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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재 Oct 21. 2021

얼렁뚱땅 비건 시작하기

여차저차 시작해보는 불완전한 비건

비건 지향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대단한 계기가 있는 건 아니었다. 고기를 먹으면 설사를 해댔기 때문이다.




나는 완전한 육식 공룡이었다. 고기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어릴 때 중국집에서 왜 고기는 안 나오냐고 물어봤다는 에피소드는 가족 간의 전설로 남아있다. 그런 내가 비건을 지향하기로 마음먹었다.


엄마는 거의 완벽한 비건에 해당할 정도로 고기를 소비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같은 이유인가 싶어 예전부터 왜 엄마는 고기를 먹지 않느냐고, 혹시 다른 가족들에게 양보하는 거냐고 누차 물었지만 엄마의 대답은 '체질적으로 안 받는다'였다. 그 대답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조금씩 나이가 들고, 엄마 체질을 닮아가면서야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나 또한 어릴 때부터 고기를 먹으면 그날 저녁은 무조건 배가 아프고 설사를 했지만 단순히 기름기 많은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리고 저녁에 배가 아플 것을 알면서도 일단 맛이 있으니 고기를 와장창 먹어댔다. 20대 중후반에 들어가면서야 '낮 고기, 후 설사'라는 메커니즘이 엄마의 체질과 퍼즐 조각처럼 맞아떨어졌고, 그 후부터는 '덩어리 고기' (ex. 삼겹살 등) 소비를 가능한 한 지양하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 전, 가족 행사로 의도치 않게 소고기를 먹었고, 그날 저녁 나는 대장이 끊어질 듯한 고통을 느꼈다. 다짐했다. 이제는 정말로 비건을 조금씩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이다.


나에게 직격탄으로 날아오는 고통이 비건 다짐의 가장 큰 계기였지만, 작은 계기로는 우리 집 강아지도 한몫했다. 원래도 동물을 좋아하긴 했지만 강아지와 함께 살면서 동물도 생명이라는 점을 그저 텍스트가 아니라 그 친구의 심장 박동, 귀 움직임, 체온과 냄새를 통해 피부에 새겼다. 이렇게 새긴 동물에 대한 애정은 반려 동물을 넘어 '다른 목적'으로 인간과 공존하고 있는 동물들에게까지 기웃거리게 만들었다. 돼지, 소, 닭으로 대표되는 식용동물과 토끼, 쥐 등으로 대표되는 실험용 동물들 말이다.



고기도 사실 알고 보면 생명체에게서 나왔다. 마트 정육코너에서 접하는 고기는 스티로폼 위에 놓인 채 랩핑 되어있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와 똑같이 살아 숨 쉬고 먹고 잠자던 생명체의 살점이라는 사실을 잊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종종 잊을지라도, 고기는 원래 생명체였다.


단지 약육강식의 논리로 설명하기에는 인간에게 고기가 너무 '유흥'이다. 사자는 오직 본인이 배고플 때에만 고기를 소비한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여행을 가니까, 회식을 하니까, 결혼식이라서, 장례식이라서, 기분이 좋아서, 기분이 좋지 않아서, 심지어는 '삼겹살 데이'같은 기념일까지 만들어가면서 고기를 소비한다. 오늘날의 고기 소비는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았다. 그리고 다른 생명체의 고통을 필히 수반하는 행위가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은 분명 문제 삼을만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비건으로 살아가기는 정말 어려울 것 같다. 고기를 먹지 않는 엄마조차도 '나도 이제 엄마 닮아서 고기 못 먹겠어'라는 내 말에 '그래도 고기는 먹어야 힘이 나'라고 대답하니 말이다. 정말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날까? 한국 사회의 행사에서 고기가 빠질 수 있을까?


여하튼, 나는 오늘부로 비건을 얼렁뚱땅 한번 시작해볼 예정이다. 오래도록 꾸준히 하기 위해서, 완벽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조금씩 지향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잘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선 한번 시작해보는 것에 의의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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