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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여진 Mar 19. 2021

새벽



ㅇㅇ님이  글을 라이킷 했습니다”. 침대 머리맡의 휴대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새벽, 잠이 오지 않아 브런치에   편을 적었다.  글이 익명의 누군가에게 닿은 모양이었다. 새벽에 글을 쓰느라 늦잠을 잤지만, 그래도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요새 새벽까지 깨어 있는 날들이 많아졌다. 대부분 글을 쓰고, 읽으며 새벽 시간을 보냈다.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새벽만이 오롯이 나를 위해 쓰는 시간대’이기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평소에 나는 꽤 착실한 대학생 역할을 해낸다. 강의를 열심히 듣고, 과제도 꼬박꼬박 제출한다. 이외에도 청춘의 나이에 걸맞게 알바도 하고, 사람도 열심히 만난다. 대학교를 8학기 다니면서 습득한 라이프스타일대로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대학교를 8학기 이상 다니면 졸업대상자가 된다. 나 또한 그렇다. 졸업시험을 치고 나면 학교를 떠나야 하는 시기이다. 따라서 이번 학기는 학교를 떠나기 전의 어수선한 긴장 상태가 덧붙여졌다. 8학기 동안 고수해왔던 라이프스타일을 잘 영위하는 것 같다가도 취업에 대한 걱정이 틈틈이 침투했다.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활동들을 할 때에는 그 걱정이 더욱 깊어진다. 특히 24시간 내내 붙잡고 있는 휴대폰 연락은 이제 나에게 과학 발전의 악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그래서 하루 할 일을 다 끝내고 난 뒤 휴대폰 연락을 멀리한다. 나름 취업 준비하던 것들을 책상 끄트머리로 치우는 것도 필수적이다. 이러한 행동을 취할 때면 이상하게도 딱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대가 된다.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새벽으로 이끌어지는 모양새이다.

 

실제로 내가 사람들과 공유한 글들은 대부분이 새벽에 업로드 되었다. 글들의 주제는 매우 다양하다. 내 감정과 요즘의 생각들이 대거 첨가되어 있다는 것이 유일한 공통점이라 할 만하다. 신기한 것은 글을 올린 직후, 익명의 누군가들이 반응을 활발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날 새벽에 올린 글도 마찬가지였다. 평가받기 위해 쓰지 않은 글답게 내 주관을 탈고 없이 휘갈겨 썼다. 나른해지는 시간대 때문인 건지, 안정된 정신 상태 때문인 건지 글을 기고할 때의 집중력이 올라간 감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잘 쓴 글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올리자마자 꽤 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보였다. 이때 꽤나 큰 만족감과 행복감이 밀려왔다.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인정 욕구가 있다고 하지만 내 감정은 매슬로우의 피라미드 위 그것은 아니었다고 확신한다. 글이 인정받았다는 만족감은 둘째 치고, 사람들이 그 시간대에 깨어 있었다는 사실이 위로로 다가왔다.

 

새벽까지 잠들지 못한 이유야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글 하단의 하트를 누름으로써 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이것이 나에게 굉장히 크게 느껴졌다. 접착제처럼 끈적하게 붙어 있는 휴대폰 연락과는 달랐다. 상당히 느슨하고 자유로운 소통이었고, 내 생각과 가치를 응원하는 움직임이었다. 하루 종일의 행적을 기록하는 용도의 소통보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그들이 나의 학력, 학점 등이 아니라 내 머릿속 생각들을 응원한다는 것이 고마웠다.

 

물론 반응이 없다고 해서 실망하지는 않는다. 평상시에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생각들을 모아 자판을 꼭꼭 누를 때 다른 걱정과 불안은 없다. 이것만으로도 나를 돌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게 소중한 가치들이 쓸모 없는 것으로 치부되지 않도록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반응은 단지 그에 대한 세세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사실 이것들 모두 새벽이라는 시간대에 와서는 전혀 쓸데없는 따짐이 되곤 한다.

 

모든 평가와 되새김을 떠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벽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하루 중에서 마음이 제일 편한 시간대이다. 안타깝게도 그 시간대는 한정적이기 때문에 더욱 소중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끔 낮, 오후에 생활하면서도 새벽이 오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ㅇㅇ님이 내 글을 라이킷 했습니다’. 알림이 다시 울렸다. 다시 생각하기를, 이 알림이 나를 새벽으로 시간이동 하게 하는 타임머신 같았다. 그때 그 글을 쓰던 기분과 상황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새벽이 그 시간대가 아닐 때에도 위로 받을 수 있도록 힘 써주는 것 같았다. ‘오늘도 새벽에 깨어 있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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