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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문꾼 Mar 09. 2022

오, 나의 샌님 2

 “어이, 거기. 오른쪽 중간, 뭘 그렇게 열심히 보나?”     


 경수는 설마 싶어 고개를 들었고, 사장과 눈이 마주쳤다. 마이크의 울리는 소리가 한 번 더 경수를 가리켰다. 


 "그래, 너."


 경수는 가슴이 철렁했다.      


 “네?”          




  경수는 되물음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뭘 그렇게 열심히 보냐고. 이리 가져와 봐.”     


 “아..아무것도 아닙..”     


 “가져와!”     


 찢어지는 사장의 목소리가 회의장 안을 메웠다. 경수는 쭈뼛거리며 파란색 노트를 가지고 사장에게 갔다. 노트를 제출하고 뒤를 돌아보니 100명의 관객이 보였다. 경수는 앞이 새하얬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자리로 돌아오던 찰나에 그들과 눈을 마주쳤다. 


 지금 이 상황이 남의 일이라고 가정하니 세가지 경우의 수가 있었다. 빨리 회의가 끝나는 게 우선인 부류들은 내 일이 아니기에 이제서야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안도감에 찬 이들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의 일에 엄격한 잣대를 가진 이들은 비난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사장은 들어가는 경수의 등에대고 한마디 더 거들었다. 


 “어른 말씀하시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이렇게 싸가지가 없나?”     


 경수는 돌아서서 다시 답했다.


 “죄송.. 합니다..”     


 “어디 지점이야?”     


 “행복...지점입니다.”     


 “김창수 지점장. 직원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거야?"     


 "죄송합니다."     


 앞에서 두 번 째 줄에 앉은 행복 지점장은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대답했다.  

   

 필사노트로 겨우 살려놓은 경수의 풀들은 다시 짓밟혔다. 경수는 세상 물정 제 1법칙을 떠올렸다.     


 ‘눈에 띄지 말라.’     


 6년 동안 차곡차곡 갈아온 텃밭이 황폐 직전에 이르렀다. 그는 한 순간 모든 걸 잃었다.     


 회의가 끝나고 지점장이 다가왔다.     


 “하.. 경수야. 이런걸로 혼나면 너무 억울하지 않냐.”     


 “죄송합..니..”     


 점장님은 차분했고, 경수는 말 끝을 흐렸다. 차라리 점장님이 화를 냈다면 경수는 마음이 더 편했을 것이다. 




 ‘상기 본인은 2021년 11월 02일 정례조회 시간에…’     


 경수는 자신의 잘못을 생각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법칙을 만들었다. 내용은 이렇다. 듣고 싶지 않은 연설을 경청 하지 않은 게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 하지만 들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듣는 척을 한다. 대놓고 핸드폰을 보는 게 아니라 몰래 본다. 엎드려 자는 게 아니라, 힘겹게 꾸벅꾸벅 존다. 그게 세상이 정한 매너고, 청자가 이런 노력들을 하고 있다면, 화자 처지에서도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색출할 일이 아니란 말이다.

 

 유레카, 경수는 잘못을 찾았다. 걸린 게 잘못이다.


 '상기 본인은 2021년 11월 2일 정례조회 시간에 경청하는 척을 하다가 걸렸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끝.'

 경수는 쓰다가도 아니다 싶어 다시 백스페이스를 눌렀다. 쓸 말이 없어 다시 애국가를 끄적이다 백스페이스를 누른다. 


 “야, 너 북한이였으면 총살감이야. 졸다가 처형 된 거 알지?”     


 경수가 사유서 첫머리부터 헤매는 걸 본 규형이 키득거리며 한마디 던진다.      


 “저리가. 짜증나니까.”     


 “근데 솔직히 회사가 미친거지. 이 시국에 매번 모여야겠냐. 난 너 편이다. 파이팅!”     


 경수는 병 주고 약 주는 규형이 얄밉다. 이번 대리직급 승진 명단에 함께 올라있는 그를 밑에서 깔아주려니까 더욱 더 탐탁치 않다. 하지만 그날 저녁 규형에게 이끌려, 경수는 소주 한 잔 하러 갔다. 사무실 막내 박주임도 따라왔다.      


 “진짜 너무하지 않아요? 나 같으면 펑펑 울면서 회의실에서 도망 갔을 거 같아요.”     

 

 고기를 뒤집으며 박주임이 운을 띄운다.     


 “그런 건 모욕죄 성립 안하나?”     


 규형이 툭 던진다. 경수는 소주 한잔 들이키며, 모욕죄를 검색한다. 모욕죄 성립요건, 모욕죄 벌금, 모욕죄 고소.. 연관검색어가 뜨며 블로그에 미리보기 정보가 떠 있다.     


 ‘1년이하의 금고 혹은 이백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으므로..’     


 “야. 답답한 소리 하고 있어. 바쁜 경찰공무원님께서 잘도 해주겠다.”     


 “에게? 벌금도 고작 이백밖에 안되네..”     


 박주임도 검색창을 보여주며 경수를 거든다.      


 “그럼 익명으로 PD수첩에 제보?”     


 “야 나인거 뻔히 아는데 내부고발자 될 일있냐..”     


 “아니 그거 말고 이것저것 다 엮는거지. 김대리가 쏘아올린 작.은.공.”     


 “넌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냐..”     


 경수는 잔을 넘기는 와중, TV 자막을 본다. ‘가짜뉴스.’ 순간 TV 속 앵커의 또박또박한 발음과 명료한 발성이 스쳐간다.      


 “코로나 백신이 개발 되었다는 가짜 뉴스로 국민들이 혼선을 겪고 있습니다.”     


 ‘가짜뉴스?’     


 집에 오자마자 경수는 변기에 얼굴을 쳐박고 토를 한다. 정신이 번쩍 들지만 여전히 머리는 핑핑 돈다. 양치를 하고 누웠다. 잠이 오질 않는다.     


 경수는 핸드폰을 열고 가짜뉴스를 검색했다. 연관검색어가 나열되어 있다. 가짜뉴스 사례, 가짜뉴스 코로나, 가짜뉴스 만들기..      


 경수는 몸을 일으켜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가짜뉴스 만들기를 다시 검색했다. 1시간 반이 지났다. 경수는 그 시간 동안 찾은 내용을 정리했다. 우선 대충 마음에 드는 기사의 링크를 복사해, 사이트에 붙여 넣는다. 사이트에서는 자동으로 언론사, 기자명, 기자 이메일을 자동으로 수정해준다. 기사 제목과 내용만 쓰면 된다. 마지막으로 VPN으로 우회해서 새로운 링크를 생성해 IP 추적을 따돌린다. 사이트 설명에 따르면 중국 서버라서 거의 잡을 수가 없다고 한다.      


 기사 하나에 알파코인 38개, 우리 돈으로 약 3만 7천 원이다. 술은 사람을 대범하게 만든다. 경수는 3만 7천 원이 아깝지 않았고,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낮에 짓밟혔던 풀들이 다시 일어섰다.      


ㅇㅇ금고 임직원 집합금지명령 어긴채 100명이상 모여     


 경수는 회사 홈페이지에 로그인하여 직원들 메일주소를 추린다. 각 부서와 지점 인원을 무작위로 골라 가짜뉴스 링크를 보냈다. 시스템상 익명의 메일은 스팸으로 분류되기도 해서, 경수는 각 부서당 2명에게 메일을 보내 기사가 읽히지 않을 확률을 낮추었다. 시계를 보았다. 새벽 5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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