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싸이트 Apr 05. 2023

직장인들이 대기업을 못 떠나는 이유

대기업이라는 함정

회사원이라면 많은 이들이 대기업에 다니고 싶어 한다. 이미 대기업에 다니고 있더라도, 좀 더 좋다고 알려진 회사에 가고 싶어 한다. 기왕 직장생활을 할거라면 혜택이 많은 회사에서 근무하는게 낫기 때문이다.


'더 좋다'라고 알려진 대기업을 다닐 때 얻을 수 있는 혜택으로는 높은 연봉을 꼽을 수 있다. 연봉을 많이 받으면 삶을 더 편하게 살 수 있다. 사고 싶은 물건을 구매할 수 있고,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차와 더 비싼 집을 살 수 있다. 이 말은 곧 연애, 결혼, 육아 등을 하기에도 유리하다는 의미다. 이쯤되면 더 좋은 회사로 가려고 노력하지 않는 게 인생을 충실히 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또 다른 혜택은 사회적 인정이다. 탑 티어 대기업에 다니면 자연스레 후광 효과가 따라온다. 삼성, SK, 현대, 네이버, 카카오에 다닌다는 짧은 소개만으로도 기본적인 증명을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공부를 잘했겠구나, 좋은 대학을 나왔겠구나, 머리가 나쁘진 않겠구나, 어느 정도 돈을 벌겠구나와 같은 꼬리표가 따라온다. 어깨에 힘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모양새가 빠지지는 않는다. 부끄럽지 않을 사회적 지위를 얻는다.


그렇게 남들이 선호하는 기업으로 이직에 성공한 이들은 자신의 삶이 더 나아졌다고 느낀다. 앞자리가 바뀐 연봉에 뿌듯하고 명함에 박힌 새 로고를 흡족해한다. 


그런데 여기서 면밀히 바라볼 부분이 있다. 상황이 나아진 것은 맞지만 조금 과대포장 됐다.


일반적인 대기업 직장인들이 다른 대기업으로 이직하면서 받을 수 있는 연봉 상승률은 통상적으로 이전 회사에서 받던 연봉에서 20%를 넘기기 어렵다. 6천만 원을 받던 대리는 7천2백만 원으로, 7천만 원을 받았던 과장은 8천4백 만 원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월급으로 따지면 세전으로 해도 백만 원 안팎 정도의 변동폭이다. 물론 이 정도만 돼도 대출 이자가 있다면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사고 싶던 옷을 사고, 가방을 사고, 맛있는 음식이나 와인을 마시는 용도라면 큰 도움이 된다. 이것이 이직의 궁극적인 목표라면 충분히 성공적이다.


문제는 우리가 회사 생활을 기반으로 여생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봉을 높이는 일은 물론 가치있는 일이지만 이것으로 노후까지 설계할 수 있는 솔루션이 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충분치 않다고 답해야겠다. 


산수를 해보자. 지난해 4분기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 평균가는 10억 원을 넘었다. 가격 변동은 논외로 치자. 노후 자금은 얼마가 필요할까? 대략 연봉의 1/2에서 못 해도 1/3 정도는 필요할 것이다. 은퇴 후 앞으로 몇 년을 더 살까? 40년? 50년? 100세 시대라고 하니 각자 계산해 보자. 그럼 얼마가 필요할까? 연봉을 높여 이직하는 수준으로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까?


결혼해 아이를 키우면서 육아비, 교육비를 지출하고, 대출을 꾸역꾸역 갚으면 손에 남는 것도 거의 없이 은퇴할 때가 되어있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비로소 완전히 내 집이 된 늙어버린 아파트 한 채와 함께 말이다. 임원이 되지 못했다면 노후를 위한 재무구조는 확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때가 되어 생계를 유지하려면 뭐라도 해야 하는데, 사업 자금은 알음알음 모아둔 약간의 돈과 퇴직금이 전부일 것이다. 안정적인 작은 사업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리스크가 적은 만큼 돈벌이도 시원찮을 가능성이 높다. 


꿈꾸던 은퇴 생활은 온 데 간데없고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게 고작일 것이다. 품위유지를 위해 들이던 돈을 줄이고, 노후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다니겠다는 꿈은 접게 된다. 오히려 친구들이 건네주는 자녀들의 청첩장을 받을 때마다 축하한다는 말이 나오기보다는 손이 떨린다.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려운 노인이 될때까지 이렇게 살아야만 할 것 같다.


연봉을 높이는 것이 계획의 일부일 수는 있지만 전부여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제 많은 이들이 이 같은 구조를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이가 들기 전에 무언가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실제로 행동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다른 대기업으로의 이직 정도만을 염두에 둔다.


왜 그럴까? 

하루 종일 회사에서 마주치는 이들 대다수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수많은 직장 동료들이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꼬박꼬박 갚아나가면서 착실하게 살며 아이도 키운다. 나보다 좋은 대학을 나왔고, MBA도 수료했고, 똑똑하고, 능력 있는 이들도 있다. 저런 사람들도 나랑 같은 직장에서 열심히 미래를 그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 무의식 중에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뉴스에서 한 번씩 소개하는 기업 평균 연봉표에 우리 회사 이름이 들어가 있으니,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상위 10% 안에 드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위안을 하게 된다. 적어도 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게 된다.


대기업을 벗어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바로 기회비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남들보다 연봉을 많이 받을수록, 가방끈이 길어질수록 회사를 떠나기 어렵다. 그동안 쏟아부은 노력과 시간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면 매년 1억 원 이상을 안정적으로 벌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다. "대출금 갚기도 빠듯한데 지금 모험을 하기에는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게 정상적인 사람이다.


그렇게 리스크는 피하고 한 발짝이라도 앞서는 삶을 위해 전진하는 방법은 또다시 대기업 행을 택하는 것이다. 단기적인 성취감은 들겠지만 애석하게도 게임을 바꿀 수는 없다.



열심히 노력하는 삶은 그 자체로 존경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부족하다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새끼 바다거북이들은 해변에서 부화하면 밤 바다를 향해 내달린다고 한다. 날이 밝아 아침이 되면 바다새 같은 천적들에게 잡아먹히기 때문이다. 주어진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달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바다에 도달하는 새끼 거북이는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거북이들은 나름의 힘을 다했지만, '열심히 앞을 향해 갔다'는 정성 평가가 생존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먼곳에서 바라보면 결코 주어진 시간 안에 바다에 닿을 수 없는 위치에 있는게 명백한데도, 주변 동료들 모두가 앞을 향해 나아가니, 거대한 집단에 속한 채로 서로 할 수 있다는 희망회로를 돌리며 레이스를 펼치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바닥에 엎드린 새끼 거북이들은 시야가 좁다. 마치 우리처럼 말이다. 이런 속도로 움직여서는 아침이 될 때까지 바다에 갈 수 없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죽음의 문턱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실패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측정을 하지 않고 현재 할 수 있는 건 이게 최선이라며 열심히 사는데 의의를 두면, 그 대가는 오롯이 미래의 내가 감당하게 된다.


대기업에 가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열심히 살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대비하자는 말이다. 회사 뱃지가 주는 안락함에 가려진 자신의 정확한 능력을 알고 있어야 한다. 자기가 있는 현재 위치에서 바다까지 거리를 계산해, 하던 대로만 해도 될지, 주력을 높일 것인지, 보폭을 넓힐 것인지, 다른 길을 찾을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끝]

이전 06화 잘 나가던 과장들이 몰락하는 과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