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은혜 변호사 Jul 21. 2024

얼리스테이지 VC는 뭘 보고 투자를 결정할까?

시장, 창업가, 그리고 실행력, 세 가지의 기묘한 조화

프리시드(Pre-Seed)와 시드(Seed) 위주의 투자를 하는 VC로서, 초기 투자자는 무엇을 보고 투자 결정을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하우스마다, 심사역마다, 설령 같은 하우스의 같은 심사역이라 하더라도, 어떤 시기냐에 따라 다른 답을 제공할 것이다. 저마다의 경험과 백그라운드, 저마다의 생각과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른  기준을 통해 투자 여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하겠지만, 내 경우는 크게 세 가지를 본다고 종종 이야기를 한다. "시장(Market), 창업가(Team), 그리고 실행력(Execution)" 


 VC는 거대한 시장의 흐름을 역행하는 투자보다는 순행하는 투자를 선호한다.


첫째로, 시장(Market)'앞으로 성장하는 시장인가'라는 질문이다. 향후 10년 동안 더 커질 수 있는 산업인지를 본다. 거대한 시장의 매크로한 흐름과 사이클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흐름 속에서 성장세에 있는 산업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중요하다. 10x가 될 수 있는, 유니콘이 될 수 있는, 상당한 시가총액(market cap)을 가진 회사로 클 수 있는 '잠재력(potential)'을 보유하고 있는 시장에 창업가가 베팅하는지는 벤처투자를 받는(venture-backed) 회사가 되는데에 있어 매우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회사가 아무리 돈을 잘 벌어도 미래를 견인할 사업이 아니라 사양 산업이라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투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회사가 자금이 필요하다면 VC 투자보다는 다른 자금조달 방법을 찾아보는 것을 한번 추천드린다.


세상에는 사업을 잘 하는 대표님들이 참 많은데, 돈을 잘 버는 것(profitable)과 벤처투자자가 찾는 영역의 사업을 하는 것과는 조금은 결이 다르다. 에이전시나 컨설팅사 또는 브랜드 사업을 하는 대표님들이 나를 찾아오는 경우에 종종 '대표님은 어떤 회사를 만들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을 한다. 다양한 이유에서 해당 질문을 하지만, 어떤 창업가들은 투자를 받지 않는 것이 본인이 그리는 회사의 모습과 더 잘 매칭되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무리해서 투자를 받게 되면 오히려 투자로 인해서 사업의 방향성이 흔들릴 수도 있다. 나는 VC가 줄 수 있는 추가적인 가치(value add)가 있을 때 VC 투자가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상당한 지분을 투자사가 가져가는 만큼, 창업가 또한 VC가 그만큼의 기여를 할 수 있는 하우스인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위대한 창업가는 같은 문제를 더 빠르고 똑똑하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풀 수 있다.


둘째로, 창업가(Team). 세상에 없는 서비스를 한다는 말을 나는 잘 믿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시장에는 비슷한 비즈니스를 하는 다양한 회사들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만약 없다면, 창업가가 리서치를 충분히 하지 않았거나 문제정의 과정에서 그 시장의 규모가 상당히 작을 확률이 있다. 같은 문제를 풀고자 하는 수십 수백 수천개의 회사들 중에서 VC가 왜 하필 이 회사에 투자하는지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는 '창업가'이다. 정의한 문제를 다른 사람들 대비 더 잘 풀 수 있는 팀인지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더 잘 하는 이유는 다양할 수 있다. 해당 문제와 관련된 업계에서 10년 이상의 경험을 가진 해당 분야의 전문성(domain expertise)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스타트업의 제로투원(zero to one)을 수없이 경험하면서 나름의 성공 방정식을 깨달은 연쇄창업가(serial entreprener)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런웨이가 매우 길고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젊은 창업가의 열정 때문일 수도 있고, 과거 경험에 비춰 제공할 수 있는 탄탄한 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비슷한 문제를 푸는 다른 창업팀에 비해 우리의 팀이 더 탁월한 해자(moat)와 강점(strength)가 있어야 한다. 


VC로서 나는 위대한 창업가에 투자하고 싶고, 위대한 창업가는 산업마다 시기마다 다를 수 있지만, 그저 그런 창업가 또는 창업팀과 타협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개인적인 관점 하나는 좋은 창업가는 당연히 지적(intellectual)으로도 똑똑해야 하지만, 동시에 '인간관계(social'의 측면과 '의지(motivation)'의 측면에서 똑똑해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감정적으로 똑똑한 사람은 자신의 비전을 펼치기 위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설득해가면서 지속가능(sustainable)한 사업을 해나갈 수 있는 역량이 있다. 세일즈든 HR이든 IR이든 초기창업가가 적은 자원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데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창업가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은 것이다. 나아가, 10년 이상 해야할 수도 있는 사업은 단순히 돈을 벌겠다는 의지만으로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자신이 푸는 문제와 창업에 대한 간절함과 깊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핵심에 집중하고, 고객의 문제를 풀겠다는 집념과 실행력이 필요하다.


셋째로, 실행력(Execution). 흔히 회사에는 성장주기가 있다고 한다. 바이오 같은 특수한 산업의 경우든, 기술기반의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우든, 나름대로의 공식(playbook)이 있고 회사의 성장 속도와 주기에 따른 마일스톤(milestone)이 존재하기 나름이다. 회사가 아주 초창기 단계에서 특히 빛을 발하는 창업가가 있는가 하면, 회사가 성장기에 들어섰을 때 빛을 발하는 창업가가 있고, 매우 커져서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 빛을 발하는 창업가가 있다. 초기창업에 투자하는 VC로서 초창기 단계에서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는 창업가의 핵심 요소는 실행력(execution)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문제를 잘 정의하고, 무엇이 핵심인지 알고, 어떤 가설을 우선적으로 검증해야 하는지 아는 '메타인지'와 더불어, 고객들을 직접 만나서 그들이 겪는 문제를 파고드는 데에 두려움이 없고, 계속되는 거절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수정을 거듭해서 최적의 상태를 만들 줄 아는 '의지력'. 


처음 스타트업을 하는 창업가들이 흔히 실패하는 이유는 '그럴듯한 사업'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결국 스타트업이 덩치있는 기업보다 잘하는 것은 빠르고 린하고 애자일한 것이기에, 초기 창업가들은 아주 뾰족하게 문제에 집중해서 그 문제의 본질을 찾고, 고객이 기꺼이 돈을 내고 사용할 방법론을 찾아야 한다. 다른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핵심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뚝심있게 흔들리지 않고, 핵심에 집중하는 집념과 실행력은 매우 정성적인 영역이지만 초기창업가에 투자하는 VC들이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초기투자자들이 수십장의 문서나 피칭에 집중하기 보다도,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해나가는 발전의 과정을 보기 위해 미팅을 두세달에 걸쳐 투자 건을 쿠킹(cooking)하는 이유다.


투자에는 투자자의 가치관이 투영되어 있을 수 밖에 없고, 투자를 통해 투자자는 믿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짐짓 객관적인 척 하면서 얼리 스테이지 VC의 투자관에 대해 일반론을 펼쳐봤지만, 결국에는 한 가지로 귀결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투자 철학에는 결국 투자자의 가치관이 투영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돌아보면, 내가 믿고 기꺼이 투자를 하는 창업가는 어떤 부분에서는 나와 닮은 구석이 있다. 어쩌면 나는 창업가에게 베팅함으로서 내 믿음에 대한 증명을 하고 싶은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내가 믿는 시장, 내가 믿는 사람, 내가 믿는 방법론"에 대한 증명을 하기 위해, 투자 이후에도 계속해서 산업을 리서치하고 커나가기를 바라고, 창업가와 시간을 보내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어떤 식으로 사업을 해나가고 어떤 부분에 도움을 줄 수 있을 지 계속해서 탐색해나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초기창업가가 VC 투자를 받기 위해 수많은 미팅을 하면서 거절을 경험하는 것을 보곤 하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투자 거절은 회사의 사업 성패와는 무관하다. 어쩌면 풀고 있는 사업의 특성상 초기 투자가 크게 필요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투자자의 가치관이나 관심사가 당신의 사업과는 잘 맞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꼭 얼리스테이지 VC 투자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결과 비슷한 투자자를 찾고 비슷한 어법을 사용하는 투자자를 찾고 비슷한 꿈과 비전을 가진 투자자를 찾으라고 하고 싶다. 





본 글은 저자의 철저하게 개인적인 의견으로, 관련 기관, 조직, 개인등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본 글은 법률이나 투자 관련 조언을 제공하는 목적이 아니며, 본 글을 기반으로 투자 결정을 내리거나 관련 지침으로 활용해서는 안됩니다. 특정 회사나 투자에 대한 언급은 정보 제공의 목적일 뿐, 투자에 대한 추천의 목적이 아님을 다시 한번 밝힙니다.


shin.eunhae.823@gmail.com 으로 메일을 보내주시면, 시간이 다소 소요되더라도 답변을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왜 나는 사우디와 사랑에 빠졌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