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미래는 없다.
올해는 아빠의 환갑이 있는 해입니다.
61세. 나에겐 너무나 먼 일처럼 느껴지는 나이가 아빠한테 다가왔습니다. 문득 아빠 나이를 생각하니 내 적지 않은 나이가 떠오르며 우울해지고 말았습니다. 동시에 열심히 가정을 꾸려 지금까지 버텨낸 아빠가 무척이나 존경스럽습니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아빠의 환갑 때 줄 선물을 미리 생각해두었습니다.
현금 100만 원으로 만든 돈케이크!
아빠는 남에게 보이는 걸 중요시하는 사람이니 분명 기뻐할 것입니다. 물론 프리타족에 있어서 굉장히 부담스러운 돈이지만 이 생각을 할 때만 해도 내 인생 계획엔 내가 프리타족이 된다는 시나리오는 없었습니다.
벌써 부모님의 환갑을 넘긴 친구들은 나에게 아버지 칠순 되면 그때는 뭐해주려고 지금 100만 원이 나드리냐 라며 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먼 미래를 생각하며 지금을 아낄 수는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빠 친구에게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아빠의 친구는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젊은이에게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하라고 말했다가 그 젊은이와 다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젊은이에게 폭행을 당했고 불과 몇 분 뒤 심정지로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아빠 친구의 나이 59세였습니다.
프리타 족이 된 이후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내 인생 마지막 보루로 남긴 얼마 안 되는 적금을 깨는 일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겐 금방 벌 수 있는 돈일만큼 적은 돈이지만 평소 돈개념이 철저히 없던 내가 모은 최대한의 돈이었습니다. 100 퍼센트 아빠 환갑 때문에 깼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금을 깬 이유에는 아빠의 환갑도 포함되니 효심에 적금을 깼다고 합시다.
나는 적금에서 100만 원을 떼내어 동생에게 그 돈을 가지고 있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동생은 30초도 안되어 자신의 계좌를 보내며 돈을 입금하라고 했습니다. 내 돈을 맡기는 것인데 왠지 모르게 뺏기는 기분이 들었지만, 돈 앞에서 얼음장처럼 냉정해진 동생의 태도를 보니 더 믿음이 갔습니다. 이제 그 돈은 내가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안심입니다.
나는 이제 나와 누군가의 십 년 뒤를 예상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프리타 족이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게되었습니다. 내가 예상 할 수 있는 거라곤 나의 십 년 뒤는 조금 더 주름이 늘었을 테고 지금보다 소화기능이 떨어질 테고 근육이 빠지고 이빨에 음식물이 더 자주 끼이고 새치 염색을 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렴풋이 아빠의 칠순에는 100만 원 마저 줄 수 없는 자식이 되어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내가 예상 가능한 가까운 미래의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려고 합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미래의 범위는 당장 내일이 될 수도 있겠고 일년 뒤가 될 수도 있겠지요.
어제만 해도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나의 오늘이 어떤 하루가 될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월요일 출근생각으로 머리가 지끈거리기까지 했으니까요. 하지만 우연히 시간이 생겨 행정실 업무를 인수인계 해줬던 전임자 선생님과 맛있는 점심을 먹을 지도, 선생님과 좋은 친구가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할지도, 책방에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이렇게 글을 하나 쓰게 될지도 몰랐습니다. 한시간 연장근무를 할지라도 선생님과의 점심을 택했고, 잠시의 휴식보다는 글쓰는 것을 택한 나의 오늘은 꽤 괜찮은 하루입니다.
확실한건 더 이상 나에게 먼미래는 없다는 것입니다. 먼 미래를 그리며 그동안 참아왔던 것들이 너무 많거든요.
얼마전 엄마와 베트남과 캄보디아 여행을 다녀온 아빠는 매일매일 여행프로그램 베트남 편 캄보디아편을 틀어놓고 “저기 내 갔던곳인데” 라며 듣지 않는 나에게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는 치앙마이 한달살기를 해보고 싶다고 해서 나를 놀래켰습니다. 내가 먼저 가려고 했는데... 나는 아빠가 먼 미래가 아닌 가까운 미래에 조금 더 건강한 몸으로 여행을 다니길 원합니다. 그리고 나의 돈 케이크는 아빠의 술값으로가 아닌 여행값을 위해 잘리길 바라고 있습니다.
술 안주로 케이크는 별로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