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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르래 Aug 21. 2019

매달 나한테 50만 원씩 보내

안에서 새는 바가지의 일기


이번 달은 생활비에서 예상치 못한 8만 원이란 돈이 펑크가 났습니다. 왜냐면 어제와 오늘 책방 근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장님들이 책방을 지킬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이틀을 날리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미리 약속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제 책방 가기 2시간 전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습니다.


사장님은 괜찮겠어요?라고 물었지만, 안 괜찮으면 어쩌겠나요.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아빠는 책방에서 먹을 나의 저녁 도시락을 싸주었고 나는 이것을 들고 다시 집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아빠의 도시락이 신경 쓰였지만, 이것과 별개로 평소 깜깜한 밤에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하다 쨍쨍한 낮에 햇빛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주 기분이 좋더군요.  


이번 달부터 매달 나한테 50만 원씩 보내


돈 앞에서 그 누구보다 공과사를 구분하는 동생의 말이었습니다. 이번 달부터는 동생에게 매달 월급 중 50만 원을 줘야 합니다. 마치 떼인 돈 받으러 온 빚쟁이 같지만 올해만 벌써 적금 1번, 예금 2번 도합 세 번의 예적금을 깬 언니를 위해 동생은 자신이 손발을 걷어붙이고 대신 적금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매달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적금도 내 손에 있는 한 언젠가 깨서 쓸게 뻔하니 동생은 이자가 높은 곳 적금상품을 따져 나를 위한 적금통장을 만들었습니다. 동생과 언니 순서가 잘못 바뀌어 태어났다는 엄마의 말에 결단코 부정해왔지만 이젠 그 말이 맞는 거 같습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지만,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는 안 샌다라는 지론을 가지고 철저한 이중생활을 잘해오고 있던 터라 나의 이런 개차반 같은 실제 생활과 썩은 마음을 사회에서 만난사람들 중 누군가 알게 될까 두렵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라도 쓰지 않으면 나는 정말 터져버릴 거 같아요. 그러니 내가 글 쓰는 이 공간은 나의 유일한 탈출구와 다름없습니다.


동생은 얼른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보다 50만 원을 내어놓으라고 닦달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달 계획에서 예상치 못하게 펑크 난 8만 원과, 예상치 못한 충동적인 해외여행으로 인해 70만 원을 써버린 나는 동생에게 돈을 써버려서 줄 돈이 없다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아빠 환갑 때 백만 원을 사용하고 마지막 보루로 남겨두었던 “쓰면 죽음뿐”이라는 별명을 가진 예금 통장 일부를 해지하여 동생에게 입금을 했고, 동생은 잘 들어왔군이라며 흡족한 문자를 나에게 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적금을 적금으로 돌려 막는 '적금 돌려막기'라는 것입니다. 분명 나에게 좋은 일이 맞는데, 저거 다 내 돈인데 자꾸만 뺏기는 기분이 드는 건 동생이 나를 옳은 방향으로 인도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른 퇴근길 지하철을 타러 가는 와중에 꿍꽝뚱깡 들려오는 길가 액세서리 집 음악소리에 이끌려 나는 6,000원짜리 점심을 먹고 6,900원짜리 링 귀걸이를 충동적으로 샀습니다. 그리고 동생에게 적금 깬 기념으로 6,900원짜리 링 귀걸이를 사고 말았다 보고하니 나를 반 포기한 듯 "그래 사라사" 말했습니다. 하지만 속으로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게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나는 동생이 나를 이렇게 계속 불쌍히 여기로 나를 챙겨주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를 걱정하는 동생을 위해 하루빨리 밖에서만 안 새는 바가지가 아니라 안에서도 안 새는 바가지가 되어야 할 텐데.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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