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성적순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노력해서 쟁취하는 게 성적이라면, 성적 대신 회사라는 단어를 슬쩍 넣어보고 싶다. 그럼 이때 냉소적인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회사에서 행복해서 뭐해?” 하지만 주 40시간 이상을 회사에서 보내는데, 그 시간에 불행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회사에서 불행을 겪어본 구직자들은 익명으로 재직 중인 회사를 평가하고 옮겨갈 회사의 리뷰를 끊임없이 찾는다. 더 나은 회사를 찾는 구직자가 많은 걸 보면, 행복은 회사 순이라는 말이 아예 틀린 건 아니다. 그럼 그 ‘행복한 회사 순위’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블라인드에 힌트가 있다. 직장인 대표 커뮤니티 블라인드는 매년 임직원의 행복도를 평가해 한국인이 행복한 회사 TOP10을 발표한다. 이 발표는 ‘블라인드 지수’라고도 불리는데 대학내일은 2019년부터 2년 연속 블라인드 지수 TOP 10에 올랐다. 블라인드는 매년 블라인드 지수를 발표하면서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싣고자 일부 기업에 인터뷰를 진행한다. 2020년에는 대학내일에 요청이 왔는데 당시 인터뷰이 중 한 명으로 내가 참석했다.
첫 질문은 대학내일이 뭐하는 회사인지였다. 대학교에 잡지를 배포하던 회사가 어떻게 이렇게 직원 규모가 계속 크고 수익을 내는지에 대해 궁금증이다. 물론 처음엔 잡지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20대 전문 마케팅 에이전시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꿨다. 대학생을 타깃으로 한 잡지를 만들다 보니 그들 가까이서 함께하는 부수적인 대행업을 자연스럽게 늘리게 된 흔치 않은 케이스다.
다음으로, 회사에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직원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그 척도에는 심리적 안정감 외에도 윤리, 복지, 워라밸, 상사 관계, 업무의미감 등 다양한 항목이 있지만 내가 직접 보고 들었던 것들을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입사 첫날, 출근하니 팀장님이 회사 대표였다. 처음엔 내가 아무리 순진한 신입사원이라고 해도 농담이 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한 달이 지나도 대표님이 팀 회의에 참석하는 걸 보면서 비로소 진짜구나 싶었다. 내가 입사하기 직전에 팀장석이 갑작스레 공석이 됐는데, 그때 김영훈 대표님이 팀장 자리를 자진해 맡으셨다고 한다. 대표님은 대표가 팀장을 맡는 일에 대하여 크게 개의치 않으셨다. 심지어 팀 워크샵으로 삼척을 갔을 때 장시간 운전을 도맡으셨다. 숙소에서 팀원들을 먹이겠다고 킹크랩을 사와 신문지를 펴놓고 직접 살을 발라주던 모습은 너무 따듯한 나머지 아빠! 하고 부를 뻔했다. 1년 정도 지날 즈음 새로운 팀장이 왔지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팀장을 겸했던 대표의 모습은 보는 내내 존경스러웠다.
직원 행복도가 높은 회사 대부분이 ‘수평적 문화’를 자랑으로 꼽는다. 그렇다면 과연 어디까지 수평적일까. 대표까지 수평적인 회사가 있을까? 대학내일엔 대표실이 없다. 대표만의 고정 좌석도 없다. 대표님은 회사 사정에 따라, 업무 상황에 따라 유목민처럼 자리를 옮겨 다니신다. 또 대학내일의 모든 리더는 연말에 팀원으로부터 상향식 리더 피드백을 받는다. 여기엔 대표도 포함인데, 대표는 사내 모든 직원으로부터 피드백을 받게 되어 있다. 그들이 받은 피드백은 어떤 내용이었는지 팀에 따라 공개되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팀회의에서 발표하기도 한다. 대학내일의 수평적인 문화는 탑다운식 피드백의 부재와 대표실의 부재 등 대학내일다운 업무 방식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멋진 동료 얘기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입사하면 어떻게 저런 사람이 뽑혔지? 보다 내가 어떻게 뽑혔지?라는 생각을 할 확률이 높다. 그동안 경험했던 회사에서는 본인 직무만 잘하는 사람이 많았다. 예를 들면 디자이너면 디자인만 잘하고, 마케터면 마케팅만 잘하는 거다. 그런데 이곳에 입사하고 내가 만났던 동료들은 좀 달랐다. 마케터 출신 디자이너, 웹툰 작가급 드로잉 스킬을 갖춘 마케터, 회사 업무에도 충실하면서 개인적으로 에세이집까지 출간하는 에디터 등. 다른 영역까지 섭렵한 사람과 사이드잡으로 퍼스널 브랜딩 하는 사람까지. 자극을 안 받을 수 없는 환경이었다. 유능하고 똑 부러지는 동료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스스로의 부족함이 커 보일 정도다.
입사하자마자 다른 팀의 마케터와 협업을 하게 됐다. 나보다 한참 선배였던 터라, 미숙했던 나에게 뾰족한 피드백을 많이 줬다. 처음엔 그 뾰족함이 날 더 성장하게 했지만, 언제 또 피드백을 받을지 몰라 메일을 열어볼 때마다 움찔움찔하는 나날이 편하지는 않았다. 1년 정도 지날 즈음 고객사 요청으로 프로젝트가 급 종료됐다. 사실 프로젝트가 끝나서 아쉽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선배의 피드백을 언제 또 받을지 몰라 마음 졸이지 않아도 돼서 기뻤다.
그리고 며칠 뒤, 출근을 했는데 책상에 고급 핸드크림과 작은 손편지가 놓여 있었다. 뾰족하다던 그 선배였다. 그동안 본인의 피드백 때문에 힘들지 않았냐며, 함께 프로젝트를 잘 이끌어보고 싶어서 그랬는데 마음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위로와 앞으로의 새 프로젝트도 응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지금껏 아르바이트를 포함한 모든 사회경험을 돌이켜 봤을 때, 나에게 피드백을 하고 마음을 쓴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그분은 나에게 마음을 썼다. 좋은 동료란 본인 일만 잘하는 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 편지가 아직까지도 내 머릿속에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뾰족한 피드백을 할 기회가 온다면 마지막에 마음을 꼭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회사에서 행복을 좌우하는 건 일보단 사람이다. 회사에서 불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열에 아홉은 그 원인이 사람이다. 설령 일이 많아서 힘든 것도, 그 일을 나누어 해줄 수 있는 사람을 뽑지 않는 리더의 문제다. 더 나아가 인건비를 아끼겠다고 채용을 꺼리는 경영자의 문제다. 대한민국 중소기업 재직자들의 격한 공감을 산 웹드라마 <좋좋소>만 봐도 알 수 있다. 거의 모든 에피소드가 일이 아닌 사람 때문에 상처받는 이야기다. 리더가 연차를 못 쓰게 해서 결국엔 직원이 아프다는 거짓말을 하고 당일 연차를 강제 소진하게 만든다. 인건비 아끼겠다고 마케터를 뽑지 않고 내부 직원에게 신제품 아이디어를 모집한다. 개발자로 입사한 직원이 신제품 패키지 디자인을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처연하게 펼쳐진다.
그러니까 직원이 행복한 회사는, 결국 함께 일하는 동료와 대표가 좋은 사람일 때 만들어진다. 유연근무, 안식월, 인센티브 등 기타 복지는 그다음이다. 아무리 좋은 복지가 화려하게 마련돼 있어도 함께 일하는 사람 때문에 힘들면 복지를 누리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학내일에 다니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첫째, 내가 이런 조직에서 함께 일할 수 있었음에 너무 감사하다. 둘째, 나 또한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따듯하고 멋진 동료가 되고 싶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 내게 좋은 사람이 오도록’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 말처럼, 내가 좋은 동료가 되어 내게 좋은 동료가 오도록, 더 나아가 좋은 회사가 오도록 하는 것이 내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