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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르래 Apr 09. 2019

맛있는 밥 한 끼의 위력

네가 즐거우면 엄마도 좋다.


프리타 족으로 살아남으려면 잘 먹어야 해.


오전 연구소 행정 아르바이트는 오전 9시에 출근해 12시 점심을 거르고 오후 1시에 끝이 납니다. 교수들님들은 12시부터 1시까지의 점심시간 동안 행정실에 없기 때문에 이렇게 점심을 한 시간 미루고 일처리를 해야 최대한 교수님들과 마주치지 않고 조용히 일을 할 수 있거든요.


1시에 학교일을 마치고 나면 배가 찢어질 듯 고파옵니다. 내가 일하는 행정실은 산을 깎아 만든 학교의 제일 꼭대기에 있는데 밥을 먹고 5시 책방 출근 전까지 학교 도서관에 머물려면 최대한 학교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그래서 나는 학생이 된 기분으로 학식을 먹어요. 도서관에서 제일 가까운 회관의 학식의 메뉴는 학생들 입맛을 고려해  함박 세트, 대패 삼겹 덮밥, 불닭 마요 덮밥, 탄탄면, 불닭 벤또와 정식 라면 등을 파는데 1시 이후에 가면 늘 불닭벤또와 함박 세트는 품절이라 어떤맛인지궁금해하고 있습니다. 학식이라고 하면 바로 저렴한 가격이 장점 아니겠습니까? 3000원~4000원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니. 나는 정말 감동했습니다. 정작 내가 대학생일 때는 학식을 거의 먹지 않았는데 나이 서른이 넘어서 학식을 먹게 될 줄이야. 아마 우리 엄마가 아픈 배를 움켜쥐며 나를 낳았을 때는 서른 넘은 딸이 아직까지 학식을 먹을 줄 몰랐겠죠. 남은 학식 메뉴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대패 삼겹 덮밥입니다. 손으로 대충 뜯은듯한 상추와 얇게 채 썬 양배추 대패 삽겹과 밥, 간장소스 일뿐인데 왜 그리 맛있던지. 나는 삼일 내내 그것만 먹었습니다. 다른 메뉴의 도전은 무섭습니다. 나는 편식쟁이거든요.


하지면 학식에 대한 나의 감동은 딱 2주였습니다.


나는 그간 찢어질듯한 허기로 내 위장을 속여왔던 거 같습니다. 사실 그 밥은 영양가도 없고, 허기를 채우기만 급급했던 밥이었습니다. 유난히 혼자 우왕좌왕 바빠 수당을 주지 않는 한 시간 연장근무를 하고 2시에 퇴근한 어느 날. 나는 배고픔에 눈이 멀어 근처 백화점 돈가스 집으로 쳐들어 갔습니다.


프리타 족으로 살아남으려면 잘 먹어야 해!

속으로 외쳤습니다.

나에게 상을 줘야겠습니다. 무조건 10,000원 이상 비싼 걸 먹어야겠어.


식당에 들어 서자마자 후각을 자극하는 기름 냄새, 메뉴판에서 제일 만만하고 실패가 없는 돈가스 정식을 시켰습니다. 돈가스 정식은 7,900원. 아쉽게도 10,000원 이상은 아니었지만 메뉴판에 있는 사진을 보니 7,900원 짜리가 나에게 적당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실제 나온 음식은 메뉴판에서 보았던 사진보다 훨씬 근사했습니다. 바삭한 튀김옷을 입은 두툼한 돈가쓰와 유부가 올라간 윤기 자르르 우동, 후레이크가 뿌려진 수프, 거기에 내가 죽고 못 사는 국물 떡볶이까지 모든 게 완벽 그 자체였습니다.


빈 속에 두둑하게 채워지는 음식의 향연. 양볼을 오물거리며 쫀득한 고기를 씹고 쫄깃한 우동 면발은 끊지 않고 후루룩. 후레이크 뿌려진 수프도 잊지 않고 한술 뜨고, 바삭한 튀김이 살짝 느끼하면 빨간 떡볶이를 소스 듬뿍 한입!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원한 물을 종이컵 한잔 반을 딱 마시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면서 그렇게 흡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 순간만큼 이 세상 제일가는 천하무적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맛있는 밥이 가져다주는 한 끼의 행복이 이런 거구나 처음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밥을 어떻게 먹어왔던 건지. 그다지 식욕이 없는 나는. 이제껏 맛있는 밥 한 끼! 포만감의 행복을 몰랐던 지난날이 안타까울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나는 왜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을까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냥 이 행복을 엄마와 공유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나는 이 기분이 사라지기 전에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엄마, 이렇게 살게 해 줘서 고마워요."

"네가 즐거우면 엄마도 좋다. 그냥 모든 일에 되는대로 살자."


나는 오늘 정말 맛있고 값진 밥 한 끼를 먹었습니다.

나이 서른이 넘어도 나는 계속 자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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