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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Jun 19. 2024

1646 옛 인연 지금 인연

책방에서 만난 사람들 #1



어느 날 이곳이 마음에 든다며 오신 중년의 여인 한 분이 계셨다. 직원의 말에 의하면 내가 없을 때 책방을 한 번 다녀가신 듯했다. 이번에는 책방 모임을 참여하기 위해 오셨다. 깊이 쓴 모자를 벗는 순간 모자에 가려진 얼굴이 드러난다. 어? '아. 는. 사. 람'이다.

"혹 성함이...?"

이.영.......선생님 시선도 내 눈에 고정이다. 선생님도 내가 아는 사람이었겠지. 30년이 지난 마당에 그 많은 학생들 중 내가 기억에 없을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선생님은 나를 기억하셨다.


나의 중 3 때 담임 선생님.


중학교 3학년, 열 다섯 즈음에서 막 열여섯으로 넘어갈 때 그녀는 아가씨 선생님이었다. 아가씨 선생님은 아이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았다. 그 선생님이 우리 담임으로 확정되던 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남편과 아이들이 없는 그때 선생님은 그 에너지를 우리에게 다 쓰신 듯했다. 어려운 가정환경의 아이들을 살뜰히 보살피고 아이들 하나하나 눈빛 맞추기를 다정스레 하셨다. 친구 같은 선생님이라는 기억을 내게 선물한 선생님이기도 했다.


선생님과의 기억 중 유독 내 기억 속에 선명함으로 남아있는 수업시간이 있는데 바로 <방망이 깎던 노인> 단원을 배우던 시간이다. 맞춤법에서 아이들이 잘 틀리던 "깎"자를 힘주어 가르치던 일도 기억에 남지만 그때의 수필 내용이 퍽 가슴에 와닿았나 보다. 자신의 일에 묵묵히 공을 들이고 차근히 시간을 쌓는 이의 삶의 태도, 정성껏 매 순간을 매만지는 이의 윤이 나는 삶! 지금도 책방을 운영하기가 버거울 때 나를 다독이는 말들과 내용들 아니었나?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지금의 나의 지향과도 맞닿은 그때의 시간이 가장 또렷한 수필의 제목이 되어 마음속 문화기억처럼 남아있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에피소드는 결혼식이다. 선생님의 결혼식 사진에는 내가 있다. 그때는 중학교 졸업을 하고 갓 고등학생이 된 나였을 거다. 지금이야 축하해 드리러 어디든 가는 것이 대수겠는가만은 사춘기 여고생 그것도 졸업한 선생님의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것은 당시 소심한 나로서는 굉장히 용기를 낸 사건이었다. 그것도 멀찍이 뒤에서 선생님의 행복을 빌고만 왔어야 그때의 나에 걸맞은 기억인데 다시금 만난 선생님은 선생님의 결혼식 사진을 정말 내게 보여주셨다. 수줍은 내가 큰 용기를 내어 하객 뒤편의 한 사람이 된 사진. 

학창시절 통틀어 학교 선생님의 결혼식에 참석한 유일한 추억이기도 하니 어떻게 선생님의 이름을, 추억을 잊고 살았겠는가. 


여하튼 나의 학창 시절, 현재의 나와 현재의 선생님의 인연이 기적 같기만 사건이었다. 이 넓고 넓은 세상 중 이 좁다란 동네 '여기"에서 만나지 다니. 그 길고 긴 시간을 지나 "지금" 선생님과 내가 이렇게 마주하다니.


선생님의 지인들에게 제자가 하는 책방에 나가게 되었나고 하니 모두 그렇게 만류하더란다. 제자가 엄청 부담스러워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겠지. 학교, 제자, 선생님의 타이틀이 현재의 시간에 어려움으로 작용할까  반대한 지인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선생님과 나는 예전의 관계에서 새로운 관계로 건나왔다. 

그때의 추억은 그때의 추억대로 두고 현재는 새로운 현재를 사는 인간으로서 다시금 만난 것이다.

주위에 말에 사로잡히지 않고 대다수의 우려를 나의 아니 우리의 새로운 시각으로 대체해 버린 선생님과 나!

우리는 현재를 사는 힘으로 과거와 분리된 또 한 세계를 받아들이는 중이다. 선생님과 내가 그 힘을 발휘하며 끄덕 없이 현재의 관계로 새롭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럽고 떳떳할 수가 없다. 실지 선생님은 내게 모든 응원을 아끼지 않는 든든한 후원자이자 책방 독서모임 회원이다. 


선생님은 30여 년 전 제자에게 어떤 권위도 쓸 생각이 없으신 분이다. 우리는 책이나 삶이 던지는 화두로 우리 현재의 시간을 아낌없이 펼쳐내 보인다. 부끄러울 것도 없고 체면 자릴 것도 없이 진솔한 존재적 실존으로 만난다.


어느 날 아침, 지난 토론 때 나의 이야기에 꼭 맞는 시가 생각났다며 톡으로 시를 보내주신다. 

책방에는 선생님의 지인들을 초대해 제자의 책방 홍보를 맡아주시기도 하고 기획 행사 때마다 힘내라고 두둑한 커피값(커피 값치곤 너무 크다)을 챙겨주시기도 한다. 

이른 퇴직을 하시고 마련한 선생님의 시골집도 두어 번 방문했다. 아기자기 상추며 로메인 치커리 루꼴라를 한 바구니 얻어와 만든 신선한 샐러드를 먹으며 생각한다. 


기적을 현실로 만들어 사는 이 모든 시간이 감사하다.

다들 한 번 맺은 인연 딱 그 모양으로만 인연을 지탱할 때 여러 모습으로 인연의 재회, 지속을 지어가기에 기쁘고 즐겁다.

이렇게 살 수 있는 마음과 마음들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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