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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문꾼 Feb 27. 2022

오, 나의 샌님 1


‘제정신인가..’    


 경수는 회사 인트라넷 우편을 열었다. 메일은 전체 직원회의를 통보하는 내용이었다.     


일시: 2020년 11월02일 07:30      

장소: 대회의실      

대상: 전직원      

 회의 참석 시 마스크를 꼭 착용하시고, 입장 전 입구에 비치 되어있는 손 소독제를 사용해 주세요.     


 경수는 7년 차 금융업 종사자다. 누군가에게 그들은 자본주의의 중추에서 기업의 신용을 평가하고, 리스크를 분석하는 고연봉의 금융전문가쯤 되겠다. 아니, 최소한 주택청약통장을 어떻게 만드는지, 전세자금 대출 필요서류가 뭔지 물어봤을 때 도움이 될 지인 정도는 될 것이다.  

    

 하지만 경수는 시골의 자그마한 마을금고에서 동전이나 세고 앉아있으니, 어디 가서 은행원이라 말하기도 민망하다. 물론 그는 직업엔 귀천이 없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매일같이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머물며 제1금융권과 연봉을 비교하고, 복지를 따져보니 귀천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회사를 두고 1금융권 취업에 실패한 이들의 ‘여기라도 가야 되나’ 고민하는 게시글들을 넘기다 보니, 결국 그의 가슴 언저리엔 귀천이 새겨졌다.     


 신입들이 들어오는 족족 그만두어 아직도 말단이지만, 경수는 그런 곳에서 6년을 일했다. 그만두는 또래들을 지켜볼 때, 한동안 자격지심이 그를 괴롭힌다. 그것은 오늘날 젊은이에게 필요할 것만 같은 진취, 용기, 도전 따위의 덕목으로부터 나온게 아닐까. 하지만 경수가 결국 그만두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다닐만 했기 때문이다.

 

‘소속된 것 만으로 삶의 리스크는 낮아진다.’


 경수의 아버지가 늘 말하던 삶의 철학이었다. 학창시절, 그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영어와 수학학원을 전전했고, 한 번의 휴학 없이 대학을 졸업했다. 탈 없이 국방의 의무를 마쳤으며, 현재 회사에 취업했다. 경수가 치열하게 살아온 건 아니지만 젊음에게 어울리는 방황, 질풍노도 따위의 단어들은 허울 좋은 변명에 불과했다.


 한 번은 부장님에게 칼퇴를 자신있게 외치는 MZ세대의 인터뷰를 보았다. 경수는 연출을 의심했다. 그게 아니면 인터뷰이의 사회지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수는 박힌 돌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집단에서, 굴러 들어와 정의를 말하고 있는 돌에게 조소를 머금었다. 과연 그는 받아들여질 생각으로 저러는 걸까.

  

 어쨌든 경수의 직장생활은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6년을 참은 그에겐 세상 물정의 법칙이 있었다. 제 1 법칙, 사람들 눈에 띄지 말 것. 예를 들어 실적은 바닥을 치면 안 되었다. 그렇다고 너무 앞서갈 필요도 없었다. 회사는 전 년 대비 성장률로 직원들을 등수 매기는데, 올해 무리하면 내년엔 그 이상을 해야 했기에 매년 할당량을 남겨두었다. 그러니까 경수는 중간 지점에 수렴하며 눈에 띄지 않는 편을 택했다.     


 삶의 리스크를 줄여서였을까. 경수의 통장엔 매월 같은 날에 급여가 들어왔다. 하지만 통신비와 보험료, 학자금대출원금과 청약부금, 카드값이 빠져나가니, 통장은 다음 달까지 쓸모가 없어졌다. 그래도 전세자금 대출 원리금을 갚을 수 있는, 1600cc 미만 준중형 자동차의 기름 값을 감당할만한, 무엇보다 여자친구와 결혼 얘기까지 오갈 수 있는 팔 할은 이런 동요가 적은 삶 덕분이었다.     


 그것은 일이 없을 때의 걱정, 불규칙한 수익, 고독으로부터 오는 불안이 없는 삶이다. 그것은 남들이 닦아 놓은 길 위를 걷기로 한 자의 혜택이었고, 경수는 지금껏 그래왔듯이 소속의 슬하에서 시키는 거 하면서, 하지 말라는 건 안 하면 되었다.     


 하지만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밥벌이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의 어른들은 단합을 중시했고, 소통이라는 명분으로 자주 뭉쳤다. 하지만 경수에겐 잦은 회식문화가 곤욕이었다. 선배들이 주는 소주를 억지로 욱여넣었고, 다들 취한 틈을 타 몰래 버려가며 끝까지 남아야 했다. 그렇게 맨정신으로 남아 숙취 해소제를 사고, 상사들 대리까지 잡아줘야 회식이 끝이 났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엔 항상 등산 행사가 있었다. 그 주에 황금연휴라도 끼는 날엔 전 직원이 1박 2일로 워크숍을 갔고, 어떤 날은 아침 6시에 모여 조찬모임을 하기도 했다. 여기엔 항상 술이 있었고, 경수에겐 만취한 사람들의 뒤치다꺼리도 따랐다.      


 코로나는 모든 삶을 바꾸었다. 건국 이래 이렇게까지 개인주의를 옹호한 적이 있었을까. 이젠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단다. 집합금지 앞에선 전 직원이 함께했던 행사도 예외 없었으며, 여럿이 모여 저녁 식사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러니까 등산도, 회식도 더 이상 설 곳이 없었다. 하지만 사장은 매월 초 월례 조회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경수는 회사 인트라넷 우편을 열었다. 메일은 전체 직원회의를 통보하는 내용이었다.     

일시: 2020년 11월 02일 07:30      

장소: 대회의실      

대상: 전직원      

 회의 참석 시 마스크를 꼭 착용하시고, 입장 전 입구에 비치되어있는 손 소독제를 사용해 주세요.    

 

‘100명 이상 집합시키면서 방역수칙을 논하는 건 제정신인가.’      


 회의실엔 테이블마다 아크릴 칸막이가 처져있었다. 앞뒤가 안 맞는 방역수칙을 보고 경수는 실소했다. 사장은 마이크 앞에서 그동안 모이지 못해서 억눌렸던 욕망을 쏟아냈다. 그것은 설 자리를 잃을 뻔 한 자의 불안이기도 했다. 사장이 마스크를 벗었을 때, 경수는 그가 입안에 가시가 돋은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가 배에 힘을 주는 대목마다 침방울이 튀는 게 보였다.     


 “여러분! 우리가 이 시국에 모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장은 우렁찬 억양으로 내용을 이어갔다.

 

 "힘을 합쳐 다 같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만 합니다.”     


 하지만 내용은 황량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신마저 말라갈 것 만 같았다. 경수는 시간이나 때우려 챙겨 온 필사 노트를 넘겼다. 남들 눈엔 회의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가져온 업무 다이어리 정도로 보일 만한 노트였다. 아니 사실 관심도 없을 테니, 이만한 일탈이 없었다.     


이해는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라고 했다.      

‘너는 나를 이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잘 오해해준다는 뜻이며,

‘너는 나를 오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보여주지 않고자 했던 내 속을      

어떻게 그렇게 꿰뚫어 보았냐느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 김소연<마음사전> 중-         

  

‘적나라한 이해라..’     


 경수는 회사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 안정감의 끝은 어디일까. 그리고 머릿속에 회사에서 가장 안정적인 이들을 줄 세웠다. 대표적으로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는 부류들이 있었다. 그들은 법인카드를 자기카드인 양 긁는 이들이다. 곧 경수 본인도 이런 시스템에서 우위를 점했을 때를 상상했다. 시간이 흘러 앞사람이 나가면 자기도 언젠가는 올라갈 날이 오지 않겠는가.     


 업무를 명분 삼아 삼겹살의 소주잔을 기울이며 늦게까지 퇴근하지 않는 이유를, 직원들의 단합을 중시하며 굳이 주말까지 모였던 기억들이 스쳐 갔다. 말 한마디에 모두가 약속장소에, 그것도 새벽 시간에 나온다면, 여러 사람 앞에서 마이크를 쥘 때마다 훌륭하다고 손뼉 쳐주는 관객들이 있다면, 한 달에 한 번 산 정상에 오르며 건강도 챙길 수 있다면, 산해진미를 내 돈 하나 들이지 않고 즐길 수 있다면, 다들 나에게 술 한잔 따르려 안달이 나 있다면, 이 모두가 나를 위한 무대라면 얼마나 재미질까.    

  

 그런데 감히 코로나 따위가. 이 염병 앞에서 모든 계층이 동등해졌다. 이런 염병. 특권인지도 몰랐던 당연함을 빼앗겨 버리면 이 얼마나 공허할까. 시인의 말을 되뇌며, 오해하고 싶었다. 보여주고 싶지 않고자 했던 그 속을 꿰뚫고자 했다. 경수의 조소와 함께 그의 마음엔 말라가던 풀들이 다시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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