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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곰 Aug 28. 2019

잔망스런 이야기 14

다른 엄마

시골에 계신 엄마랑 통화를 하고 끊는데, 옆에 있던 큰언니가 그런다.     


“ 난 엄마랑 좋은 추억이 별로 없다. 애틋하기도 할머니가 더 하고...”    


정말 많이, 아주 많이 놀랐다. 나에게 엄마는 항상 다정하고, 더할 나위 없이 애틋한 존재다. 중학교 때까지 엄마 가슴을 만졌으니 더 말해 무엇하리. 그런데 큰언니는 엄마를 생각하면 자신에게 짜증을 많이 내고, 항상 일에 치여 힘들어하던 모습만 생각난단다. 잘 때도 항상 할머니랑 자서, 엄마보단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고. 

아, 몰랐다. 가족 안에서도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다르게 적힌다는 것을. 심지어 그 대상이 엄마일지라도.    




생각해 보면 큰언니가 엄마 곁에 있을 때(중학교 때까지) 엄마는 가장 힘든 시기를 건너고 있었다. 줄줄이 어린 자식들이 딸려있고, 농사일에 집안일에 거기다가 아픈 할머니까지 모시고 있었다. 남편이란 사람은 출근하면 끝이고, 할머니 눈치도 있으니 집안일이나 자잘한 일들에선 아들들 보다는 수더분한 큰딸에게 많이 의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큰딸일 뿐, 어린 큰언니가 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었겠는가. 큰언니는 그때 엄마를 보며, 시골로는 절대 시집을 안 갈 거라고 다짐했단다.    


엄마는 나를 안 낳으려고 했었다고 했다. 할머니가, 아들 둘 낳고, 딸 둘 낳았으니 이제 다시 아들 낳을 차롄데, 요즘 것들은 지 편 할 생각만 한다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나를 낳았단다. (할머니는 종갓집 외아들에게 시집와 딸 셋을 낳고 아들을 낳는 바람에 힘든 세월을 사셨다) 그런데 내가 딸이자, 이제 아이를 그만 낳겠다고 선언하고는, 막내니까 젖을 뗐는데도 할머니에게 안 보내고 데리고 자면서 보란 듯이 예뻐했다고 했다. 그전엔 할머니 어려워 아이들 예뻐하는 티를 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런 엄마를 처음 본 할머니가 ‘못난이 하나 낳아놓고, 좋아 죽는다’고 하셨다나    




내가 중학생이 됐을 땐, 오빠 언니들 모두 도시로 진학하고 집엔 나 혼자 뿐이었다. 사춘기가 와서, 아빠는 꼴보기 싫었지만, 엄마랑은 잘 지냈다.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얘기하는 걸 좋아했는데, 엄마에게 이런저런 일들을 얘기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엄마가 좋아하고 기뻐할 만한 얘기들만 했던 것 같다. 슬퍼하고 걱정할 얘기들은 안 했다. 물론 친구들이나 선생님들 흉을 보기도 했지만, 진짜 고민거리는 말 안 했다. 엄마를 사랑하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를 도시로 안 갔으면 하는 속내를 비치기도 하셨는데, 난 엄마 맘을 잘 알면서도 그게 뭐 큰 벼슬이라고, 왜 오빠 언니들은 다 도시로 보냈으면서 난 안 보내주려고 하느냐고 벌컥 짜증을 냈다. 가서는 엄마 말대로 할 걸 후회 많이 했다. 부모님 곁을 떠난 그때부터 해 질 녘이 슬퍼졌다.     


시간은 흐른다. 각자의 인생으로. 각자 다른 모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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