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문꾼 Feb 13. 2022

호구의 품격 3

 '오빠.'


 가슴이 두근거렸다. J에게 먼저 카톡이 온 건 처음이다.


 '과제 힘들지ㅠㅠ고마웡!!'


 '아니야하하하괜찮...' 타이핑을 치던 중 낮에 신신당부했던 금발녀의 조언이 떠올랐다. 


 "절대 살갑지 마세요."


  다시 썼다.


  '그러게.. 어려워서 못하겠다..'


  '근데 오늘 낮에 누구야?' 

  

 J는 과제엔 관심이 없었다. 소정의 말이 다시 한번 머리에 맴돌았다.


 "용건만 간단히. 오버하지 마세요."

 

 '그냥 아는 동생ㅋㅋ'


 '예쁘던데?ㅋㅋㅋ울오빵 썸타?’ 


 ‘썸은 무슨..’

 ‘에이 그냥 아는 동생이 아니던데?’ 


 '까불지 말고 어서 자라.'


 또 뭐라고 온 것 같은데, 난 그녀의 카톡을 읽지 않았고, 답장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J의 과제도 하지 않았다. 이틀이 지났다. 


 J의 인스타그램 스토리가 업로드되었다. 금발미녀는 점심밥은 너무 일찍 헤어질 확률이 높으니, 술 먹는 사진이 올라오면 연락하라고 했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 마침 근처 술집이었다. 난 금발미녀에게 J의 위치를 공유했고, 황급히 옷을 입고 그 길로 향했다. 가는 길 그녀가 시키는 대로 J에 게 카톡을 보냈다. 


 ‘내가 요즘 바빠서 과제 다 못할 거 같아. 한만큼만 보낼게.’ 


 J에게 보낸 카톡의 숫자 1이 없어졌다. 답장은 없었다. 


 술집 입구에 도착했고, 5분 뒤, 금발 미녀도 도착했다. 몸에 달라붙는 검은색 원피스는 화려했다. 파인 부분이 등이라 다행이었다. 앞부분이 파였다면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을 테니. 역할대행에 필요한 경비의 부담은 별도였다. 난 그녀에게 택시비를 주었고, 우리는 2층 술집으로 향했다. 


 J는 남자와 함께 있었다. 통합 교양수업 때 몇 번 마주친 놈이었다. 키는 내가 더 큰 거 같은 데, 옷을 잘 입어 그런지, 난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소주잔을 부딪치며, 신나게 대화 중이었다. 즐거워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도 더 이상 가슴이 저리지 않았다. 


 우리는 J와 맞은편에 위치해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의도적인 느낌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두 칸 떨어진 테이블에 앉았다. 


 “뭐 먹고 싶어요?” 


 “우리도 소주 먹어요. 짬뽕탕에.”


 주문하는 목소리를 들었는지, 얼마 후 J가 우리 테이블로 왔다. 


 “오빠. 바쁜 일이 이거였나 보네?”


 수없이 연습했지만, 난 입을 열 수 없었다. 떨고 있었다. 


 “오빠 누구야?”
 

 금발미녀가 물었다.
 

 “같은 과 후배예요. 여자 친구 신가 봐요?” J가 답했다.

 “뭐 비슷해요.”

 

 마시던 물을 뿜을 뻔했다. 


 J는 자리로 돌아갔고, 그 둘은 얼마 안 있어 일어났다. 흘끔 보았는데, J의 표정이 어두웠다. 사실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난 내 앞자리에서 오징어를 건져먹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작가의 이전글 호구의 품격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