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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썸머 Jul 27. 2023

바쁠수록 필요한 진짜 방학

삶의 지혜



어지러웠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느낌인가 싶을 만큼 낯설고 불편했다. 대학시절 가늠할 줄도 모르고 받아마셨던 소주잔의 수만큼 불편했던 속을 참고 참다 집에 와서 토해냈을 때, 더 이상 아무것도 확인할 것이 없는데 속이 울렁거려 쓰라린 빈속을 부여잡고 후회의 화살을 쏘았던 딱 그때처럼,  어지럽고 울렁거려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술이라곤 구경도 안 했고,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 먹지 않았는데 마치 만취를 이기지 못한 환자처럼 힘들었다. 몸에 무리가 온 것일까? 매일 해야 하는 일과 앞으로 해야 하는 일, 날아오는 압박문자와 기다리는 대기문자들 사이에서 오늘은 방학특강을 가는 날이다.


의뢰받고 처음 출강이니 이제 와서 미룰 수도 없고 대신해 줄 사람도 없는데 방학날 아침 9시부터 자다 말고 눈썹을 휘날리고 나올 아이들에게 못할 짓을 할 수는 없었다.


애 꿎은 화장실 변기와 수십 번 인사를 하고 약이라도 먹겠다고 요거트 몇 스푼 먹었다가 더 괴로워졌다. 겨우 진정을 하고 아픈 아이에게 어설프게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다.


미리 도착한 건물 주차장에서 10분 알람을 맞추고 눈을 감았다. 사경을 헤맨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식은땀이 흘렀다.


알람소리에 눈이 번뜩 바닥으로 가라앉아 쓰러질 것만 같은 몸을 이끌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어지러워 세상 죽겠더니 “선생님, 안녕하세요. “ 하는 인사소리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네, 안녕하세요. “



내가 아팠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처음 만난 친구들과 세상 즐거운 표정으로 수업을 하고 나왔다. 아침 9시부터 12시 30분까지 이어진 특강,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갑자기 속이 마구 요동치더니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아이에게 잘 기다렸냐는 몇 마디의 기운 없는 말을 건네고 쓰러져 잠들었다.


방학하자마자 열감기와 기침, 그리고 몸살이 찾아온 아이. 며칠 열로 고생하더니 이젠 반복되는 기침으로 힘들어했다. 방학도 했겠다 나 같으면 학원도 다 쉬고 싶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하며 누웠을 것 같은데 아이는 아프다면서도 일어나 숙제를 하고 소파에 기대어 책을 읽었다.


시원하게 에어컨을 켜고 게임을 하거나 넷플릭스라도 보면서 쉬라고 했지만 머리도 어지럽다더니 기어코 고집을 부린다. 약 먹고 자고 약 먹고 자면서도 학원도 가야 하고 숙제도 해야 한다며 걱정을 한다. 다른 건 몰라도 해야 하는 일, 하기로 한 일을 정말 잘 챙겨서 해내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성실한 건 진짜 부모를 닮는구나 싶었다.


나 스스로도 그렇게 못하면서 문득, 아이는 좀 꾀도 부리고 어리광도 피우며 덜 힘들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부러 선수 쳐서 학원에 전화를 걸고, 문자를 했다.


‘이번주 쉬어갈게요.’


‘학원 가야지 어떻게!’ 하더니 엄마가 알아서 빼주길 바랐던 걸까?  아이는 그제야 편안히 누워 낮잠을 잤다.


놓을 방(放), 배울 학(學).
방학은 말 그대로 공부를 놓는 기간이다.
방학 동안 학원 순례를 시키면
정작 학기 중에는 힘이 다하여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
방학 숙제는 학생의 본분이므로
꼭 스스로 하게 한다.
엄마는 숙제를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도 자신감이 생긴다.
<엄마학교, 서형숙>


공부를 놓고, 아니 일상을 조금 내려놓고 늦잠도 자고 뒹굴 뒹굴 이불에서 뒹굴거리기도 하면서 간식도 먹고 텔레비전도 보고 기다렸던 방학을 만끽할 수 있는 아이면 좋겠다. 막상 방학을 하고 더 바빠진 친구들이라 아예 얼굴도 볼 수 없다며 슬퍼하는 아이를 보니 나까지 서글퍼졌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방학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방학숙제 많아서 개학 직전 울먹이며 숙제를 하면서도 친구들이랑 밤이 늦도록 동네에서 놀다가 혼나고, 물 장난하다 들켜서 손들고 서 있어도 정말 즐겁고 행복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1학년만 되어도 “방학이라 어때요? 신나죠?” 하는 질문에

“아니요. 더 바빠요. 시간이 없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방학만 되면 학교인척해야 하는 학원들 때문에 아이들도 힘들고 학원 선생님도 힘들다.


방학엔 일주일이든 이주일이든,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날을만들어 직접 밥도 해 먹고(도전숙제) 친구들과 찐하게 놀이 한 리포트도 내고 평소에 하지 못했던 걸 해내어 인증하는 숙제를 만들어서 아이들의 소중한 방학을 특별하게 지켜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 며칠쯤은 부모 방학도 있어서 휴가와 또 다르게 방학 한정금요일 3시간 조기퇴근  같은 제도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보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움켜쥐기만 하고 놓지 못하는 삶에서 적어도 일 년에 두번 방학 동안에는 일주일이라도 아무것도 안 하는 데이가 있으면 참 좋겠다.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교육이나 사회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꼭 만들어봐요. 아무것도 안 하고 즐겁게 보내는 진짜 방학 만들기 프로젝트! 알겠죠?


조금은 여유롭게 쉬어가는 방학이 되길, 너희들을 응원해!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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