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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성 Nov 13. 2021

도롱뇽

봉천8동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론 그 집은 원래 우리 집이었단다. 아버지가 해외근로자로 3년간 일하신 수고의 결과였다. 하지만 내가 미처 붙잡지 못했던 어떤 시간 동안 아버지는 한국에 돌아오셔서 사업을 시작하셨으며 그 와중에 우리 집이었던 집을 팔고 거기에 세를 들어 살게 된 것이다.


큰 방과 작은 방 사이에는 2살 아이 키만 한 높이의 문턱이 있었다. 누나와 함께 썼던 작은 방엔 30촉 전구가 달려 있었고 짙은 밤색 책장과 하얀 냉장고가 있었다. 책장 옆 벽엔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래 방구석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었다. 작은 방에서 부엌으로 가려면 또 한 번 큰 문턱을 내려가야 했다. 거기엔 연탄을 때던 아궁이가 있었다. 간혹 겨울에 부엌문을 닫고 연탄아궁이의 온기로 목욕을 했던 기억이 난다. 화장실은 부엌문을 나가 마당으로 서너 걸음을 가면 있었다. 어른이 한 명 들어가면 꽉 차는 직사각형 타일 바닥에 화변기가 있는 수세식 화장실이었다. 밤에 이 공간에 들어설 때면 스스로 만든 주문을 외우며 무서움을 떨쳤다.


봉천8동 집은 막다른 골목의 끝이었다. 그 골목은 이 집에서 살던 당시 기억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넙적한 정사각형 시멘트 벽돌이 바닥에 울퉁불퉁 깔려 있고 그 사이엔 이끼가 잔뜩 낀 흙이 있었는데 비가 오면 그 틈으로 지렁이들이 기어 다니는 것을 보며 징그러워했다. 집들은 오밀조밀 붙어 있어 몸이 가벼운 어른이라면 지붕을 타고 우리 집부터 골목 끝집까지도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모두 단층 주택이었고 대게 옥상이 있어서 우리 집 양쪽에 붙어 있는 집은 나 같은 어린아이도 폴짝 뛰면 넘어갈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우리는 주인집과 가깝게 지냈다. 나는 그 집 할머니를 따라 약수터에 가서 물을 함께 길어 오기도 했다. 주인집 아저씨가 커다란 칡뿌리를 캐서 마당에 가져다 놓으면 어머니도 그것을 좀 얻어다가 다려서 마시기도 하고 여름엔 그 물을 얼려서 하드 아이스크림처럼 먹기도 했다. 주인집엔 큰 형도 한 명 있었다. 청소년이었던 그 형은 가끔 동네 친구들과 이상한 짓을 했는데, 한 번은 옆집 지붕에 있는 벌집의 벌을 모두 쫓아내고는 그 안에 있는 유충을 꺼내 구워 먹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산에 가서 신기한 것을 잡아 와 가장 호기심이 많을 나이인 7-8세의 나에게 보여주곤 했다. 한 번은 형들이 잡아 온 작은 손가방에 담긴 뱀을 만져보았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부드러웠던 느낌에 놀랐다.


그들은 그날도 무언가를 잡아 왔다. 도롱뇽이라고 했다. 가무잡잡하고 매끄러운 녀석은 돌멩이, 약간의 물과 함께 플라스틱 김치통에 담겨 옆집 옥상에 자리를 잡았다. 다음 날 학교에 갔다 집에 왔는데 골목이 조용했다. 나는 여느 때처럼 먼저 숙제를 하고 다음 날 시간표에 맞춰 책가방을 쌌을 것이다. 그리고 옥상에 올라갔다. 어슬렁어슬렁 장독대 사이를 다니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옆집 옥상에 놓인 김치통이었다. 대번에 그것이 도롱뇽이 있는 통이란 것을 알았다. 주변을 살피고 옆집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그 집 옥상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김치통의 뚜껑을 열었는데, 그만 안에 있던 녀석은 자유의 냄새를 맡자마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망가 버렸다. 나 또한 한치의 망설임 없이 얼른 뚜껑을 닫고 집에 들어와 그날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 골목길은 꿈에도 몇 번 나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꿈에서 나는 그 골목길을 걸을 수가 없었다. 내가 걸으려고만 하면 몸이 점점 공중으로 떠올라 하늘을 날았다. 다시 내려가는 방법도 모른 채, 이러다 떨어지면 어떡하나 걱정하다 잠에서 깨곤 했다. 나에겐 작은 세계였던 그 골목길은 결국은 그렇게 떠나야 하는 곳이었나 보다. 도롱뇽도 다른 동물에게 잡아먹히거나 어느 콘크리트 바닥 구석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을 망정 그 김치통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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