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5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폐암 말기 선고를 받은 지 한 달도 채 안 되었는데 뭐가 그렇게 급하신 건지 우리 곁을 떠나가셨다. 병원에서도 길어야 세 달, 이라고 했지만 늘 그렇듯 의사들은 가장 나쁜 경우의 수를 이야기하니까. 올해를 채 넘기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아빠는 9남매 중 막내아들이다. 그래서 나에겐 큰아버지가 많았다. 왜 과거형이냐고 하면, 이제는 한 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째 큰아버지는 내가 스무 살 때 돌아가셨다. 암으로 긴 투병 생활을 하셨기에 어떤 때는 ‘생각보다 더 오래 사시네’라고도 느꼈다.
수능이 끝나고 가장 시간이 많았던 고3 말 시절에는 매일 하교 후 병간호를 하기도 했다. 세상에서 제일 목소리가 크고 무서웠던 큰아버지가 아무 말씀도 하지 못하고 누워만 있는 게 슬펐다. 나는 이따금 큰아버지의 눈곱을 떼어 드리며 병원은 건강한 사람도 결국 병들게 하는 공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둘째 큰아버지도 암이셨다. 용인에 사셔서 자주 뵙지 못했지만 그 어떤 가족들보다 젠틀하고 건강한 이미지가 강했던 분이라, 사실 지금은 아프셨을 때 어땠는지 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둘째 큰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친척언니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쯤이다. 이 나이에 아버지를 잃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상상도 하고 싶지가 않다.
아빠는 형들이 일찍 병으로 죽는 것이 슬프고, 무서웠을 거다. 나에게 우스갯소리로 자신도 칠순까지 살지 못할 수도 있으니 꼭 환갑잔치를 해달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몇 년 전부터 아버지의 환갑잔치를 위해 적금을 들고 있다. 나는 아빠의 칠순잔치도, 팔순잔치도, 가능하면 구순잔치도 해드리고 싶다.
사실 셋째 큰아버지와의 추억은 거의 없다. 가족들 중 가장 교류를 적게 하던 분이기도 했고, 자식들과의 연락이 끊겨 어렵사리 혼자 살아가던 분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다. 그래서 몇 해 전부터 우리 부모님께서 큰아버지를 케어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가족들에게 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고 존경스럽다.
토요일 오후에 부고 소식을 듣고, 급히 회사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연휴 내 장례를 치렀다. 덕분에,라고 표현하기는 좀 그렇지만 오랜만에 가족들을 다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하기도 했다. 나는 제주도에 산다는 이유로, 주말 근무자라는 핑계로, 가족행사에서 제외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그 어느 때보다 감사하고, 또 죄송하고, 따뜻하고, 미안하고, 반갑고, 아쉽고, 그렇기에 가득 찬 시간이었다. 잊을 수 없는 2주년을 함께 해준 그에게도 마찬가지로.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