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절대 아끼면 안 되는 돈이 변호사 비용이라고 했는데...
송혜교의 복수극으로 전국민을 분노하게 한 드라마 '더 글로리'에는 모든 변호사들이 손꼽는 명대사가 나온다. 바로 '살면서 절대 아끼면 안 되는 돈이 변호사 비용이야.' 개인의 삶에는 송사가 잦지 않기 때문에 특히 형사 사건에 연루되게 되면 고액의 수임료를 감당하면서도 실력 있는 변호사를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소송이나 조사 및 수사가 없더라도 법률 검토가 항상 필요한 기업 환경에서는 어떨까?
조직 내의 변호사는 좋은 사업의 동반자이자 리스크 매니저
사내 변호사가 없는 조직에서는 두 가지 극과 극의 상황을 목격할 수 있는데, 엄청나게 소요되는 법무비용이 전혀 관리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정기적인 법률 자문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비용을 핑계로 미루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비로소 외부 변호사를 찾아나서서 엄청나게 큰 비용을 낭비하는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내에 변호사가 있다고 해서 외부 자문사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전문성 있는 의사결정을 위해서 때로는 책임 소재를 위해서 때로는 컴플라이어스 때문에, 여전히 외부 자문사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은 중요하다.
사내 변호사는 기업의 특수한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내부 직원으로서 기업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게 된다. 좋은 사내 변호사는 단순히 법률 문제나 리스크 관리 뿐 아니라, 기업의 정보들을 외부로 노출하지 않으면서 해결책을 강구할 수도 있고 규제 등을 포괄적으로 고려하는 사업 개발과 전략 수립의 차원에서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좋은 사업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 동시에 현실적으로 볼 때, 사내 변호사는 기업의 입장에서 외부 자문사와 내부 전략 사이에서 법무 비용을 최적으로 조정하고 조율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법무 비용 절감의 차원에서도 사내 변호사나 사내 법무팀이 있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참고로, 고객 관리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훌륭한 변호사의 중요한 역량 중 하나이다. 변호사들은 대체로 관계 관리(Relationship Management)에 능숙한 경우들이 많다. 이런 점에서 협상이나 관계 유지가 필요한 투자나 펀드레이징의 영역에서 변호사들이 빛을 발할 때가 있다고 생각된다. 고객들을 대신해서 1년 동안 계약서 조항을 한참 다툰 적이 있다면,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집요하게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법을 익히기 마련이다.
법무 비용 절감의 차원에서도 사내 변호사나 사내 법무팀이 있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정해진 예산 속에서 긴축 재정을 해야 하는 상황들이 있다. 회사 또는 외부환경으로 인해서 특별히 조정이 필요한 때가 있다. 조직에 있는 유일한 변호사로서 외부 자문사들과 불편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오늘이 그런 때였다. 평소 같으면 꼼꼼하게 보지 않았을 청구 내역서를 하나하나 따져가며, 여태까지의 인보이스를 모두 펴두고 협의할 부분을 찾아야만 했다. 다양한 논리를 내세우면서 양해를 구했다. 결국 파트너 변호사님과의 오랜 핑퐁 끝에 비용을 놀랍게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었다.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온 자문사이기도 했고, 많은 업무를 함께 해온 자문사이기도 했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함께 들었다.
일반적으로 기업 법무 자문의 경우 시간 당 보수(hourly rate)를 청구하되, 업무 내역별로 예산에 따라 상한을 정해두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오랜 기간 관계를 이어왔다면 여기에 할인율을 적용하기도 한다. 착수금과 승소나 목표 달성 시의 성공보수로 나눠 받는 송무의 보수산정 방식과는 다소 다르다. 사내에 변호사가 있어서 적극적인 통제나 조정이 가능하다면 시간 당 보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좋지만, 종종 책정되는 시간의 상한이 가늠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에 시간 당 보수 방식을 선택하는 경우 신중을 기할 필요는 있다.
사내 변호사 생활을 하다보면 법무 비용 관리는 항상 번거롭고 쉽지 않지만,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된다. 처음 사내 변호사로 이직을 한 곳은 전세계 최대 규모의 소비재 회사였는데, 연매출이 15B USD, 국내 자회사 기준으로 연매출이 1조 5천억원 정도 나오는 곳이었다. 규제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법무 조직이 마케팅이나 세일즈 조직에 비해 작은 크기였는데, 그렇다 보니 함께 일하는 외부 법무 자문사들이 국내 대형 법무법인부터 해외 대형 법무법인 그리고 서초동의 작은 법률사무소까지 매우 다양했다. 행정에 가까운 일이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매우 편하고 안락한 인하우스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요성을 몰랐지만, 예결산과 전반적인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에 관여하면서 초년차에 대기업의 외부 자문사와의 효율적인 파트너십에 대해 익힐 수 있었다.
사내변호사 업계의 멘토라고 생각되는 지금도 임원으로 계시는 부사장님이 내게 항상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조직 내에 있는 변호사는 팔방미인(Jack of all trades, Master of none)이 되어야 하고 거기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고. 법무팀을 벗어나 투자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제 정말 그 말에 공감을 한다. 여전히 나는 법무 예산 조정이라는 불편한 임무를 맡고, 대형 이벤트와 파티까지 호스팅하면서도, 투자 딜을 심사하고 투자자 관계에 관여한다. 그중에서도 돈, 이라는 예산은 어떤 일에서도 입 밖으로 꺼내기에는 불편하지만 모든 일의 핵심이 되는 중요한 일이다. 철의 여인이 되어야 했던 무자비한 오늘의 회고록 끝.
본 글은 저자의 철저하게 개인적인 의견으로, 관련 기관, 조직, 개인등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본 글은 법률이나 투자 관련 조언을 제공하는 목적이 아니며, 본 글을 기반으로 투자 결정을 내리거나 관련 지침으로 활용해서는 안됩니다. 특정 회사나 투자에 대한 언급은 정보 제공의 목적일 뿐, 투자에 대한 추천의 목적이 아님을 다시 한번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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