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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May 10. 2024

무급휴가

2024.05.10. 감기록

화요일 점심.

산부인과 검진이 있는 날이라 마스크를 쓰고 나섰다. 자궁경부암 검사와 질 초음파를 보고, 생리통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피임약을 처방받았다. 감기기운은 있었지만 ‘나아가는 중이겠지 ‘라고 생각해서 따로 내과나 이비인후과를 추가로 가진 않았다. 목 안쪽 통증이 심해서 약국에서 뿌리는 스프레이를 샀는데,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더라.


화요일 밤.

잠이 안 온다. 아니 잠은 오는데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분명 어제 처방받은 약을 먹고 푹 쉬었는데 이상하다 싶었다. 누우면 침이 고이고, 침을 삼키면 마치 유리조각을 씹어 넘기듯이 따가웠다. 아 쓰면서도 짜증 나.

진짜 너무 아파서 잠도 못 자고 침을 계속 뱉어내다가.. 휴지를 입에 물고 입을 벌리고 잤다. 너무 아파서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수요일 오전.

인후통에 새벽 두 시, 여섯 시에 깼고, 아침 약을 먹기 위해 억지로 죽을 쑤셔 넣었지만 삼키기가 어려웠다. 사실 이런 상태라면 출근을 하지 않는 편이 좋을 텐데, 전달할 것도 있었고 내가 처리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업무가 예정되어 있어서 고민이었다. 목구멍 빼고는 다 괜찮아서 우선 출근하기로 하고, 회사에 무급휴가가 가능한지 물었다. 연차가 한 개밖에 안 남았는데 따로 쓸 일정이 있어 몸상태를 이야기하며 양해를 구하니, 너무 심하면 진료확인서와 함께 올려달라는 답을 받았다.


수요일 오후.

퇴근 후 집 근처 병원에 가서 증상을 말했다. 새로운 의사 선생님이 심드렁한 태도로 약을 다시 처방해 주셨는데, 내가 너무 아프니 수액을 맞고 싶다고 했다. 주사실에 들어갔는데 아무도 케어해주지 않아 오분 정도 멍하니 서 있었다. 별거 아닌데도 아프니까 그런 사소한 상황들도 다 서럽고 짜증이 나더라. 항생제가 들어간 포도당 주사를 맞았고, 전기장판이 너무 뜨거워서 잠꼬대를 하다 말고 깨었다. 집에 와서 씻고, 약을 먹었는데 이제 기침이 나오더라.


목요일 새벽.

잠을 잘 수가 없다. 목이 아프고 계속 기침이 나온다.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고작 감기 때문에 일주일 동안 이렇게 아플 수도 있는 건가? 목, 금 이틀을 무급휴가로 쉬기로 했다.


목요일 오후.

이틀 동안 휴대폰은 방해금지 모드로 바꾸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다행히 목구멍 통증은 좀 가라앉았으나, 기침이 심해졌다. 밥 먹고 약 먹고 잠자다 일어나서 또 밥 먹고 약 먹고 잠자고 반복. 빨리 나아라, 제발..


금요일 아침.

밤새 기침 때문에 잠을 설쳤다. 자려고 누우면 명치가 아프도록 기침이 나왔다. 아침에 일어나니 노란색과 초록색 사이의 가래가 나왔다. 추천받은 이비인후과를 가야겠다. 의사 선생님은 친절하진 않으셨지만 매우 빠르게 내 상태를 진단해 주셨고, 수요일에 처방받은 감기약은 먹지 말고 새로 처방해 준 약으로 바꿔보라고 하셨다.

“목에 염증이 심하네요, 침 삼키기도 힘들 것 같은데..?” 증상을 채 말하기도 전에 진단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그래, 나 꾀병 아니야. 진짜로 아파 뒤지겠다고 ㅜㅜㅜㅜㅜㅜㅜ 아마 앞으로 또 아프면 (아프기 싫지만) 이곳으로 갈 것 같다. 약국에서 코세척 가루를 사 왔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금요일 저녁.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평소 같으면 퇴근할 시간이다. 이틀 동안 마치 백수가 된 마냥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쉬었다. 비록 내 이틀 치 급여가 사라지겠지만, 너무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밤은 제발 기침이 잦아들길..


덧.

이번 감기는 나에게 잠, 말, 돈을 앗아갔다. 시간과 식욕도.. 코로나도 아니도 독감도 아니다. 그냥 근육통이었다가 발열이었다가 인후통이었다가 기침 콧물 가래가 되어버린 감기다.

몸이 아프니까 마음도 아프고, 정신도 아파지더라. 사소한 일상이 그립다. 아아 쪽쪽 빨면서 봄햇살 아래 앉아 있고 싶다. 어떻게든 다시 건강을 되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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