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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다운 Sep 16. 2022

거절? 해도 괜찮아

거절을 잘하는 사람 곁에는 좋은 인연만 남는 이유


나는 지독한 호갱이었다. 옷가게에 들어가면 직원이 자꾸 입어보라는 걸 못 이기는 척 입어보다 마음에 안 드는데 카드를 긁고 나오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동사무소에 갔다가 뜬금없이 차량용품을 산 적도 있다. 동사무소 주차장에 주차하고 내리는데 처음 보는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웃는 듯 부탁하는듯하는 얼굴이어서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는 내 차에 흠집이 많다며 좀 봐도 되냐고 했다. 나는 마치 엘리베이터에서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인사를 건넸을 때처럼 “네네” 했고, 그는 재빠르게 손걸레에 용액을 묻혀 앞 범퍼의 가장 눈에 띄는 흠집을 닦기 시작했다. 힘주어 몇 번 닦으니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의 놀라는 리액션에 신이 난 그는 일 보고 오라며, 마저 지우고 있겠다고 했다. 볼일을 다 보고 나왔을 땐 차가 정말 눈에 띄게 멀끔해졌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라이브 쇼핑이 시작됐다. 흠집을 지우는 데 사용한 용액이 뭔지, 정비소에서 지우는 것보다 얼마나 합리적인지 등을 설명하며 나를 구슬리는데, 5분 만에 지갑이 열렸다. 지금도 이름이 기억 안 나는 그 흠집 제거제는 두어 번 썼던가? 몇 년을 트렁크 구석에 먼지처럼 굴러다녔다. 어차피 그 차는 폐차할 정도로 오래된 차라 흠집 제거가 의미 없었다는 걸, 왜 그때의 난 생각 못 했을까. 5년도 더 지났지만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는 건, 차마 거절하기 어려웠던 그 남자의 웃는 얼굴뿐이다. 
 
“괜찮습니다.” “저는 필요 없어요.” 이 두 마디를 못 해서 더 큰 호갱이 될 뻔한 적도 있었다. 페이스북에서 ‘1억 모으고 싶은 사회초년생을 찾습니다’라는 광고 배너를 보고 순진하게 재무 상담을 신청했다. 며칠 뒤 재무 설계사라는 사람이 3주에 걸쳐 총 3번 찾아왔다. 내가 모으고 싶은 돈의 목표치를 잡고 그 돈을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줬는데, 문제는 그게 그 설계사가 다니고 있는 보험사의 ‘변액보험’ 상품이라는 거였다. 그가 제시한 나의 변액보험 가입금액은 월 50만 원대였다. 그러니까, 나는 재무 설계로 위장한 보험사 호갱 테크트리에 착실하게 탑승한 거다. 큰돈이 갑자기 나가기 시작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게 맞는 건가 싶어 가족,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약 일주일 동안 온갖 인터넷 게시물을 뒤졌다. 그 결과 변액 보험이라는 상품이 사기는 아니지만, 나에게 적합한 상품이 아니라는 건 명확히 알게 됐다. 결국 며칠 뒤 보험사에 전화해 청약 철회를 했다.
 
 

호갱 이전의 나는 더 소심한 사람이었다. 전화 공포증이 있어서 전화로 짜장면도 못 시켰다.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도 무시하기 미안해서 늘 받아오던 나였다. 지금 생각하면 불쑥 전단지를 내미는 쪽이 미안할 일인데, 왜 나는 내가 미안한 입장이라고 생각했을까 싶다.


거절을 못 했을 때 나는 몸이 힘들었다. 내 몸은 자정이 넘도록 잠들지 않으면 다음 날 신체 능력이 심각하게 저하된다. 그래서 가급적 12시 전에 잠들고 새벽 늦게까지 깨어 있지 않으려고 한다. 당시 나는 동네의 작은 맥주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장님은 가게가 끝나면 아르바이트생들과 조촐하게 회식하는 걸 좋아했는데 나는 먼저 집에 가보겠다는 말을 못 해서 회식한 날이면 환자처럼 집에 누워만 있었다. 무려 이십 대 초반이었는데! 친구들이랑 술을 마실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학교 때 친구들은 누가 누가 끝까지 남아 있나 매일 내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내기에서 지기 싫어서가 아니라, 친구들 마음 밖에 나기 싫어서 끝까지 남으려고 노력했다. 다음날 그 여파를 온몸으로 견디는 건 오롯이 내 몫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왜 거절을 못 할까?’ 거절 못 하는 스스로에게 지칠 즈음, 문득 그 이유를 생각해봤다. 그 첫 발자국은 유년 시절까지 내려간다. 엄마는 내가 무언가를 해달라고 했을 때 종종 날 쳐다보지도 않고 “안돼”라고 했다. 심할 땐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보지도 않고 ‘엄마’라고 부르면 일단 안 된다고 대답했는데 그래서인지 가끔 그래, 하고 떨어지는 허락이 너무 감사했다. 그다음 기억나는 건 대학교 때 맥주집 알바를 하면서 처음으로 전단지를 돌렸던 때다. 어떤 사람은 나를 그냥 무시했지만 어떤 사람은 받은 다음 몇 걸음 가서 길바닥에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충격받은 나는 앞만 보고 전단지를 돌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가 준 전단지를 바닥에 버리는 걸 보는 건 상상 이상으로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니까 내가 상처받았던 기억 때문에 그랬다. 누군가에게 내 거절이 상처로 남을까 봐 미안해서 거절을 못 해왔던 거다.


미안한 게 싫어서 술의 힘을 빌린 적이 있다. 맥주집 사장님 그리고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과 새벽에 도가니탕까지 먹고 헤어진 날 저녁, 대학 동기들과 술 약속이 있었다. 좀비와 다름없는 상태였지만 미리 약속했던 자리라 끌려가는 마음으로 갔다. 그리고 10시 즈음되었을까. 동기들이 한껏 텐션이 올랐을 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왁자지껄 떠들던 친구들이 일순간 나를 올려다봤다. “나 집에 먼저 간다.” 일부러 술에 취한 듯 스탭을 한 번 꼬았다. 초점 흐린 눈동자 연기는 덤. 말려도 소용없다는 듯 가방을 투박하게 걸쳐 매면서 맥락 없이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내 등짝을 쳐다보고 있을 동기들을 향해 등 뒤로 손을 흔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술 취하면 뚜벅초처럼 집에 가는 언니’로 불렸다. 그날 난 동기들을 잃지 않았다. 뚜벅초라는 별명을 얻었을 뿐.


술의 힘 없이 처음으로 거절에 정면 돌파했던 건 첫 회사에서였다. 어느 날 파워블로거의 클레임 전화가 걸려왔다. 원고료를 지급하려면 주민번호를 수집해야 하는데, 한 파워블로거가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원고료를 지급받겠다고 악을 썼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날이 선 클레임 전화를 받으니 머리가 띵했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사장님한테 말씀드리고 주임님들께 이 일을 부탁드릴까’였다. 동시에 나는 언제까지 이런 전화에 쩔쩔매는 순간을 더 겪어야 하나 생각이 들며 아득해졌다. 처음으로 눈을 딱 감았다. 목소리에 상냥한 톤을 빼고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블로거님!” 전화기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죄송하지만. 그렇게는 못 해 드려요. 주민번호 수집 없이 원고료를 입금해드리는 경우는 없고요, 처음부터 통장 사본이랑 신분증 사본 필요하다고 공지드렸어요.” 조금 전까지 날을 세우던 목소리가 갑자기 기어들어 갔다. “아… 음. 제가 기억이 안 났나 보네요.” 수화기를 씹어먹을 정도로 위압감을 주던 목소리가 웬일로 누그러뜨려졌다. 그게 웃기면서 슬펐다.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겐 약한, 드라마에서나 보던 찌질한 인간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이후로 나는 예의를 갖추지 않고 본인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사람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거절을 잘 받아들인다. 헬스장에서 무료 PT를 시켜주고 자연스럽게 PT 이용권을 끊게 만들 때도, 지하철역 출입구 앞에서 갑자기 전단지가 훅 치고 들어올 때도, 구경하려고 들어선 화장품 가게에서 직원이 이것저것 추천할 때도 이 마법의 두 마디는 꽤 효과적이다. “괜찮습니다.”, “저는 필요가 없어서요.” 그들이 적극적으로 나를 설득하려고 하면 나도 적극적으로 거절하면 그만이다. 경험해본 바로는, 그렇게 답했을 때 대부분 어쩔 수 없다는 듯 물러났다.


친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에서 나는 종종 일어나 뚜벅초처럼 걸어 나왔다. 아름이의 자취방에서 새벽 3시까지 마시던 날 밤, 음주가무의 성지 다모토리에서 신나게 뛰어논 뒤 잠시 쉬자던 11시 59분에도, 회사 근처에서 동료들과 돌림노래를 부르며 술 게임했을 때도 벌떡 일어나서 “난 이제 집에 갈 시간~”하며 해맑은 표정으로 빠져나왔다. 그때마다 친구들은 더 놀다 가라며 붙잡았지만 나는 다음에 또 놀자는 말로 완곡하게 거절했다. 내가 먼저 집에 들어가서 섭섭하다고 한 친구는 있었지만, 그 이유로 이제 그만 어울리고 싶다거나 사이가 멀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제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내가 술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도 그러려니 한다.


그러니까 눈 딱 감고 한 번 거절해보자. 살면서 거절할 순간은 언젠가 찾아온다. 나의 거절에 되레 화내거나 돌아서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내가 평생 비위를 맞춰줘야만 곁에 둘 수 있다. 어떤 부탁이든 동의하고 들어준다고 해서 유지되는 관계가 과연 좋다고 할 수 있을까? 반대로 거절해도 평소처럼 유지되는 관계라면 그 사람은 분명히 나를 잘 알고 존중해주는 사람일 테다. 나 또한 거절당할 용기를 갖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언제든 누군가를 거절할 수 있고, 반대로 거절당할 수도 있으니까. 또 그 거절은 부탁에 대한 거절이지, 나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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