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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르래 Jul 18. 2019

랜선 북 토크 2부 (나는 왜 글을 쓸까요?)

출판 후 달라진 나의 삶



나는 왜 글을 쓸까요?


앞서 랜선 북 토크 1부에서 말씀드렸던 책을 만드는 과정이 '나'라는 사람을 세상에 드러내고 편집해 나가는 과정이었다면,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알아가고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머릿속에 떠돌아다니기만 했던 것들이 문장으로 탄생되면서 선명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답니다.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어떤 걸 싫어하는지, 어떤 걸 잘하는지, 어떤 것을 못하는지를 발견하게 되고 이것을 뛰어넘어 내가 어떤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나빴는지, 어떤 것을 보았을 때 행복한 감정을 느꼈는지 내 감정까지 되짚어갈 수 있게 됩니다.


나는 길 위에 사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면 책임질 수 도 없으면서 마음이 아파오고, 네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라는 농담에 바보같이 웃다가 집에 돌아와서 슬픔을 느끼곤 하지요. 막연했던 감정들을 글로 한번 옮겨보세요.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그저 느낌으로는 나도 나를 잘 알 수가 없답니다. 나는 내 감정을 객관적으로 쓰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내가 뭘 잘하는지 어렴풋이 느꼈던 것을 확실히 알 수가 있었습니다.

저도 잘하는 게 무려 세 가지나 있더라고요.


1. 쉽게 우울해지기

2. 쉽게 상처 받기

3. 자기혐오


이 세 가지 감정에 아주 특화된 사람이란 걸 알았습니다.


어쩐지 행복할 때는 노래가 나오고 슬플 때는 글이 쏟아져 나오더군요. 아무래도 이런 감정에 특화된 것은 태어날 때부터 이런 기질을 타고났을 수도 있으나 가정환경이 큰 작용을 했겠지요?


나는 어렸을 때 부모와 충분한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고, 계속해서 그 영향권 아래 벗나지 못한 채 성장했습니다. 상처 받은 내면 아이 치유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나는 어렸을 때 엄마로부터 본인의 룰 대로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별난 아이로 자라났고, 싹수가 노랗다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밥에서 돌멩이가 나오는 것도 제 성격이 모가 난 제 탓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나를 예뻐하지 않는 다고 해서 세상이 나를 예뻐하지 않는 건 아니었습니다. 나는 집에서 못 받은 사랑을 다른 방식으로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늘 모범생으로 보이길 원했고 모든 친구들에게 사랑 바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어 냈습니다. 나의 인격을 죽이는 대가로요.


하지만 악순환은 반복됩니다. 엄마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고자 했던 나는 그 사람들이 나를 떠나갈까 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거스를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인간관계에서 늘 저자세인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미움받을까 봐 거절과 싫은 소리 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됐지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누구에게나 잘해줬을 뿐인데.


나는 왜 만인의 호구가 되어있을까요?


사람들은 참 이상합니다. 내가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나를 더 예뻐하고 좋아해야 하는데 왜 그런 나를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나를 더 막대하고 이런 나를 이용하는 걸까요? 내 도자기 가면은 이제 깨어졌습니다. 나는 나를 아프게 했던 주위 사람들을 다 끊어내고 철저한 고독 속에 나를 가두었습니다. 단체 카톡방을 나가고 나를 아는 사람들의 연락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나를 탓하지 않는 남 탓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더 이상 나를 미워하거나 비난하기 싫습니다.

 

나는 나를 너무 방치했어. 제일 상처 받은 사람도 나이고, 가장 사랑받아야 될 사람도 나 자신입니다.


그렇게 최근 나의 일기를 묶었더니 한 권의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내 슬픔을 한 권의 책으로 내가 가지게 된 것입니다. 온전한 한 권의 슬픔. 이상하게 책 한 권 냈을 뿐인데 나는 왜 그리 마음이 편할까요? 나는 비로소 나에게서 자유로워진 것 같습니다. 나를 애써 포장할 일도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요즘 나는 다시 작가님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예전에도 작가님이란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에서야 불리는 작가 소리는 또 다릅니다. 내 치부를 써내고 얻은 작가라는 말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어차피 내 슬픔을 말한 이상 조금 더 나를 드러내 보려고 합니다. 아직 나의 슬픔은 진행 중이고 어린 나는 아직도 그 시간에 멈춰 울고 있습니다. 내가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그 아이를 꼭 안아주고 싶습니다. 그때의 너도 지금의 너도 그리 나쁘게 살고 있지 않다고.


책 한 권을 냈더니 주위에 작가 친구들이 생겼고, 같은 고민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고, 연락이 끊겼던 친구들이 내 글을 읽고 나를 이해하게 되었고,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내 글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내가 글을 쓰지 않고 마음속에 응어리를 간직하기만 했다면 나는 나를 달랠 수 없고 내 글에 공감하는 타인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을 테니까요.


내가 나를 말하지 않는 다면 타인은 나를 죽을 때까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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