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찾는 지혜
많은 사람들은 행복을 위해서 산다고 하면서도 지금 누리고 있는 소소한 행복들을 놓치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그 사이클을 다시 반복하며 일상을 살아간다. 나 역시도 매일 나도 모르게 똑같이 그렇게 하고 있다. 날마다 맑고 푸르른 날만 기다리는 것이 나약하고 허영 된 생각이라고 믿고 살아왔던 것 같다. ‘어떻게 매일 맑고 푸르겠어. 내 맘대로만 되는 일이 얼마나 되겠어? 날마다 어떻게 화창해? 노력하다 보면 맑은 날도 오긴 오겠지.’ 하고 말이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사람만 만나고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사는 게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시간이 더 긴 나에겐 오늘의 즐거움을 느끼며 사는 것 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려웠다.
정신없는 평일들도 모자라 가족들과 평온하게 쉬어야 하는 주말에도 일도 하고, 삼시 세끼 차리고 치우고, 설거지에 빨래하고 눈코 틀새 없이 바쁘기만 하니 더 심통이 나곤 했다.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고 말해도 들은 둥 마는 둥 하는 두 남자들이 미워서 혼자 후다닥 해버리고 말곤 했다.
“매일 뭘 그렇게 바쁘게 살아?”
걱정인지 부러움인지 자신과 달라서 불편한 건지 몰라도 인생에서 한 번도 간절함을 느껴본 적 없이 평온하게만 삶을 살아온 것 같은 지인들은 한 번씩 내게 질문을 던진다. 물론 속을 들여다보고 속속들이 알아보면 속 시끄럽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까 싶지만, 여하튼 보이는 부분과 들리는 말로는 그러했다. 내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어느 것 하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었던 나에게 ‘그냥 편하게 ‘, ’ 없으면 없는 대로’라는 말들은 걷어내버려야 하는 불순물 같은 느낌이었다. 눈앞의 어려움을 이겨내면 이제 아무 걱정 없을 것 같지만 다른 어려움이 소리 없이 또 찾아온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눈앞에 찾아온 어려운 일들을 겪어내고 견뎌내고 버티다 보니 또 살아졌다. 언젠가 찾아올지 모르는 맑은 날을 기다리면서.
삶의 태도가 자신을 바꾸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 욕심내기보다 지금의 나와 내 삶 그리고 환경에 만족하며 사는 것, 작은 일에 안달복달하지 않고 너그러워지는 것, 고민과 어려움을 계속 안고 살지 않는 것,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느끼며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즐겁게 지내고, 하는 일마다 큰 어려움 없이 잘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삶의 태도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어 살아가던 그 순간까지도 나는 어떤 일이든 내가 안 하면 큰일 날까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하지만 이젠 안다. 내가 원하는 맑은 날씨, 화창한 날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렸을 때는 부모가 물려주신 대로 살아가게 되지만 그래서 그게 전부인 줄 알고 부모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독립된 어른이니까 더 빨리 더 당당하게 내가 바라는 나로 만들어 갈 수 있다. 우선 나 스스로 나를 조금 더 사랑하면 된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진짜 내가 되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그러면 다르게 살아갈 수 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가까운 가족들마저 나를 귀하게 대하지 않는다. 내 자리는 내가 만들어 가는 것. 누구보다도 자신이 스스로를 더 아끼고 사랑해야 했다. 아름다움은 마음에 붙이는 반창고 같은 것이라고 했다. 마음이 힘들 때마다 아름다운 것들을 떠올리며 치유해 나가는 시간들은 조금씩 나를 변화시켰다.
페이지마다 하늘의 푸르름이 스며든 책만을 좋아한다던 크리스티앙 보뱅의 <환의의 인간>이라는 책에서 이런 구절을 만났다.
연못은 하늘 아래 꽃을 피우고, 하늘은 연못을 마주 하며 곱게 단장하고 있었습니다. 새는 예언하는 듯한 날갯짓으로 숲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어요. 잠시 동안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나는 단지 우리가 ‘화창한 날’, ‘푸른 하늘’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표현들에는 신비로움이 묻어 있어요. 한 줄기 빛의 서늘한 칼날이 우리 마음의 문을 열어주면 우리가 수많은 별 아래에 묻혀 있는 것을 보게 되지요. 이따금 그것을 느끼고 고개를 듭니다. 아주 잠시 동안.
우리가 말하는 ‘좋은 날씨’란 바로 이런 것이에요.
매일 맑고 좋은 날씨가 계속될 수는 없지만 한 줄기 서늘한 칼날이 마음의 문을 열어줄 때, 내가 살아있다고 느낄 때, 걱정거리와 해야 할 일들을 잠시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보면 된다. 지금 이 순간 마음에 쏙 드는 내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남에게 기대는 법을 모르고 살았던 나는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고 나서도 남편이나 아이에게 기댄 적 없이 살아왔다. 그런데 그런 나의 태도들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도움을 청하면 된다. 오히려 도움을 청하고 나면 상대는 나를 도와주며 뿌듯해하고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고 느끼기 때문에 좋아했다. 모든 것을 내가 다 해결하고 해낸다고 나와 상대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던 것이다. 내가 나를 더 사랑하게 되면 스스로 나를 너무 힘들게 하지 않는다. 내가 너무 힘들기 전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스스로를 모두 소진해 버리지 않기 위해 애쓰게 된다.
내 인생의 푸르름과 화창한 날씨를 자주 마주하기 위해서는 조금씩 나의 부족한 부분을 드러내고 손을 내미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렇게 요즘의 나는 ’ 도와줘.‘ ’ 고마워.‘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며 가족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조금 귀찮아하면서도 스스로 뿌듯해하는 두 남자들을 보며 생각했다. 실수하고 부족해도 자신들을 꼭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내이고 엄마인 내가 할 일이라는 것을.
‘모든 것을 내가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 스스로 만들어 둔 겉보기에만 화려한 불편한 의자 같은 것이었다. 그 의자에서 내려와 이제 자유로워지고 싶다. 내 인생의 기쁨을 만끽하는 사람, 나에게 어울리는 적당한 기쁨을 누릴 줄 아는 그런 사람. 나도 환의의 인간이 되고 싶다. 그러면 흐린 날에도 기쁜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여보 저 좀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