려 중심 못 잡고 방황하던 내 영혼이 그 시간 안에 포함되었지. 그러다 또 어디선가 구원의 손길이 다가와 꼴딱이는 내게 생명수를 선사하기도 했고 말이다.


작은 조각보만 한 시나리오를 들고 있던 나.

어디 인생이 내 시나리오대로 흘러주겠는가 말이다.

계획에 없던 일들이 성큼 다가올 때 내 시나리오에서 무엇을 지우고 무엇을 더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내 시나리오 자체를 폐기처분해야 할지도 모르는 위력을 가진 파고들. 코로나도 그랬고 남편의 무릎 수술을 받았을 때나 아이들의  소소한 잔병치레 그 이상의 것들이 내 발목을 잡을 때에도 내게 입력된 기본값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방 문을 여는 것"이었고 어떻게 해서든지 책방을 "지속시키는 것"이었다.  


작년 가을 겨울쯤에는 극에 달아 여차하면 책방을 내어 놓고 문을 닫을 요량으로 부동산 명함을 유심히 본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 선택이 내 모든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코로나 고비도 내 역할 전부를 요구하던 집안 사건 사고들, 책방 사건 사고들, 특히 인간과 인간 사이 교통사고도 그랬듯 이번에도 무사히 넘겨 오늘에 다달았다. 책방을 부동산에 보내기 직전 내 몸을 말레니시아에 보냈던 것은 신의 한수였다. 단 3일만에 결정, 준비를 마친 연유에는 그런 심경이 포함된 것이었다. 전환점이 될 수 있었던 적기의 휴식이자 영혼의 휴식이었다.


지금은 열병처럼 다가온 에너지 고갈사태를 잘 추슬러 다시금 중심을 잡아가는 중이다. 책방 8년의 시간 안에 내 부족과 넘침을 직면 중이다. 여태 안될 것 같아 하지 못했던 일은, 하면 될 것도 같은 생각으로 바꾸고. 결핍이라 어쩔 수 없는 이름으로 종결했던 선택은, 찾으면 찾아질 것도 같은 채움으로 다시금 용기를 내 보는 중이다. 그 이름을 공식적으로는 "책방 개편"이라 이름 붙였지만 내 마음의 추스름 과정이자 아홉살 먹을 책방 서사의 과정이 아닐까. 타인은 알아보지도 못할 미미한 변화일지라도 이전과는 끊임없이 달라질 것을 추구하면서 이제는 좀 즐기는 것에 가깝게, 재미있게, 자유롭게 아홉살 생일을 만들어 보고 싶다.


2025년 7월 1일 나는 무어라 쓰고 있을까?.





7월 1일은 정말이지 "그날"임을 까맣게 잊은 채 보냈다.

아침에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내 손으로 누른 비밀번호 끝자리 0701은 손끝에만 머물렀나 보다.

7월 2일 화요독서회를 분주하게 준비하던 오전.

윤주샘의 손에 들려져 내게로 전달된 선물, 여백서원 책주머니, 책주머니 안에 들어 있던 당근 케이크, 케이크에 꽂힐 숫자 "8"을 봄과 동시에 전율이 흘렀다.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보지 감정임에 틀림없었다.

잊을 수 없는 날을 잊은 데 대한 놀라움, 타인에게서 기억되어 오던 7월 1일, 챙김과 돌봄을 한 몸에 받는 것으로 표현될? 고마움, 공간이라기에도 적합하지 않고 시간이라기에도 모자란 읽다익다의 서사가 생기고 있다는 데 대한 벅참,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 그간 견디느라 애쓴 내 몸, 아팠지만 강해진 내 마음. 보람이라는 것으로 불려질 뿌듯함. 함께 축하해 주는 더 많은 사람들에 대한 든든함.

언어로 딱 떨어질만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은 채 마주한 더 많은 감정들...

그렇게 그날이 지났다.




책방 연 지 8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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