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만신 프로젝트 012]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거리두기 단계 강화-약화에 따른 밀린 업무 진행과 마감, 전시까지 연달아 소화하고 후유증으로 찾아온 온몸 두드러기를 가라앉히고 컨디션이 회복되기까지의 여러 과정들이 있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무관중 전시 및 영상으로 대체되는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일정에 맞게 추진 한덕에 2주간의 전시 및 후속 전시를 연이어 진행할 수 있었다.
나의 작품을 뽐내는 것이 아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시간. 한해 내내 진행된 거리두기의 시간 동안 우리는 관계를 갈망하면서도 두려워했다.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비언어 영역에서 오는 비중이 좀 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데, 문자와 전화만으로 만 모든 것을 전하기에는 엄연한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울함과 몰아붙임 너머 여기저기서 쉬지 않고 활동하는 모습과 배려 속에서 얼마나 큰 위안과 위로가 되었던가. 이런 상황에서도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동안 돌보지 못한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찾을 수 있는 축복받은 시간들이었다. 누구도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나 자신을 믿고 서려는 의지를 찾아가는 과정이었고, 무사히 그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행복했다.
집콕 생활을 하면서 캘리그래피를 쓰시면서 마음을 다잡으셨던 할머니, 급변하는 기후변화에 맞추어 환경과 생태에 대해 공부하셨던 할머니, 마을을 안전하게 지키는 자율방범대 활동으로 동네 곳곳을 순찰하시는 할아버지, 날이 좋으나 좋지 않으나 매일 아침저녁 산책을 다니셨던 할머니. 환경에 관계없이 매일이 변함없이 일상을 보내시는 노인분들에게 박수를 보내드린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해 주셨던 노인분들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나를 따라 전시장에도 와주시고, 직접 만드신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는 뿌듯함과 우리 선생님 작품이 제일 멋지다는 칭찬도 아끼지 않으셨다. 나는 작품을 하나의 책으로 엮어 참여노인분들 및 선생님들께 선물로 나누어 드렸고, 우리가 만난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늘 연락을 드리며 많은 분들에게 좋은 이야기 들려주시고, 건강하게 잘 지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다시 한번 말씀드렸다. 이 프로젝트가 계기가 되어 모인 할머니분들은 서로 친해지시고,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버거운 적도 있었지만, 나는 함께 하시는 분들이 소외를 느끼지 않고 계속 함께 가기를 바랐다. 나이도 환경도 다른 분들이 서로 모여 공통점을 찾아보고, 서로의 집에 놀러 가고 함께 일상을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 큰 기쁨 중 하나였을 것이다. 또한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 함께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의 성취감은 이분들에게 어떠한 일도 시도해보고 싶다는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지금은 내가 연락을 드리기도 전에 먼저 연락이 오실 정도로 가까워진 노인분들에게, 연말 모임도 행사도 다시 축소되어 올해가 다 가기 전에 남은 전시기간 동안 개별로 만나 뵙고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다. 날씨는 이제 어엿한 겨울이지만 마음만은 훈훈하고 따뜻하게 보내실 수 있기를.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세요.
ⓒ 美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