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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르래 Jun 09. 2019

괜찮은 희망고문


금요일 오전 학교 행정일을 끝내고 서울로 작사 학원을 가는 시간은 생각보다 괴로웠습니다.

금요일 오후 9시 수업이 끝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새벽 3시가 되는 시간. 매주 늦은 새벽에 집에 들어오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지요. 나는 부모님을 설득시켜야 했습니다. 나는 작사 학원을 간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그저 나중을 위해서 글 쓰는 수업을 받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부모님과 경제적 독립이 되지 않은 상태라 나는 아직 부모님의 말을 따라야 이 집에 붙어살 수 있으니까요. 나는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울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놓지 못하고 결국에서 해야만 하는 나 자신이 싫었습니다.


처음 부모님은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알바를 다 때려치우고 서울에 가는 줄 알고 얼굴이 시뻘게 지더니 금요일 하루만 수업을 듣고 친구네에서 하루 자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오겠다는 말에 "그럼 니 마음대로 해라"라는 말과 함께 찝찝한 허락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나의 금, 토, 일은 몽땅 서울행에 바쳤습니다.

KTX를 타기도 했고 SRT를 타기도 했지만 가장 만만한 건 버스였습니다. 가장 저렴하고 늘 잠이 부족한 나의 침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한 번은 프리미엄 버스를 타고난 뒤부터는 KTX와 SRT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나의 요새는 프리미엄 버스가 되었고, 매번 들르는 낙동강 휴게소는 나의 간식 창고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나에게는 현주라는 친구가 서울에 자취를 하고 있고, 제일 먼저 현주에게 나의 상황을 말하고 오후 10시 30분 선릉에 위치한 학원 수업이 끝나면 9호선 끝 즈음에 위치한 증미역에 있는 현주 집으로 가 신세를 졌습니다. 현주는 자신이 가진 여분의 집 키를 주면서 언제든지 오라고 나를 안심시켰습니다.


매주 한, 두곡의 작사를 하지만 내 가사가 채택되지 않고, 내 책에 세상에 나오고 나서 나는 사실 작사에 대한 열정이 조금 떨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만, 다시 서울로 학원을 다니게 되고 나와 같은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는 일은 나에게 다시 새로운 자극이 되었습니다. 다들 많은 학원을 돌고 돌아 지금의 학원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고, 간절함이 가슴속 깊이 전해졌습니다.


특히, 처음 자기소개를 할 때 나의 사투리에서도 느꼈겠지만 부산에서 서울까지 수업을 들으러 오는 나의 말에 숙연해졌던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하고 모골이 송연하네요.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또 나의 슬픔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된 거 같아 미안했습니다.


제일 좋은 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사가님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컸습니다. 그렇게 나는 학원을 다니면서 학원의 곡을 받게 되었고 나는 작사가님께 용기를 내어 피드백을 받아 보기로 했지요. 작사가라는 직업이 얼마나 바쁘고 생각의 흐름이 끊기면 안 되는 일인 줄 잘 알기 때문에 정말 한두 줄 간단한 피드백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작사가님께 돌아온 답장을 출근길에 본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참느라 혼이 났습니다.

작사가님의 피드백은 아주아주 길었고, 정성스러웠습니다. 게다가 내가 쓴 가사에 본인 생각을 얹는 게 염려될까 본인을 낮추기까지 한 태도에 나는 어떤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간 내가 봐왔던 작사가들은 자기주장이 강했고, 어떠한 법칙이란 게 있었으며, 서로가 서로를 벼랑 끝으로 모는 형태의 수업을 받아왔기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사가님이 저에게 써준 말은 아마 제가 평생 잊지 못할 말들이 되어 가슴속에 박혔습니다.


[제가 생각 작가님께 개인적으로 곡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지난주 받은 시안 중 작가님께서 주시 시안이 제일 좋았습니다.

아직 연차가 그렇게 많이 안 쌓인 작가님도 벌써 이렇게 쓰시는구나! 하고 자극받을 만큼이었어요.

언젠가는 운이 딱! 맞는 타이밍이 오기만 하면 확 터지실 작가님들이 진짜 많으신 거 같아요!]


물론 배려심이 깊은 작사가님이신 만큼 나에게만 이런 글을 보내진 않았겠지만, 나는 이 메일을 받고는 그간 몇 년 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나 자신에게 확신을 더 가져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매주 서울-부산을 오가며 8시간씩 길 위에서 보내는 나의 시간.

이미 버스가 끊긴 새벽 세시 택시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던 날들.

나는 지금 인생을 잘 가고 있는 걸까에 대한 고민으로 잠들지 못했던 나의 새벽.

혼자 여기저기 카페를 전전하며 가사를 쓴 나의 시간들이 보상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런 희망고문이라면 얼마든지 존버 가능할 거 같습니다.

오늘도 잘 버텨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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