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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르래 Apr 04. 2019

남의 일기장 보는 거 좋아하세요??

제가 책이란 걸 냈습니다.

프리타 족이 되기 전


프리타 족이 되기 전 백수 7개월 동안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고, 플로리스트 공부를 하고, 하루에 영화를 세편씩 보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이런 "사실" 외에 나에게 있어 "사건"이라 함은 친한 고등학교 친구 3명과 절교 선언을 하고, 일기장을 책으로 써낸 일입니다.


나는 내 가장 정신적 지주와 같던 고등학교 친구 3명에게 제주도 우정여행을 다녀온 뒤 일방적인 단절을 고했습니다. 물론 그 단절의 방법이라 함은 고작 4명이서 만든 단체 카톡방을 나가는 방법뿐이었지만. 정말 찌질하죠?

십여 년 간 우정과 함께 쌓아온 울분을 그런 식으로 터트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철저히 고립된 시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난 나를 반추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모든 불화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왜 그랬는지,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나는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여 나를 탓해야만 했어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인과적인 사람인지도 인정해야했습니다. 사건의 결과에 따른 이유가 필요했기에 나는 나에게  ‘네가 나빠서 그래.’라는 이유를 붙여 나를 납득시켰습니다.


"천하의 나쁜년, 니가 이렇게 감정적으로구니까 친구가 없지" 나는 나를 욕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마른 눈물을 흘렸어요.


썩 나쁜 것도 아니던데요?


나는 나를 천하의 나쁜년으로 만들고 난 뒤, 문득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해졌습니다. 회사에서는 따박따박 말대꾸하면서 들이받고 퇴사를 하면서도 친구 집단에 소속돼있는 안락감을 잃어버릴까 최대한 친절하게 굴고 손해 보며 살다가 호구가 되어버린 내 인생. 한풀이하듯 내 이야기를 쭉 써 내려갔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 내가 떠나보낸 사랑, 그리고 그것들을 극복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먹이고, 입히고, 신나는 음악을 들려주고 영화를 보여줬어요. 나에게 희망고문과 같은 작사 또한 포기하지 않고 그렇게 버티고 버텼습니다. 그리고 나에 대한 일기를 썼어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만이 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를. 내 인생이 불행하기도 했지만 책 한 권을 다 내고 나니 내 인생 썩 나쁜 것도 아니던데요?. 너무 착하게만 그리고 열심히만 살았던 나를 꼭 안아주기로 했습니다.


에세이 <나의 불행이 당신의 위로가 될 때>


이 제목은 내가 아주 오랫동안 가져왔던 문구로 나는 이걸로 라디오 코너를 구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코너를 함께 만든 친구들과 현영 <정오의 희망곡> 참관을 하기도 했죠. 저희 옆에는 라디오 게스트로 온 양세형 씨가 앉아계셨어요. 양세형 씨는 저와 친구들을 대체 애네들은 뭐하는 애들이지?라는 얼굴로 힐끔거리다 조심스럽게 저희에게 한마디 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아~ 어쩐지. 실력파 가수인 줄 알았잖아요~ 엄청 노래를 잘하시나 보다 생각했잖아요~"


우리가 연예인이 아닌 방송작가 아카데미 학생인 걸 알게 된 그는 정말 저희 미래를 안심하는 표정이었어요.


아, 이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는데. 아무튼! 이 주제로 책을 만들 생각은 없었는데 쓰다 보니 나의 이런 이야기가 단연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누군가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책 만들기 워크숍에서 만난 분이 제 책의 주제를 듣고 이렇게 물으셨어요.


"왜... 북한 꽃제비나 아프리카 아이들 보면 그게 더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런 사람들에 비해서 우리는 행복하잖아요."


아...

그런 전 우주적인, 전 세계적인 유토피아적 이야기. 저는 잘 모르겠고요. 저는 당장에 제가 제일 중요하고. 그런 것들과 비교해서 굳이 내가 잘 살고 있다고,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내가 슬프면 슬프고 내가 울고 싶으면 울 거예요. 일단 제가 괜찮아야 주위를 돌볼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러니 저에게 넌 참 행복한 놈이구나... 아무리 힘들어도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까 파이팅!이라고 말하지 말아 주세요.


치부책을 굳이 알릴 필요가 있을까?

처음엔 나도 꼭 이걸 책으로 내야만 했을까? 누가 봐줄까 싶었답니다.

또 멍청한 짓을 하는데 돈을 때려 붓고 있는 제 자신이 한심했어요.

하지만 책을 내고 난 뒤 그런 불안은 사라졌습니다. 내 불행의 원천이었던 엄마와 무던히 나를 괴롭히던 인간관계, 천사병에서 어느 정도 벗어 낫어요. 힘들 때마다 음악을 듣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여행을 가거나 춤을 춰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내 응어리를 가장 빠른 시간에 확실히 풀어내는 건 살풀이처럼 쏟아낸 글자들이었어요. 이걸 한 권에 책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고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나니 더 이상 나의 치부가 치부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던걸요.


나는 이제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또다시 만나게 될 다른 불행을 향해 나아갈 거예요.


아, 그래서 남의 일기장 보는 거 좋아하시나요?

저는 참 좋아하는데.. 그럼 제 일기장 한번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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