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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다운 Aug 22. 2022

나의 이직 일지

신입 이직 & 경력 이직을 모두 경험하고 나서 깨달은 것

미국에서 한 여성이 머리핀으로 물물교환을 시작해 28번째 만에 집 한 채를 갖게 된 사연이 기사를 탔다. 1년 반 동안 수많은 제안과 거절을 오가며 머리핀에서 귀걸이로, 귀걸이에서 유리잔으로, 유리잔에서 진공청소기로 계속 이어져 마지막엔 집까지 손에 넣었다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온갖 우여곡절을 다 겪은 물물교환 이야기는 내가 한 이직과 닮았다.


대학에서 마지막 학기를 끝내고 첫 직장 면접을 보러 갔다. 직원 7명 남짓의 바이럴 마케팅 회사였는데, 당시 면접에 들어왔던 대표님은 내가 운영하던 개인 블로그를 보고 다음 주부터 출근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렇게 출근한 회사에서 받은 첫 월급은 140만 원이었고, 주 업무는 파워블로거에 광고를 의뢰하거나 기업의 블로그를 파워블로그로 육성하는 일이었다. 첫 회사에서 내 목표는 1년을 채우고 이 경험을 지렛대 삼아 더 전문적인 마케팅 회사로 옮기는 거였다. 그런데 두 달 연속 월급이 제때 지급되지 않자 계획을 수정해 4개월 만에 퇴사했다.


두 번째 회사는 미디어렙사였다. 월급은 더 받을 수 있었지만 채용공고에서 본 적 없는 업무를 시켰다. 인터넷 뉴스 기사 옆에 따라붙는 광고 구좌에 선정적인 카피를 넣어 클릭을 유도하고, 성인 웹툰을 결제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선정적인 문구 한 줄을 써내기 위해 19금 웹툰을 듀얼 모니터에 대문짝만 하게 띄워놓고 봤다. 그게 내 일이었지만, 동료들이 오며 가며 내 모니터를 보는 게 수치스러워서 Alt+Tap을 미친 듯 눌러가며 일했다. 나중에 이직할 때 이런 일을 했다고 하면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고민됐다. 결정적으로, 친구와 가족들이 회사에서 무슨 일 하는지 물었을 때 제대로 답할 수 없어서 그만 두기로 결심했다. 수습기간 3개월 만이었다.


세 번째 회사는 신혼부부에게 유명한 원목가구 브랜드였다. 면접을 본 마케팅 팀장님은 내가 회사 경험이 2번이나 있고, 블로그 운영 경험이 있다는 점을 높게 샀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바로 합격 통보를 받았다. 1층에는 쇼룸이 있고 2층에 사무실이 위치한 특이한 구조의 회사였다. 문제는 쇼룸 매니저가 잠시 없으면, 손님이 벽에 붙은 벨을 눌렀다. 2층에서 사무를 보던 직원들은 벨소리가 들리면 1층으로 내려가 쇼룸 매니저 역할을 해야 했다.  디자이너 건 마케터 건 1인 2역을 맡고 있는 셈이었다. 처음엔 쇼룸 매니저 역을 겸하는 게 우리 브랜드의 상품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본업에 방해가 된다는 느낌만 커졌다. 하루에도 몇 번을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 매니저 역할을 하다 보니 업무 흐름이 툭툭 끊겼다. 마케팅 업에 집중을 할 수가 없으니 전문성을 키우는 건 더 말이 안 됐다. 그 외에 주말 출근이나, 정시퇴근과 연차 사용을 눈치 봐야 하는 조직문화 등 불합리한 조건이 많아 리더에 개선을 요청했다. 처음엔 들어줄 것처럼 하다가 시간이 어영부영 지나니 도돌이표였다. 5개월을 채우고 대학내일로 환승 이직했다. 


대학내일 신입으로 입사지원을 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건, ‘한 회사에서 진득하게 1년을 채워본 적 없는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였다. 4개월, 3개월, 5개월 도합 12개월이지만 툭툭 끊긴 타임라인을 면접관이 뭐라고 생각할지가 걱정이었다. 그리고 면접에 붙고 나서 느꼈다. 신입 채용의 경우, 경험의 연속성보다도 내가 어떤 경험을 해왔는지를 더 중요하게 평가한다는 것을. 당시 면접관들은 첫 번째 회사에서의 기업의 블로그 운영 경험, 두 번째 회사였던 미디어렙사 근무 경험, 세 번째 회사에서 브랜드의 SNS(블로그, 인스타그램) 운영 경험을 높게 평가했다.


현재는 대학내일에서 5년간 쌓은 경험을 발판 삼아 IT업계에 경력직으로 이직했다. 지금껏 내가 쌓아온 마케팅/에디팅 경험을 새로운 분야에 발휘해보고 싶어 하게 된 결정이었다. 경력직 이직은 신입 이직보다 훨씬 어려웠다. 이직 준비를 하는 동안 서류에서 10번 떨어졌고 감사하게도 붙은 면접에서는 2번이나 떨어졌다. 칠전팔기도 아니고 십전십일기를 할 즈음. 한 회사에서 나의 다양한 콘텐츠 마케팅 경험을 귀 기울여 들어줬다. 마침 그들이 찾고 있던 경험이라고 했다. 나를 십전십일기 하게 만든 경력직 이직에서 뼈저리게 느낀 것 또한 ‘업무 경험의 중요성’이다. 이직은 내가 갖고 있는 경험이 가려는 회사와 잘 맞는지가 관건이다. 내가 해 본 일, 잘하는 일이 들어갈 회사에서 필요로 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탈락한다.


이쯤에서 누군가는 벌써 이런 걱정을 한다. ‘내 경험은 너무 작고 하찮은데...’ 심지어 지원서를 넣어보기도 전에 '난 안될 거야'하고 자체 판단을 내려버린다. 나도 대학내일에 신입으로 입사하기 전에는 토막 난 업무 경험들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다르게 생각해보면 지원서를 넣는 데에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손해 볼 건 없었다. 떨어질 땐 떨어지더라도 일단 지원해보자는 마음이 컸다. 만약 내가 스스로를 평가절하하고 지원서조차 넣지 않았다면 대학내일은 물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지 못했을 거다. 내 경험이 정말 작고 하찮은 게 맞는지, 혹시 내가 그렇게 보이게끔 표현을 잘 못한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떤 어휘를 써서 더 매력적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같은 성과도 다르게 와닿는다. 특히 신입 채용일수록 회사에서는 업무 경험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 작은 경험이라도 잘 다듬어서 자소서와 포트폴리오에 녹여낸다면 면접관에게 한 번 더 눈길을 줄 수 있다. 


이직은 경험의 빌드업이다. 0에서 시작해 얼마나 차곡차곡 다채로운 직무 경험을 쌓아 올렸는지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고 다음 회사가 달라진다. 나에겐 멋진 대학 간판도, 어학 점수도 없었다. 머리핀에서 시작해 집 한 채를 갖게 된 미국 여성 이야기에 비유하자면 나에게 머리핀은 조그맣게 운영하던 개인 블로그였다. 블로그로 시작된 입사 경험은 또 다른 경험을 가져다줬고, 집 한 채를 갖게 된 여성처럼 현재 내 연봉은 첫 회사에서 받았던 것의 몇 배가 됐다.


<입사동기> 유튜브를 하면서 구독자분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았던 고민 상담이 ‘퇴사 망설임’이었다. 회사에 일이 너무 많아서 그만두고 싶은데 내가 아니면 이 회사가 망할까 봐, 다 같이 힘든데 나까지 그만 두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퇴사를 못하고 있다는 고민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회사는 책임감 때문에 남아있는 나에게 고마워하지 않는다. 책임감 때문에 퇴사를 미루면 나만 손해다. 아니다 싶으면 빨리 결정해야 한다. 가장 결정적으로, 지금 회사에서 하는 일이, 내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없을지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나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해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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