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아라비아 비전 2030을 필두로 한 사우디의 빠른 성장
중동은 정말 매력적인 곳이다. 한국에 지내면서도 이미 사우디 출신의 친구들이 있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지만, 몸담고 있는 벤처캐피털에서 올해 10월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Future Investment Initiative; FII)에 참여하게 되면서 그 매력에 풍덩 빠지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GCC(Gulf Cooperation Council)이라고 하는 걸프만 산유국 가운데에도 일찍이 개방한 두바이와 아부다비를 필두로 하는 UAE에 더 관심이 많지만, 요즘 부쩍 빈살만의 방한 이후 사우디 아라비아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사우디라고 하면, 열사의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얼굴을 덮은 여인들처럼 신비로운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사실 내가 경험한 중동은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마치 한국에 산다고 하면 민속촌에 있는 초가집과 두루마기 한복을 떠올리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빈살만의 비전 2030, 그 시작과 끝
여자들이 운전을 못할 정도로 폐쇄적이었던 사우디 아라비아가 지금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데에는 우리가 흔히 MBS라고 부르는 빈살만의 '비전 2030 (Vision 2030)' 프로젝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나치게 Oil and Gas 라는 자원의존적인 경제구조를 비석유 부문으로 다양화하는 것을 목표로 세운 거대한 국가개발 계획이다. 그 비전 아래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100% 재생가능한 에너지로 운영되는 신개념 도시인 네옴(Neom) 프로젝트부터 홍해를 새로운 관광지로 개발하는 레드씨(Red Sea) 프로젝트, 이미 새롭게 재건되고 있는 사우디의 건국 역사가 숨쉬는 리야드의 서부지역 디리야를 새롭게 개발하는 디리야(Diriyah) 프로젝트, PIF 산하의 부동산 개발을 담당하는 ROSHN 프로젝트까지 엄청나게 다양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다양한 프로젝트에 대해 각각 더 자세히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간단히 Diriyah 이야기를 해보자. Diriyah 지역에 가면 오래전 성곽을 복원한 형태의 UNESCO 문화재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앞이 Al Bujiari Terrace 라는 곳에서 다양한 레스토랑을 경험할 수도 있다. UAE에서도 잘 자리잡고 있는 런던의 유명한 F&B 브랜드들이 특히 많이 들어와 있는데, 런던에서 핫한 Hakkasan은 물론이고 아부다비에도 얼마 전에 새로 생긴 Flamingo Room도 있고 아트북을 파는 Asouline도 있다. 문화재 안에 있는 대추야자(Dates) 전문 프랜차이즈 카페인 Cafe Bateel에서 내려다 보는 야경 또한 아주 멋지다.
이미 디리야에는 다섯번도 넘게 방문을 했지만, 하루는 Diriyah 프로젝트 총책을 맞고 있는 사우디 친구 덕분에 VIP 프라이빗 투어를 할 수 있었는데, 골프 카트를 타고 가이드가 상세히 설명을 해주면서 아라비안 말도 쓰다듬어보고, 전통 붓글씨를 쓰는 무형문화재 같은 분을 모셔와서 우리 가족들 이름을 하나하나 써주기도 했다. 리야드 도심 남부 쪽에 있는 마스막 요새(Masmak Fortress)와 함께 KSA(Kingdom of Saudi Arabia)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꼭 방문해야 하는 스팟이다. 앞으로 이곳에는 25개 가량의 글로벌 호텔체인이 더 들어설 예정이고 이미 있는 문화재도 계속해서 복원하고 있는 공사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높은 GDP와 젊은 인구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시장
인구의 절반 이상이 40세 미만일 정도로 매우 젊은 인구 구조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내가 교류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어민에 가까운 자유로운 영어를 구사할 수 있을 정도로 교육 수준이 높다. 사우디 내부의 우수한 대학을 졸업한 경우도 많지만, 대부분의 경우 미국이나 영국의 명문대학교에서 고등교육을 받는다. PIF 산하의 사나빌(Sanabil)에서 우리 회사 중동팀의 펀드를 담당하고 있는 리드도, 중동 최대 규모 방송국인 MBC의 그룹사 회계를 담당하고 있는 친구도 모두 우수한 교육을 받은 여자들이다. 우리로 치면 갤러리아 백화점 격인 킹덤 센터(Kingdom Center)에서 펜디 같은 럭셔리 브랜드 입점을 담당했던 브랜드 매니저도 샛노랑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는 멋진 여자친구다. 전세계에 지사를 두고 그로스 스테이지의 스타트업들을 돕고 벤처 생태계를 구축하는 비영리재단에 다니는 절반 이상의 친구들은 여자들이다. 리야드 골프클럽에서 열린 여자 골프대회에 초대받아 참석하기도 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우수한 여성들이 사회진출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올해 하반기에만 두 차례 장기 방문을 하면서 FII 즈음 이후로 시작된 '리야드 시즌(Riyadh Season)'을 여러모로 즐길 기회가 있었는데, 리야드 전역에 엄청난 행사들이 펼쳐진다. 수많은 전광판과 전세계의 축소판을 만들어둔 Boulevard City에서도 각종 행사가 펼쳐지고, 아름다운 일루미나티 기술 기반의 라이팅 행사인 Noor 또한 JAX District, KAFD, VIA Riyadh 등지에서 이뤄졌는데, 아주 현란한 기술의 규모에 놀랄 수 있다. 물론 우수한 기술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널 IP 기반의 콘텐츠가 다소 부족한 점이 아쉬웠다. 그래서 정부 차원에서도 계속 엔터테인먼트 부문을 강화하고 있다.
우연히 아티스트 커뮤니티가 운영하는 이벤트에 초대받아서 예술가들과 접점을 만들 기회가 있었는데, 예술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XP 라는 언더그라운드 음악 페스티벌도 있었고, MDL Beast의 사운드스톰(Sound Storm) 행사에는 Metallica, Alesso, Calvin Harris, 50 Cent, FKJ, HER, Black Eyed Peas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게다가 아무래도 한국이 우수한 콘텐츠로 유명하기 때문에, SVC나 아람코 산하의 Waed Vantures도 이스포츠(E-Sports)나 게임 분야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런 K-Premium이 있는 섹터 위주의 테마 펀드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 느껴졌다. 사우디의 식문화는 특히나 뛰어난데, 나는 원래 지중해식과 중동식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컨템포러리 아시안 퀴진을 좋아하는 편이라, 여기서 들어와 있는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에서 식도락을 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대한민국과 끈끈한 인연을 이어 온 사우디, 앞으로는?
사실 우리나라의 산업화 시대 역군들인 할아버지 세대에게 사우디는 꽤나 익숙한 나라일 것이다. 실제로 사우디의 많은 인프라를 한국인들이 파견을 가서 건설 현장에서 직접 지어줬고, 아람코 또한 삼성엔지니어링이나 현대엔지니어링 같은 국내의 회사들과 긴밀하게 일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사우디 은행의 초석을 닦는 데에도 도움을 줬다. 이런 오랜 역사 덕분에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좋을 뿐 아니라, 한국 드라마와 K-Pop의 영향으로 세련된 이미지까지 더해져 한국을 반기는 경우가 많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FII 시즌에 방문을 하고, 중기부의 이영 장관이 방문하고 GBC(Global Business Center)를 사우디 투자청인 MISA와 함께 론칭하면서 더욱 그 관계는 끈끈해지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아마도 처음 리야드에 내리게 되면 여자들이 입은 긴 아바야(abaya)와 남자들이 입은 토브(Thobe)와 머리장식에 놀랄 수도 있다. 하지만 있다 보면 그들의 복장 또한 하나의 문화로서 이해하게 된다. 겉모습이 다소 낯설 수는 있지만, 그 안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정이 넘치고 친절한 현지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갈 수록 사우디에 대한 애정은 점점 더 깊어진다. 무엇보다도 역동적인 이 시대의 흐름에 일조하고 있다는 그 느낌이 나를 설레게 하는 것 같다. 매달 새로운 것이 새로 생기고 매번 감탄하게 되는 사우디의 빠른 성장에 경의를 표한다. 술은 못 먹지만 시샤와 시가를 즐기고, 더운 날씨 때문에 낮에는 외출을 하지 않으니 저녁을 8-9시에 먹는 문화도 익숙해지면 금방이다. 누구보다 변화를 주도해나가는 멋진 젊은이들이 가득한 이 곳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음 글감으로는 아래를 다뤄볼 예정이다
- 사우디 수도 전체가 축제가 되는 리야드 시즌
- 사막의 다보스 포럼 FII의 모든 것
- 사우디의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 생태계
본 글은 저자의 철저하게 개인적인 의견으로, 관련 기관, 조직, 개인등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본 글은 법률이나 투자 관련 조언을 제공하는 목적이 아니며, 본 글을 기반으로 투자 결정을 내리거나 관련 지침으로 활용해서는 안됩니다. 특정 회사나 투자에 대한 언급은 정보 제공의 목적일 뿐, 투자에 대한 추천의 목적이 아님을 다시 한번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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