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능력주의
고등학교 시절 ‘사회와 윤리’ 과목을 배우던 중 존 롤스의 ‘정의론’에 꽂힌 적이 있었다. 스칸디나비아어과에 대학 입시 지원을 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존 롤스가 끊임없이 주창하던 ‘무지의 베일’이라는 개념, 그리고 북유럽의 평등지수는 가장 이상적인 세계처럼 보였다.
존 롤스와 북유럽이 나의 이상이 된 데에는 나의 출신지 영향이 컸다. 나는 부산에서 나서 대학 입학 직전까지 살았다. 부산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나에게 부산은 좁은 울타리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더구나 나름 부산의 특목고 출신이었음에도 나는 매번 선생님들께서 “지금 서울 아들은 돈 발라가며 대치동에서 현강 듣고, 밥도 몬먹고 뛰다니고 있다. 니네는 가들 따라가려면 몇 배는 더 노력해야 된다”고 채찍질 하는 소리를 듣곤 했다.
왜 나는 ‘서울 아’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해야 되는 것인가? 의문이 생겼다. 답은 생각보다 간단히 찾을 수 있었다. 온갖 미디어 속 휘황찬란한 서울의 모습 속에서 내가 공감할 부분은 없었다. 모든 것들이 서울에 존재했고, 나는 서울에서 약 다섯 시간 먼 곳에서 산다는 이유로 이를 누리지 못했다.
존 롤스는 사람 눈 앞에 베일을 씌우고 거주 사회를 선택할 권리를 준다면 적어도 최악을 피하기 위해 각자의 이익을 분배하여 선택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것이 바로 무지의 베일이다. 나에게 무지의 베일이란 내가 서울로 대학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 받는 것이라 여겨졌다. 나에게는 ‘인서울(In 서울)’이 공정이자, 능력주의 사회를 실현하는 지표였다.
결국 나는 인서울에 성공했다. 본거지 또한 서울로 옮겨졌다. 공정이란 단어는 그 이후 내 머리 속에서 사라진지 꽤 됐을지도 모른다. 서울을 기회의 땅이라 여기고 다양한 경험들을 접했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공정을 시험할 영역은 인서울이 아닌, 취업이다.
최근 들어 지역인재(지역 할당제) 이슈가 취업준비생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간사하게도 지역인재라는 단어가 억울했다. ‘그렇게 지역에서 취업하는 것이 힘들었으면 서울로 오지’라는 생각이 한 순간 들었다. 안타깝게도 이 생각을 철회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부산 출신 인서울 대학생은 마치 철새처럼 진보, 보수 진영을 옮겨 다니는 정치인과 같아졌다. 서울에서의 경험은 능력을 기르고 발휘할 상황들의 향연이었다. 이것들을 부산과 비교하자면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서울 대학 진학에 성공하지 못했더라면 억울함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직면한 두 가지 상황 모두 현실이다.
이렇듯 개인적 딜레마를 겪고 나서 공정의 의미가 다시 확실해졌다. 무지의 베일이란 개인에게 씌워질 수 없는 개념이다. 좁은 땅덩이에서 나뉘어진 개인의 능력 차이는 개인에게 책임 지어질 일이 아니었다. 다시 말하자면 능력치가 차고 난 후, 결과론적으로 기회 균등의 법칙을 적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공정은 선택하는 것이라 부여되는 것이다. 능력을 발휘하려는 장소에 따라 그 공정의 의미가 변화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그래서 ‘지역 공정’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만들어 곱씹었다. 능력 차이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 그렇다면 실험적으로 어떤 인프라를 이동, 생성해야 하는 것인지를 고민하는 본질적 공정을 의미한다. 이것이 부산-서울의 예가 아니라, 앞으로 내가 느낄 딜레마들의 해법이 되지 않을까 감히 예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