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평소 같으면 애인에게 출근했다는 카톡을 남길 시간. 이제 보낼 수 없다는 사실에 아침부터 이별을 실감했다. 헤어진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면 기가 약하다. 헤어질 때 내 모든 기를 쏟아부어서다. 다이아였던 멘탈도 다이소 유리컵처럼 변해서 누가 톡 하고 치면 요란하게 깨질 것 같다. 빨리 8시간을 채우고 어서 집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지배한다. 그럴수록 시간은 더 안 가서, 일에 집중하는 게 낫다.
이벤트 당첨자 정보를 취합하느라 엑셀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던 것 같다. 2시간쯤 지났을까.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그 사람인가 싶어 다급하게 핸드폰 잠금화면을 해제했더니 쇼핑몰 이벤트 문자다. 평소라면 그냥 거슬리기만 했을 광고가 유난히 짜증났다. 차단을 하고 몇 분이 지났을까. 다시 핸드폰 진동이 울려서 보니 문자가 와 있었다. 010으로 시작한 번호 뒷자리는 너무 낯이 익어서 그 사람 사진이라도 받은 것처럼 놀랐다. 대충 봐도 10줄은 넘어 보이는 장문의 문자. 다운아-로 시작하는 첫 문장을 보자마자 눈물이 차올라 바로 화장실에 갔다.
그날은 그 사람과 4번째로 헤어진 다음날이었다. 그때 받은 문자는 헤어지고 한참 지나고 봐도 읽을 때마다 눈가가 붉어진다. 한 번도 먼저 연락 온 적 없는 사람이기도 했고 그렇게 긴 호흡의 글을 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다. 그런 사람에게 처음으로 장문의 문자를 받았으니. 슬픔에 잡아 먹힌 기분이었다. 점심시간에는 약속이 있다고 하고 동료들보다 먼저 나왔다. 회사 근처의 인적 드문 공터에서 울다 그쳤다 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퇴근할 때까지 유체 이탈한 사람처럼 사무실에 앉아만 있었던 것 같다. 퇴근길엔 결국 전화를 걸었다. 어젯밤 내가 뱉은 이별은 문자 한 통에 손바닥 뒤집듯 뒤집혔다. 그렇게 1년을 더 만났다. 질질질. 질질질. 질질질 끌면서.
7번째 헤어진 다음날에도 출근을 했다. 그날도 기가 약했다. 아침 공복과는 다른 허한 느낌이 감돌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상하게 눈물은 안 났다. 그날도 그다음 날도 울지 않았고 문자도 안 왔다. 문자가 오지 않아서 아쉽지 않았고 슬프지도 않았다. 초연했다. 초연하다는 말을 사전에 검색하면 ‘어떤 현실 속에서 벗어나 그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젓하다’라고 나오는데 그 말을 처음 실감했다. 헤어지고 나면 늘 따라붙던 미움, 슬픔, 억울함, 기대감 따위의 감정이 먼지처럼 떠다니지 않았다. 마른걸레로 쓱 닦아낸 것처럼 머릿속이 차분했다.
눈물이 터진 건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였다. 잠들려고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는데 갑자기 복받쳤다.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한 시간이 뒤늦게 안타까워서, 아닌 걸 알면서 스스로 옭아맸던 연애가 너무 안쓰러워서 복받쳤다. 억지로 만남을 끌면서 상처받고 속앓이 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이런 나를 지켜보다 지쳐 떠나간 친구도 있다는 사실이 서글퍼서 울었다.
나는 진상이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있어 편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에게 늘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싶다는 얘길 털어놨다. 그때마다 그 친구는 헤어지라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웃프게도 친구에게 “나 헤어졌어”하고 선언하면 늘 며칠을 못 갔다. 다음 주가 되면 죄지은 사람처럼 “다시 만나기로 했어”하고 말했다. 이렇게 5번째 즈음 번복했다고 느꼈을 때는 내가 죄인이 된 것 같았다. 그런 감정을 안 느끼려고 친구를 조금씩 멀리했는데 친구도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서로 만나자는 이야기를 점점 꺼내지 않았고 서서히 멀어졌다.
생각해보니 당시 나는 번복만 한 게 아니었다. 남자친구와 갈등이 생길 때마다 친구에게 내 감정을 배설했다. 만날 때마다 힘들다, 헤어지고 싶다는 이야기만 떠들다 집에 돌아왔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들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내가 겪었던 너덜너덜한 연애를 현재 진행형으로 하고 있는 친구 얘기를 듣는 건 예상했던 대로 감정 소모가 크다. 과거의 내 얘기를 들어줬던 친구와 나의 차이점이 있다면, 나는 찌질한 연애를 겪어본 사람이라는 거다. 나는 겪어봤기에 안다. 이런 얘기를 나에게 털어놓는 사람은 숨통 트일 곳을 찾다 찾다 나에게 왔다는 걸. 나는 이번엔 진짜 헤어지겠지 하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고 잠자코 들어준다. 같이 속 시원하게 욕하고 같이 슬퍼하고 같이 답답해한다. 과거의 내가 친구에게 기대했던 것도 그런 거였으니까.
그런 사람이 있다. 헤어져도 헤어지지 못하는 사람. 한 번 헤어지면 밥이 목구멍으로 안 넘어갈 만큼 일상생활에 지장을 겪는 사람. 차라리 그냥 다시 만나는 게 살겠다 싶어서 이게 아닌 걸 알면서도 다시 붙잡는 사람. 그런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나보다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서 그렇다. 상대의 생활패턴, 스케줄에 맞춰 내 모든 삶의 계획을 수정하며 살아왔는데 갑자기 이별을 맞닥뜨리면 길을 잃는다. 갑자기 나에게 돌아가려고 뒤 돌았을 땐 길이 감쪽같이 지워져서 없다. 하지만 그 사람한테 가는 길은 외우고 또 외웠던 길이라 돌아가는 게 더 쉬운 거다.
“헤어지고 싶어. 근데 못 헤어지겠어.”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헤어졌다가 힘들면 다시 만나. 아니다 싶으면 또 헤어져. 한 번에 헤어질 자신이 없으면 조금씩 나눠서 여러 번 헤어지면 돼. 그러다 보면 내가 초연해지는 때가 와. 헤어지고 마음이 요동치는 건, 아직 바닥을 안 찍어서 그래. 너가 쏟아낼 수 있는 감정의 바닥은 분명히 있어. 바닥을 치면 눈물이 안 나. 오히려 초연해져.
물론 바닥을 찍어본 사람으로서, 그 결과가 참혹하다는 걸 안다. 당장은 초연해도, 감정이 너덜너덜해져서 끝났기 때문에 트라우마가 깊게 남는다. 불안정한 연애를 하는 동안 나 스스로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건 기본이다. 그래서 권장하고 싶지 않지만,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하면 단 하나 분명히 깨닫는 게 있다. 처음, 두 번, 세 번 헤어지고 다시 만나면 정확히 우리 사이에 안 맞는 무언가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네 번쯤 헤어졌다 다시 만나면 다음 이별을 직감하게 되고 마음의 끈을 내려놓은 채 만나게 된다. 헤어졌을 때 극한의 슬픔과 다시 만났을 때 안도감을 반복하면 나도 상대도 너덜너덜해진다. 그러니까 이별을 반복하는 건, 내 감정을 바닥까지 열심히 퍼내려 가는 과정인 거다. 이게 헤어져도 헤어지지 못하는 사람이, 부지런히 이별을 반복해야 하는 이유다.
혼란한 연애를 정리하는데에 정답은 없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만 봐도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잠을 푹 자야 풀리고, 누군가는 친구들과 재잘재잘 떠드는 사이 풀린다. 이별이 예견된 연애를 하고 있다면 나에게 맞는 이별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서로 상처로 남는 이별이 싫어서 눈 딱 감고 한 번에 끝나는 이별을 맞을지, 상처받더라도 여러 번 헤어지면서 나의 감정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이별을 하는 게 맞을지.
어떤 이별이건 끝난 후에는 사후관리가 필수다. 다시 스스로와 친해지는데 시간을 들여야 한다. 나 또한 이별 후 나에게 돌아가는 길을 찾으려고 많은 것들을 하며 보냈다. 방 가구 배치를 이리저리 바꾸며 기분을 전환했고 동네 독서모임에 정기적으로 나가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나눴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친한 회사 동기들과 11시가 넘도록 슈팅게임에 빠졌고, 휴가 시즌이 아닌데도 일주일 휴가를 내고 혼자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물론 그 모든 시간이 괜찮지만은 않았다. 가구 배치를 바꾸다 애인한테 받았던 물건이 튀어나와 잠깐 동안 우울했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안부를 묻던 사람이 돌연 사라졌다는 게 슬펐다. 중요한 건, 어떤 이별이건 슬퍼도 되지만 슬퍼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슬퍼도 하고, 새로운 무언가에 영감을 받기도 하고,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워하기도 하고, 몰랐던 내 취향을 발견하면서 소소하게 행복해야 한다. 그래야 나에게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