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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an 28. 2020

오늘의 저녁 식사처럼

그때 내가 당신에게 달려갔으면 우리는 조금 달라졌을까.

  모든 예상이 어긋나 버렸을 때. 그때를 예상하지도 대안을 마련하지도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 다양한 경우의 수를 두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후 일을 진행해왔지만 사람의 일이란 결국 이렇게 단순하고 명료하게 끝나버리기도 한다. 오늘의 저녁 식사처럼.



  당신을 만나기까지 나는 초조함과 불안함에 사로잡혀있었다는 뻔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머리를 바꿨고, 손톱을 손질받았고, 원피스를 새로 샀다. 당신이 무슨 색을 좋아했더라, 고민하며 귀걸이를 골랐다. 귓불에서 길게 내려와 반짝이는 귀걸이를 보다가 문득 어쩌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걸까 생각했다.

  사람들이 종종 물었다.

  “왜 헤어진 거야?”

  그리고 그 앞에 붙은 말은 대게

  “그렇게 좋아하는데”

라던가

  “잊지도 못하면서”

였다.

  나는 거울 앞에서 고개를 갸웃하며 귀걸이를 흔들었다. 흔들릴 때마다 빛망울이 거울에 반사되었다.

  나는 시답잖은 말을 하며 대답을 피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헤어질 이유가 없었지만, 그때의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해서 견딜 수 없었다. 당장 내게 달려오지 않는 당신 혹은 종일 연락이 닿지 않아 속이 상해버린 나를 위로하기 위해 우리의 연애가 거기에서 끝이라고 생각했다. 먼저 달려갈 줄 몰랐던 시절이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이기적이란 걸 잘 알아서 나는 여전히 대답하지 못한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여전히 내게 남아 내가 결국 당신에게 가게 만든다. 그때 내가 당신에게 달려갔으면 우리는 조금 달라졌을까.     



  밥을 먹는 내내 초조해서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계속 마셨다. 이대로 당신과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신이 지나가듯 말했다.

  “겨울이 싫어. 숨이 막혀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그다음에 이어지는 말들을 들으며 나는 술을 마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은 이제야 당신이 아팠었다고 말하고 있었고, 나는 왜 그때 말해주지 않았느냐며 울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 같은 걸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참 멀리 떠나간 마음 앞에서 예쁜 귀걸이 따위가 무슨 소용일까. 멍청한 짓이었다.      

  당신을 붙잡고 싶었다. 아주 명백한 나의 감정을 당신도 분명 느꼈으리라. 별것 아닌 말을 이어갔고, 별 뜻 없는 대답이 붙었다. 나의 망설임과 당신의 조심스러움 사이에 울린 전화 한 통. 당신은 길게 울리는 휴대폰 소리를 들으며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작 그 휴대폰 소리 하나가 우리를 가볍고 느슨한 관계로 돌려놓았다. 단단한 적도 견고한 적도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더 함께 있고 싶다고 말했으면 우리는 조금 달라졌을까. 거짓말 같은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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