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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다운 Aug 22. 2022

장래희망은 SNS 탈퇴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보는데 이런 장면이 나왔다. 고등학교 펜싱부가 체력 단련으로 운동장을 뛰는 상황에서다. 주인공 희도가 오늘 운동하기 진짜 싫다며 “나 이렇게 운동장 돌 때, 교문 밖으로 나가는 상상해.”라고 말하자 옆에서 뛰던 유림이 “나만 그런 상상하는 게 아니구나.”라고 답한다. 그때 함께 운동장을 뛰던 후배 예지가 정말 교문 밖으로 뛰쳐나간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나에게도 뛰쳐나가고 싶은 운동장이 있다. 하루에 10번도 넘게 들어가 보는 SNS다. 핸드폰 잠금 화면을 해제하면 생각이라는 회로를 거치지 않고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을 켠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지인의 일상과 지금 유튜브에서 핫한 영상 클립, 뉴스나 패션 등 내가 팔로우한 계정의 쏟아지는 콘텐츠를 훑는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켜는 인스타그램을 1회로 카운팅 한다면 이불을 덮고 내일 알람을 맞출 즈음 30회 가까이 될 테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마크 저커버그의 충실한 봇이 된 기분이랄까.


문제는 SNS를 자주 볼수록 마음이 부대낀다는 거다. 치킨과 피자 같다. 먹을 땐 맛있지만 다 먹고 나면 속이 부대낀다. 그런데 SNS는 배부르지도 않고 마음만 허하다. 한 번은 인스타그램 추천 피드에 이런 글이 뜬 적 있다. ‘아이유가 130억 주고 산 집’ 뒤이어 나타난 사진은 정말 헉 소리가 났다. 서울에 이런 집이 있다고?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사진이었다. 그 글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는 건 딱 두 가지였다. ‘아이유가 나랑 동갑인데’ 그리고 ‘나한텐 1.3억도 없는데’. 물론 아이유와 나는 태어난 해만 같을 뿐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밀도가 현저히 다르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그 피드는 왜인지 모르게 1주 넘게 머릿속을 떠다녔다. 내 일상은 그대로인데 마음만 자꾸 부대꼈다.



회사에 다니기 전에도 같은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페이스북 이용률이 제일 높던 시기였다. 처음엔 팔로우하는 사람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 단 게시물이 내 피드에 뜨는 게 흥미로웠다. 그런데 그들이 내가 싫어하는 콘텐츠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나와 정반대의 가치관을 담은 댓글을 적나라하게 달 때 불편한 감정이 삐죽삐죽 튀어나왔다. 어느 SNS나 그렇지만 페이스북은 특히 자극적인 스캔들이나 유명인의 논란거리가 쉽게 퍼지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엔 꼭 비상식적인 댓글을 다는 사람이 있다. 그들의 어딘가 억눌리거나 꼬인 댓글은 얼굴과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쉽게 날을 세운다.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누군가의 댓글에 잔뜩 공격받을 즈음 문득 ‘내가 왜 무방비로 당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결국 난 1년 정도 페이스북을 비활성화하기로 했다. SNS 비활성화는 내게 기대 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선물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시간에 낮잠을 잤다. 엄마와 시간을 더 보냈고, 날이 좋으면 자전거를 타고 동네 근처를 한 바퀴 돌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더 시간을 쏟는 동안 마음이 덜 어지럽고 편안했다.


취직 후 SNS를 활성화한 지 약 7년이 지났다. 다시 마음이 부대끼는 게 싫어 덜컥 앱을 지운 적도 있다. 회사 PC에서만 SNS를 접속하는 거다. 하지만 모바일에 최적화된 일부 SNS는 PC에서 콘텐츠를 올리면 종종 오류가 났다. 또 퇴근 후 콘텐츠 수정 버전을 올려야 할 때가 생겨 어쩔 수 없이 앱을 다시 설치하곤 했다. PC로 인스타그램을 눈팅하는 새로운 버릇이 생겨 자괴감에 빠지던 차였다. 그즈음 나에게 위안이 됐던 건 우연히 보게 된 아름의 사소한 행동이었다. 점심시간에 회사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아름은 얘기 도중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인스타그램 앱을 놔두고 왜 그렇게 접속하냐고 물으니, 아름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인스타그램을 지웠거든.”라고 했다. SNS에 중독에 위기감을 느끼는 건 많은 사람의 공통 고민인가 보다. 아름은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다시 인스타그램을 설치했다.  


디지털마케팅 업의 단점은 ‘디지털 디톡스’가 불가능하다는 거다. 브랜드 SNS 계정을 운영하는 담당자라면 특히 그렇다. 담당하고 있는 브랜드 계정이 있다면, 어제 올라간 콘텐츠의 반응이 어떤지 모니터링하기 위해 접속한다. 물론 이 모니터링은 기간을 정해두지 않고 매일 이루어진다. 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로그인하지 않으면 콘텐츠를 제한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콘텐츠를 자유롭게 확인하려면 계정 생성이 필수다. 대행사라면 사내에 여러 고객사의 브랜드 계정에 지원사격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A 브랜드 계정에서 삼행시 이벤트를 연다고 하면, 사내 마케터들은 이 이벤트 콘텐츠의 초기 분위기 메이킹을 위해 좋아요와 댓글로 혼내준다. 더 나아가 상업적인 콘텐츠에 태그를 걸어도 이해해 줄 만한 동료 마케터들을 친구인 양 태그 하기도 한다. 대개 이런 식이다. ‘@ 이거 보니까 너 생각남ㅋㅋ’, ‘이벤트 참여 완료했습니다♥’ 좋으나 싫으나 계정이 있어야 여러모로 일하기 편한 거다.


‘에이, 그 정도면 디지털 디톡스 할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했다면 아니다. 마케터는 비상업적인 SNS 콘텐츠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다. 지금 트위터에서 핫한 트윗부터 다음카페 시간대별 인기글, 인스타그램 추천 피드, 유튜브 알고리즘까지. 오히려 비상업적인 콘텐츠를 더 많이 소비한다. 그 비상업적 콘텐츠에서 찾아낸 트렌드 요소나 재미를 어떻게 브랜드 SNS에 녹이고 팬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우리 일이다. 그러니까, 씁쓸하게도 SNS를 보지 않고는 이 일을 할 수가 없다. 그건 평소 뉴스를 보지 않는 사람이 좋은 기사를 쓰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이쯤 되면 MBTI가 대문자 N인 직장인은 이상한 망상을 하기 시작한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던 책 제목처럼, 마케터는 하고 싶지만 SNS는 탈퇴하고 싶어라는 망상. 그런데 SNS는 트렌드와 아주 맞닿아 있어서, 트렌드? 그런 거 모르고 살 수는 없나 하는, 마케터로서는 말도 안 되는 망상을 하게 되는 거다. 친한 회사 동료 둘과 퇴근 후 자주 가던 한신 포차에서 닭발을 먹던 날 나는 대뜸 이런 말을 꺼냈다. “나 이제 그런 역할 하고 싶어.” 둘은 나의 느닷없는 말문에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친구가 나한테, 너 그거 알아?라고 하면 그게 뭐야? 하는 역할.” 둘은 여전히 이해 못 했다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쳐다봤다. “그니까, 누가 나한테 신조어나 트렌드를 얘기하면 그게 뭐야? 하면서 재밌어하는 역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둘은 아! 하면서 손뼉 치고 웃었다. 나도 나도 하며 애달픈 마케터의 숙명에 공감하는 리액션이 이어졌다. 우리는 주로 그 반대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디지털마케팅을 업으로 삼은 사람은 어쨌거나 트렌디해야 한다. 사람들이 지금 뭘 좋아하고, 어떤 것에 반응하는지를 알려면 그만큼 시간이 든다. 트렌드를 좆는 건 안테나를 항상 켜고 SNS를 살핀다는 거니까. 어찌 보면 끝없는 마라톤을 쉬지 않고 뛰는 거다. 나는 지금껏 그렇게 약 5년을 달려왔다. 내가 이 마라톤을 그만둔다는 건 단순히 트렌드를 그만 좆겠다는 뜻이 아니라 이 일을 그만두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 일이 좋다. 콘텐츠 마케팅은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를 그 어떤 마케팅 업보다 가장 가깝게 결과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기획한 SNS 콘텐츠 하나하나가 모여 우리 브랜드의 팬을 만든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있다. 내가 만든 콘텐츠를 보고 사람들이 친구를 태그하고, ‘이거 기획한 사람 상주세요’와 같은 칭찬 저격 댓글이 달릴 때 그 희열은 연봉 인상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 유통기한이 길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운동장을 뛰쳐나간 예지는 진지하게 펜싱을 그만두려고 고민했다. 반면 희도와 유림은 뛰쳐나가는 상상을 했을 , 펜싱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인물이다. 누군가 내게 ‘ 생각하는 마음이  인물  누구와 가장 닮았냐고 묻는다면 아마 희도와 유림   명이 아닐까? 지긋지긋한 운동장을 계속 뛰어야만 경기에서  좋은 성과를   있는 것처럼, 나에겐 SNS라는 운동장이 그렇다. 그래서 나는 희도와 유림이 운동장을 계속해서 달린 것처럼  끝없는 마라톤을 계속 뛰기로 했다. 오늘도,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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