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상처럼 남은 계절의 마음
처서가 지나면
날이 금세 선선해진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지난날,
한소끔 끓어오르던 것들이
차츰 식어가기 위해
연기를 토해낸다.
그렇게 사라지는 열기 속에서
불필요하게 부풀어 있던 마음도 가라앉고,
곁을 지키던 무언가도 조용히 빠져나간다.
그래서일까.
지나간 것들에 대한 미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직 품지 못한 조각들을
살며시 꺼내어,
한편에 묻어두었던
사소한 기억들까지
손끝에 다시 올려본다.
투박한 선율에
조심스레 한마디를 얹듯.
그래서일까.
가을은, 언제나 쓸쓸하다.
가을은 늘 불현듯 찾아온다.
어제까지 뜨겁던 햇살이 순식간에 빛을 거두고,
바람이 먼저 계절의 전환을 알려준다.
문득 돌아보면, 이미 많은 것들이 내 곁에서 사라져 있음을 깨닫는다.
남아 있는 것은 흔적뿐이다.
함께 웃던 목소리, 잠시 머물렀던 눈빛,
그리고 쉽게 사라질 줄 알았던 마음까지.
계절이 바뀌면 모두 잔상처럼 떠돌아다니고
나는 그것들을 붙잡을 수 없어 더 쓸쓸해진다.
하지만 어쩌면 쓸쓸함은 가을의 선물일지 모른다.
불필요하게 부풀어 있던 마음을 하나씩 걷어내고
남은 자리에는 아직 품지 못한 조각들이 가만히 놓는다.
오래 전부터 내 안에 있었지만
차마 손에 쥐지 못했던 것들,
멈춘 채 흩어져 있던 마음들을
이제는 조심스레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