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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여진 Jul 20. 2024

27살 주니어 마케터, 권고사직을 받들겠습니다. ^^7

네가 다닌 기업은 안 조쏘 기업이고, 내가 다닌 기업은 다 조쏘 기업이고


2년 반 만의 광고대행사 AE 시절을 마치고,

좋은 팀과 빅 브랜드 잘 만나 디지털 마케팅 수려하게 마친 것을 제 역량인 양 착각하고 잘난 척하고 다닐 시절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더란다.

그 시절이 24년 2월 즈음인지라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가 차기도 하며.


자금력 빵빵하고 계열사들도 많고 인하우스 지주회사에서 광고주로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는 매력적인 제안.

무엇보다도 인생에서 가장 잘 만났다고 생각한 어른이 불러준다면야,

당연히 연봉은 주니어 차원에서는 감사한 액수였고 말이다.


결과는? 권고사직 권유 메일을 24년 7월 9일 화요일 출근하던 길에 받게 되었다.

6월 말부턴가 이리저리 정치질이 난무하던 상황에다,

조쏘기업 특성상 한 그룹에 의존 치중(그게 우리 팀이었다 하는 비극)하여 일이 잔뜩 몰리고 있던 상황이었던지라

메일을 받고 솔직히, 웃음만 났다.

‘아, 오히려 좋아?’


권고사직을 받은 후 몇 명 대상 권고사직 철회 어쩌고를 또 스리슬쩍 얘기 주셨다만,

이 말도 안 되는 짜치는 판에 굳이 제가 알아서 기어들어 갈 필요가 있겠나요.

못 먹고 못 살 거 알아서 맘 편히 보내드립니다. 수고하세요. < 엥, 나 너무 자격지심 같은가? 근데 난 일 잘하고 와서 후회 없다 뭐.


아무튼 간, 소위 잘 나가는 친구들로 가득 찬 비좁은 탄탄대로에서 그래도 나름 경차 한 대 잘 끌며 자칭 베스트 드라이버로 살고 있다 믿었던 나 자신.

27살에 갑자기 권고사직을 받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버렸다.

최근에 올라간 연봉 믿고 자취방을 얻었고, 이제 막 대출심사 받으려던 중이었는데 이런 일이..

유야무야 어찌저찌 대출심사까지는 재직하는 것으로 정리되긴 했으나 속이 분했다.

어린 날의 패기는 남아있는 터라, 자존심이 상한 게 이 권고사직의 포인트였다.


이렇게 감정정리가 되고 나니 내가 떠올리게 된 것은, 내가 아직 어리다는 안도였다.

어림의 제1끝물을 서핑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내 커리어‘만’ 걱정하고 있는 이 상황이 안도였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일이 일어남에 따라 나 좀 위로해 달라고 주변사람들한테 그렇게 징징댈 수 있기도 했고.

아, 또 그리고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 성장하고 있는 내 마케팅론이 꽤 명석하다는 믿음이 있기도 했고.


어쩌면 자기 위로일지도 모른다.

원래 상대우위적 비교는, 값싸고 쉬운 위로를 부르기 마련이다.

내가 봤던 멋진 어른들은 더 책임질 게 많으니까 비교적 나는 어려서 괜찮다는 그런 생각이지 않을까. < 내가 읽어도 얄밉네, 고얀 놈.

요 근래 나는 제3세계 내전을 본다거나 중국 문화혁명 시기를 본다거나 하는 방법으로도 상대우위적 비교를 취하고 있다. < 이것도 비겁하네.


원래는 이렇게 한탄하는 글로 내 권고사직에 대한 사유를 마무리 하기 싫었다.

내가 다녀본 바로 대행사와 조쏘기업과 등등에 대한 꽤나 유익한 비교분석을 하고,

주니어 마케터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그건 다음 기회로 넘기고..

내가 지금 무직자 되게 생겼는데 누굴 걱정하냐는 현대 mz세대의 마인드랄까.


이력서 쓰러나 가야겠다.

아, 벌써 낸 몇 개의 이력서에는 브런치 홈페이지 주소도 있을 텐데..

나 권고사직인 거 다들 몰라야 하는 건데..

아무튼 이 글을 읽고 귀엽다거나, 얄밉다거나, 불쌍하다거나, 힘들어 보인다거나, 웃기다거나 하는 등등의 여러 감정이 생기셨다면 응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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